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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진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9〉이익과 분배 거짓과 진실 ‘형이상학적 풍경의 대가’ 데 키리코 그는 왜 자신의 작품을 위작이라했나 “아, 이 그림은 제가 그린 게 아닙니다. 이건 얼간이나 속을 법한 가짜군요.” 화가가 본인이 그린 그림을 못 알아보는 일도 있을까. 나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전문가들이 입을 모아 진품 판정을 내렸지만 정작 작가는 작품 앞에서 머리를 가로 저었다. 문제가 된 작품은 조르조 데 키리코의 ‘이탈리아 광장’ 연작과 동일한 소재와 구성 형식이 있었고, 색이 조금 연해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연작의 다른 여느 작품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다. 광장은 데 키리코가 1910년쯤부터 즐겨 그린 소재였다. ◇‘멜랑콜리’(조르조 데 키리코, 1912년 작). 데 키리코 이전의 많은 예술가가 그림이나 조각으로 아리아드네의 잠든 모습을 즐겨 묘사했었다. 데..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8〉이익과 분배 현실세계선 상업화와 타협 불가피…피카소조차 후원자 관계 위해 노력 죽어라 일해서 당신 배나 불려준 꼴이라니! 현대미술 시장의 역사적인 순간이었던 1973년 10월 18일 소더비경매장 경매에 부쳐졌던 스컬의 컬렉션은 224만2900달러의 판매액을 기록하며 마감되었다 그리고 바로 이날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부터 팝아트를 이끌었던 대표작가 중 한 명이었던 라우션버그는 그동안의 후원자이며 컬렉터였던 로버트 스컬과 결별했다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서 불가능한 육체적 죽음’ 데미언 허스트 1991년 작 불과 하루 전의 인터뷰에서 스컬 부부는 다른 지원활동이 전혀 없던 어려운 시기부터 젊은 작가들을 후원해 온 기적 같은 존재라고 칭찬해 마지않던 라우센버그가 경매가 끝나자마자 자신의 구세주였던 컬렉터 스컬을 거칠게 떠밀..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7〉가난과 예술 예술 관련 자본 커진 만큼 예술가 지원 방법 재점검 할때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곧 왜곡된 사실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녀가 ‘남은 밥과 김치’를 부탁하는 쪽지를 써놓고 굶어죽었다는 얘기에 적잖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로 ‘공연예술인 경력인정 공동대책 위원회’가 출범했고 ‘예술인 복지 지원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든 ‘사회적 타살’이었든 간에 그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의 처우가 개선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 크리스토발 로하스, 1886년 작. 베네수엘라 출신 화가. 결핵 등의 질병을 앓는 환자와 그를 둘러싼 사회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지금껏 예술계는 죽음과 너무도 친숙했다. 수많은 예술..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6〉예술 속의 소란과 싸움 작가와 이론가, 목적·접근법 차이때문 불협화음은 당연 1982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장에서 오픈을 얼마 앞두고 작품 설치가 한창일 무렵 국제관의 커미셔너였던 프랑스 미술비평가 장 클레의 따귀를 후려친 이가 있었다. 이탈리아 화가 리카르도 톰마시 페로니였다. 톰마시 페로니는 쉰이 조금 안 되는 나이의 점잖은 화가였고 늘 깨끗하고 세련된 더블재킷 수트에 금 체인이 달린 조끼를 갖춰 입는 신사였다. 유년 시절 그가 그렸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작을 사람들이 실제 원작으로 착각했을 만큼 뛰어난 그림 테크닉을 자랑했던 작가였다. 그는 콧수염을 멋지게 다듬은 얼굴에 은으로 된 만년필을 가지고 다녔고 고전적인 스타일의 그림만큼이나 고풍스런 1700년대 빌라에 살고 있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예의바른 중년 신사인 그..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5〉 의도 예술품, 개념없는 복원·제작이 되레 작품성 떨어뜨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섹스 스캔들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관저인 키지 궁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 상이 세워져 있다. 2m가 훨씬 넘는 키에 무게의 합이 1.4t에 달하는 이 두 조각상은 고대 로마시대(17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18년 오스티아에서 발굴된 이후 로마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요청으로 2년 전 관외 대여허가를 받아 그의 임기기간 동안 키지 궁으로 옮긴 것이다. “중국 조각들은 조금 전 만들어진 것처럼 새것 같은데 왜 우리 조각에는 팔이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없나”. ‘비너스와 마르스’를 포함해 총 ..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4〉 장인과 예술가 예술 vs 실용… 서로의 영역 존중하며 상부상조 오래전 말 안장을 만들던 장인이 있었다. 안장 만드는 기술이 무척이나 뛰어났던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몇 세기에 걸쳐 만들어져오던 전형적인 안장이 아닌 ‘현대적’인 형태의 안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마침 도시에서는 분리파 운동이 한참 벌어지고 있었는데 이 운동이 ‘현대적’이며, 개성 넘치는 예술적인 수공업을 주창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 장인은 자신의 안장 중 제일 잘 만들어진 것으로 골라 들고 운동을 앞장서 이끌던 대학 교수를 찾아간다. “교수님, 이 운동이 추구하는 바는 소문으로 들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인데, 현대적으로 세련된 작업을 하고 싶어요. 교수님 보시기에 이 안장은 어떤가요?” ◇‘DING DONG BAT’(..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3〉앉을 수 없는 의자 2:아이러니 '앉기'의 실용 뒤에 숨겨진 신분·권력 덩어리째 전달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1907∼1998)는 1945년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를 선보였다. 3㎝의 호두나무 각목으로 짜여진 이 의자는 너비와 등받이 높이는 여느 의자와 다를 바 없지만 앉는 자리의 깊이가 20㎝로 정상적인 의자의 반도 채 안 되는 데다 45도 아래로 기울어져 있어 의자가 가져야 하는 편하고 아늑한 특징은커녕 제대로 앉기조차 힘들게 디자인됐다. 의자로서의 기능이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예술 오브제로 변한 이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걸쳐진 가장 아이러니한 예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리트벨트의 ‘적청 팔걸이 의자’(1918년)와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연작. 그런데 왜 의자인가. 의자는 사..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2〉앉을 수 없는 의자 1:조각적인 것 실용성 버린 의자·꽃병… 디자인 제품일까, 조각품일까 지금은 미술작품이 제작 형태나 재료, 전시 방법에 따라서 수많은 장르로 나뉘지만 조금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더라도 미술은 크게 그림인지 조각인지만 구분하면 되었는데 그 방법은 정말 간단명료했다. 벽에 걸려 있으면 회화, 공간을 차지하고 좌대에 올라가 있으면 조각이었으니 너무도 분명해서 싱거울 정도였다. ◇‘록히드 라운지’(마크 뉴슨 1985년, 알루미늄과 유리섬유. 사진=데이먼 가렛). 사실 꽤 오랫동안 조각은 회화에 비해 부수적이고 2차적인 예술로 여겨졌다. 미국 화가 애드 라인하르트(1913∼1967)는 “조각은 그림을 잘 감상하려고 뒤로 물러서다 부딪히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했고, 그 이전에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1821∼1867)는 ‘조각이.. 더보기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 신경질적으로 서 있는 테이블 ‘테이블’ 이름 단 예술작품 가구로 사용 한다면? 요즘 예술에 대한 관심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아졌다. 미술관뿐만 아니라 상업 갤러리에서도 대관보다는 기획전시가 증가하고 있고, 대안공간이나 신진작가 양성 프로그램도 엄청난 속도로 생겨나고 있다. 예술을 직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이제 예술은 알아야만 하는 교양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았고, 증권이나 부동산처럼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투자 대상이 되었다. 물론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치우친 부분도 보이고 갑작스럽게 커진 미술 사랑에 덩달아 불어난 거품도 상당량 보인다. 하지만 미술을 전공하면 주위에서 밥 굶을 걱정을 해주고 상당수 개인 갤러리들이 대관비로 겨우 운영하던 때를 생각하면 엄청난 변화다.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는 예술의 의미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