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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5〉 의도

예술품, 개념없는 복원·제작이 되레 작품성 떨어뜨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섹스 스캔들로 이탈리아뿐 아니라 세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관저인 키지 궁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마르스 상이 세워져 있다. 2m가 훨씬 넘는 키에 무게의 합이 1.4t에 달하는 이 두 조각상은 고대 로마시대(175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1918년 오스티아에서 발굴된 이후 로마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오다가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요청으로 2년 전 관외 대여허가를 받아 그의 임기기간 동안 키지 궁으로 옮긴 것이다.

“중국 조각들은 조금 전 만들어진 것처럼 새것 같은데 왜 우리 조각에는 팔이나 머리가 떨어져 나가고 없나”. ‘비너스와 마르스’를 포함해 총 4점의 고대 로마 조각을 박물관에서 옮겨오며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했던 말이다.

그의 지시로 중국 원자바오 총리의 로마 방문에 때맞춰 복원이 이뤄졌고, 그 후 공개된 ‘비너스와 마르스’는 문화재 복원 전문가는 물론 미술애호가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할 만한 모습이었다.

조각상 뒤로 드리운 역사적 연관성이 전혀 없는 배경은 백배 양보하더라도 비너스에게 코와 오른손을 만들어 넣고 마르스에게는 칼자루를 쥔 손을 붙이는 것도 모자라, 200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을 견디며 소실되었던 ‘남성’을 달아주었던 것은 세계의 이목을 끌 만한 사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탈리아 내외의 주요 신문들은 “키지 궁의 ‘비너스와 마르스’에 행해진 개념 없는 성형수술은 역사에 무지한 최악의 취미를 보여주는 예”,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중요시하는 ‘벗어서 멋진 몸’의 미학에서는 전쟁의 신 마르스도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비아냥거린 바 있다.

역사적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석상에 사라진 팔다리나 머리를 새로 제작해 달아 주는 것을 복원의 한 방법으로 생각했던 시기도 있었다. 형태상 쉽게 부서지거나 소실되는 머리나 팔, 무릎 아랫부분을 새로 제작해 연결한 부위는 세월의 힘을 못 이기고 터지고 뒤틀려 있기도 한다.

현재의 문화재 보존과 복원에서는 이전처럼 훼손되어 없어진 부분을 다시 채워 넣거나 재현하지 않고 더 이상 훼손이 진행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보조물을 삽입하거나 칠을 하지만, 원작품과 의도적으로 다른 색이나 질감을 써서 복원한 부분을 쉽게 구분할 수 있게 해 문화재가 지나온 시간의 흔적을 그대로 남겨 놓는다.

◇기원후 175년에 제작된 ‘비너스와 마르스’. 고대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아내 파우스티나의 초상조각으로 알려져 있다. 복원하기 전(왼쪽)과 복원 후(오른쪽)의 모습. 로마 황제와 자신을 동일시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마르스의 중요부분이 사라진 것을 참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비너스와 마르스’의 복원을 총 지휘한 건축가 카탈라노에 따르면 그들은 발전된 과학기술의 힘을 빌려 원본을 조금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두 그리스 신을 방금 대리석을 쪼아 만든 것처럼 변신시켰다. 형태와 크기에 대한 자료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예술작품을 면밀히 조사하고 분석해 손과 페니스를 덧붙여댔다는 거다. 복원 원칙을 무시했다는 주장에 그는 “자석을 이용해 함께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변명을 늘어놓았다. 이는 세계적으로 복원학의 독보적 위치를 자랑하고 중국까지 기술을 수출하던 이탈리아로서는 상당히 망신스러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금전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비너스와 마르스’상을 이처럼 훼손한 데에는 7만 유로(약 1억원) 가까이 들었다. 폼페이의 유적이 보수와 관리 부족으로 무너지는 등 문화재 붕괴 피해가 연이어 터지는데도 베를루스코니 정부는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40% 이상 줄이기로 결정했다. 미술문화계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진행된 복원이라 더욱 논란이 가중된 것으로 보인다. 이탈리아는 2009년에는 긴축 예산안을 펴 문화재 보존예산에서 35.08%, 연구 예산에서는 심지어 93.97%를 삭감했고 2011년까지 점차 추가 삭감을 감행했다.

‘미술계의 악동’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51)은 지난해 가을 밀라노의 증권거래소 앞 광장에 가운데 손가락을 하늘 높이 치켜세운 대형 대리석 작품을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많은 문화권에서 모욕적인 뜻을 지닌 제스처가 형상화된 이 작품은 당연히 설치 허가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밀라노 패션 주간에 맞춰 10일 동안만 세워지기로 결정이 되었다가, 차후에 설치가 6개월 연장되어 겨우 해를 넘겼다. 현재는 작품의 운명을 결정하는 회의와 찬반을 주장하는 인터넷 투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 작품을 두고 제작 의도에 관한 의견은 분분하다. ‘러브’라는 생뚱맞은 타이틀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국내 신문에 보도된 것처럼 혹자는 유럽에 엄청난 금융위기를 초래한 밀라노 금융전문가들을 비난하려고 조각상을 만들었다고도 하고, 혹자는 한 술 더 떠서 현대 경제 시스템에 대한 실망을 상징화한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불과 몇 개월 전 카텔란의 작품은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예상가격의 두 배를 뛰어넘는 800만 달러를 기록한 바 있지만 추급권(미술작품 재판매 수익권)이 인정되지 않는 미국에서 판매가 되었으니 영 관계가 없지는 않을 법한 추측이긴 하다. 하지만 역시 꿈보다 해몽인 격이다.

◇‘베일을 벗은 진실’. 잠바티스타 티에폴로.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키지 궁의 콘퍼런스룸 벽을 티에폴로의 프레스코화 대형 확대사진으로 장식하고 가슴부분에 베일을 그려 넣게 해 미술계의 분노를 산 바 있다.

사람들은 누구를 향해 뻗은 ‘가운데 손가락’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떠들어댔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작품을 30만 유로(약 5억원)나 하는 제작비를 들여 세계 주요 미디어의 주목을 받으며 세웠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설치행사에 참여했던 카텔란은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을 “상상에 맡긴다”라고만 했다. 이 작품의 공식적인 제목은 ‘L.O.V.E’이지만 적잖은 사람은 그 안에서 각자의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작품의 제목은 손가락 제스처가 상징하는 속된 표현의 완곡어법 같아 보이기도 한다. 무솔리니 정권시절의 파시즘적 건축물에 보내는 카텔란 특유의 해학적 메시지라고 보는 의견을 뒷받침하듯 이 손은 무솔리니에게 경례를 올리는 조각에서 떼어온 것처럼 1930년대 조각을 꼭 닮았다. 파시즘의 잔재가 몰락해 역사 저편으로 사라진 이념을 놀리는 꼴이다.

전시를 기획한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이 작품은 이 광장과 함께 태어난 듯 서로 완벽하게 잘 어울린다”고 했고, 이탈리아의 저명한 원로 미술 평론가 질로 도르플레스는 “전혀 나쁘지 않은데요? 흉측한 광장에는 흉물이 어울리는 법이지요”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하며 묘한 여운을 남겼다. 카텔란이 작품을 설치하며 기자들에게 “작품이 논란거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기대만큼은 제대로 이루어진 듯하다.

사실 이 작품의 본래 제목은 신약성서에 나오는 말로 ‘깨끗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다’는 뜻의 라틴어 ‘옴니아 문다 문디스(Omnia Munda Mundis)’였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미지와는 달리 무척이나 소심한 성격이어서 인터뷰를 즐기지 않는 카텔란은 “제 작품은 바에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5분 안에 설명해 줄 수 있을 만한 것들이죠”라며 작품 설명을 묻는 기자들의 요청을 받아치기도 했다. “예술작품 그 자체가 특정한 의미를 지니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잊고 있긴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 다른 경험을 통해 가치관을 형성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작품을 해석할 자유가 있어요.”

‘L.O.V.E’는 같은 날짜에 개막한 그의 개인전 ‘이데올로기에 반대하여’의 부분 행사로 설치되었다가 현재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라티 밀라노시장은 “개인적으로는 작품이 그 자리에 남기를 바란다”면서도 여론에 따라 작품이 옮겨지거나 작가에게 다시 반환될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L.O.V.E’. 마우리치오 카텔란. 카라라 대리석. 11m의 높이에 무게는 6t에 달한다. 증권거래소 건물은 파올로 메자노테의 설계로 350여명의 인부가 3년간 동원되어 1931년 완공되었다.

“작품을 끌어내리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러려면 헤라클레스를 불러와야 가능하겠지만 말이죠. 여론의 영향을 받는 작품을 하는 건 끔찍하게 어려운 일이에요.” 카텔란은 자신이 밀라노시에 헌정한 작품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그는 2004년에도 어린아이 형상을 한 인형의 목 3개를 매달았다가 사람들의 반대에 밀려 며칠 만에 작품을 철거하는 등 스캔들을 몰고 다녔다. “두오모성당 앞이면 경을 칠 일이겠지만 증권거래소는 적절한 장소”라는 의견이 상당수인 걸 보면 20대 후반의 뒤늦은 나이에 우연히 작가의 길을 가게 된 그의 순진한 듯한 ‘카텔란식’ 유머는 비리와 자극적인 감정싸움으로 얼룩진 정치판에 비하면 귀여운 애교로 읽혀지는 듯하다.

미디어를 장악하여 정치권력을 잡은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여느 독재 권력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로마 황제와 자신을 동일시한 듯 보인다. ‘비너스와 마르스’의 이전과 복원을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현재 횡령과 탈세, 마피아와의 결탁 문제에 이어 권력 횡포, 미성년자 성매매 등의 스캔들에 휘말려 새해를 맞았고 최근 검찰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면서 지난달 3표 차로 재신임을 받았던 그의 정부가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또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그의 정치생명에 따라 비너스와 마르스의 운명도 좌우될 것이다. 그들이 이른 시일 내에 우스꽝스러운 의수와 성형 보철물을 떼어내고 예전의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고대한다.

밀라노=조각·미술설치가 hojin00@gmail.com 
 
입력 2011.01.25 (화)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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