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기타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3〉앉을 수 없는 의자 2:아이러니

'앉기'의 실용 뒤에 숨겨진 신분·권력 덩어리째 전달

밀라노 출신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인 브루노 무나리(1907∼1998)는 1945년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를 선보였다. 3㎝의 호두나무 각목으로 짜여진 이 의자는 너비와 등받이 높이는 여느 의자와 다를 바 없지만 앉는 자리의 깊이가 20㎝로 정상적인 의자의 반도 채 안 되는 데다 45도 아래로 기울어져 있어 의자가 가져야 하는 편하고 아늑한 특징은커녕 제대로 앉기조차 힘들게 디자인됐다. 의자로서의 기능이 의도적으로 제거되어 예술 오브제로 변한 이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 걸쳐진 가장 아이러니한 예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리트벨트의 ‘적청 팔걸이 의자’(1918년)와 몬드리안의 컴포지션 연작.

그런데 왜 의자인가. 의자는 사실 예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따질 때에도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세계 유명 디자인박물관에는 천차만별의 다양한 의자 컬렉션이 주요 소장목록을 차지하고, 유명 디자이너의 손꼽히는 대표작도 의자가 주류를 이룬다. 우선 의자는 크기의 측면에서 비교적 제작과 변형이 용이하며, 다른 가구에 비해 공간적 제한을 덜 받고 소유가 자유롭다는 점이 수요와 제작을 늘려주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침대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에 위치하지도 않아 적절하게 방문객에게 노출될 수 있도록 거실에 ‘과시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의자만큼 만드는 사람과 앉는 사람의 정체성에 크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구를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구조적인 순수함을 극적으로 몰아가 몬드리안 추상화의 한 부분을 오려놓은 것같이 의자의 기본 뼈대만 남긴 리트벨트의 ‘적청 팔걸이 의자’도 장식장이나 침대로 만들어졌다면 의자만큼 큰 가시적 효과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브루노 무나리 1945년. 앉는 자리가 알루미늄으로 처리되어 잘 미끄러지게 제작되었다. 제작회사: 자노타. 상품명:‘싱어’).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어필하고 디자이너의 개성과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하게 하려는 시도는 가상현실 시스템 같은 첨단장비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간단하게 대상을 의자에 앉힘으로써 가능해진다.

‘앉기’는 우리가 의자에 부여하고 있는 수많은 기능 중 한 부분이다. 의자는 역사적으로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현재까지도 신분이나 자격을 구분하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는 의자의 모양과 형태에 수많은 사회적 의미를 씌워주며 심지어 의자가 놓여진 방향이 갖는 뜻을 파악하려고 무던히 노력하곤 한다.

우리는 의자에 자아를 투영하고 감정을 이입시키며 의자를 통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도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의자를 내주고, 서로의 의견을 듣기 위해 탁자를 끼고 마주 앉는다. 상투적이면서도 극적인 행동이긴 하지만 의자를 집어던지면 분노나 좌절감이 제대로 전달되고, 의자를 넘어뜨리는 건 불쾌한 대상에게 그가 환영받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해주는 방법이다.

1930년대가 배경인 영화 ‘이지 버츄’(Easy Virtue, 2008)에서 자유분방한 성향의 미국여성 라리타로 분한 제시카 비엘을 비꼬고 모멸감을 주기 위해 전통 있는 영국 가문의 시어머니 베로니카가 선택한 것도 바로 의자였다. “네가 앉은 의자보다도 역사가 짧은 나라에서 왔으니….” 여기서 의자는 실용적인 것 이상의 상징적인 물건이 된다. 베로니카는 집안의 오랜 전통과 본인을 동일시하며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집안의 전통과 역사가 서린 땅을 서슴없이 팔아버리라고 부추기는 며느리를 혐오하고 경계한다.

◇‘동화-1001개의 의자’(아이 웨이웨이. 2007년 제12회 카셀 도쿠멘타 전. 사진:얼스 마일리 갤러리).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의자와 함께하는데, 편안하고 작업하기에 쉬운 의자를 고르기도 하지만 응접실이나 공부방의 이미지를 완성시켜줄 심미적이며 사용자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의자를 찾아 많은 시간과 금액을 할애한다. 의자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족이나 의수와 같은 인공기관이 되어 그 주인의 존재를 대신해 존재의 빈자리를 부각시키거나 주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역할놀이의 주요 소품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유명 인물들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기념관에는 가상의 집무실이나 서재가 꾸며지고 그들이 사용했거나, 혹은 했을 법한 안락의자가 마련되어 있다. 방문자가 그 의자에 앉아 의자 주인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한 기념관 측의 배려(?)다.

◇‘빈센트의 의자와 그의 파이프’(반 고흐, 런던 내셔널 갤러리)와 ‘고갱의 안락의자’(반 고흐, 암스테르담 반 고흐 뮤지엄).

뿐만 아니라 유명 인물들이 시간을 보냈다는 장소의 기록을 찾아 세계를 이 잡듯 뒤지는 탐험가형 여행자들 무리도 있는데 그들 덕분에 새로운 장소들이 속속들이 발굴되어 알려지고 있다. 아직은 그리 유명하지 않지만 칼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대영박물관 열람실의 O7번 책상 역시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며 영국 여행책자와 그 부근 소규모 호텔의 관광책자를 위해 광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한때 유명 예술가들이 시간을 보냈다고 알려진 프랑스의 야외 카페나 술집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일이 유행하기도 했던 것과 비슷한 예이다.

의자는 예술가들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존재였다. 고흐는 서로 마주 보고 대화를 하는 듯한 방향으로 놓여진 자신의 의자와 고갱의 의자를 그렸다. 동료 작가인 고갱에게서 느낀 우정과 같은 화가로서의 불가피한 경쟁의식, 고갱이 떠난 후 느낀 상실감과 그에 대한 집착 등 작가 내면의 복잡하고 강렬한 감정이 너무도 잘 표현된 그의 그림에서는 작품의 주제가 빈 의자가 아닌 다른 물건으로 대체될 수 없을 정도로 의자가 주는 전달력이 강렬해 보인다.

◇심미적 특징이 돋보이는 의자. ‘트론 암체어’(드로르 벤셰트리트 2010년. 영화 ‘트론:새로운 시작’을 위해 이탈리아 카펠리니사가 월트 디즈니 시그너처와 협업으로 제작했다).

수많은 현대 미술 작가들이 의자를 부수거나 쓰러뜨렸고, 앉기 불가능한 재료로 의자를 캐스팅하거나 초현실적인 크기로 확대해 의자를 다른 맥락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독일의 전위작가 요셉 보이스는 자신의 경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기름덩어리’를 의자 위에 재어 놓았으며, 중국의 설치 예술가 아이 웨이웨이는 ‘동화-1001개의 의자’라는 설치작품에서 청나라시대 골동품 의자 1001개와 함께 실제 1001명의 중국인을 작품에 포함시켜 국제 현대미술전시 카셀 도쿠멘타를 장식한 바 있다. 작가는 1001명의 사람을 중국에서 모집하고 관광 여행으로 기획해서 보냈는데 똑같은 모양의 여행가방을 들고 지침 받은 전시장에서의 주의사항에 따라 행동하면서, 1001명의 ‘중국인 관광객’은 전시의 관람객인 동시에 설치 퍼포먼스의 주인공 역할을 병행해냈다.

◇‘지방의자’(요셉 보이스, 1964∼85년).

디자인에서 기능과 생산 효율성이 우선적으로 강조되던 구조는 디자인과 예술의 구분이 희미해지면서 전복되었다. 순수 예술과 디자인 두 분야의 특징을 고루 갖춘 새로운 형태의 예술은 미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소비문화와 미디어의 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해, 과거에는 예술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였던 시장성이나 대중성도 자연스럽게 흡수했다. 이제 의자는 새롭고 독특한 디자인을 입고 그 의자에 앉게 되면 남들과는 차별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고 우리를 유혹한다. 혹자는 소수만이 가질 수 있는 디자인을 소유함으로써 재력을 자랑하기도 하고, 실험적인 시도로 가득 찬 의자의 사진을 찾아내 블로그나 트위터 등으로 나르며 남다른 관찰력과 넓은 미학적 포용력을 자랑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오늘날 예술에서 디자인의 흡입력은 어느 때와 비교할 수 없게 커졌지만 상업적 대중문화로 치우칠 위험도 함께 자라났다.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로 의자를 오브제로 만들었던 브루노 무나리는 사실 디자인의 기능과 실용성에 큰 중요성을 부여해 디자인과 예술의 혼란을 견제했던 디자이너였다.

그는 가구회사 자노타에서 의자 디자인을 의뢰해 왔을 때 이미 세상에는 ‘쓸 만한’ 의자가 다양하게 참 많은데 또 다른 의자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거절하기도 했다. 그에게 예술은 ‘놀이’에 가까웠는데, 펴서 세웠을 때는 비율이나 형태 등 조각의 미적 규칙을 가졌지만 봉투에 넣어 카드처럼 보낼 수 있었던 종이로 된 ‘여행용 조각’이나 ‘읽을 수 없는 책’ ‘쓸모없는 기계’ 시리즈처럼 언어유희를 즐기는 작품을 즐겨 제작하곤 했다. 최초의 ‘짧은 방문을 위한 의자’는 9개의 한정판으로 작가의 사인과 함께 디자인의 이미지를 벗고 조각처럼 좌대에 올려졌지만 차후에는 좌대가 없는 일반 의자와 같은 형태로 대량 제작되어 ‘싱어’라는 상품명으로 현재까지 판매되고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 거주 조각·미술설치가 hojin00@gmail.com
 
[Segye.com 인기뉴스]사람죽는 장면 그대로… '뉴스데스크' 비난 폭주생각을 뒤집은 여고생, 월 3000만원 '대박'휴대용 미사일 '신궁'… 초음속으로 적기 타격티아라 지연, 무성의한 무대매너 '도마 위'쥐식빵, 자작극 가능성 커져… 거짓말 들통청와대 "천정배는 패륜아, 정계은퇴해야""배우자감 직업 남성은 판사ㆍ여성은 교사 최고"


<세계일보>입력 2010.12.28 (화) 22:09

  • 관련이슈 :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