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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7〉가난과 예술

예술 관련 자본 커진 만큼 예술가 지원 방법 재점검 할때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곧 왜곡된 사실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녀가 ‘남은 밥과 김치’를 부탁하는 쪽지를 써놓고 굶어죽었다는 얘기에 적잖은 사람이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여파로 ‘공연예술인 경력인정 공동대책 위원회’가 출범했고 ‘예술인 복지 지원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었든 ‘사회적 타살’이었든 간에 그 죽음을 계기로 예술인의 처우가 개선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고통’, 크리스토발 로하스, 1886년 작. 베네수엘라 출신 화가. 결핵 등의 질병을 앓는 환자와 그를 둘러싼 사회의 관계를 표현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지금껏 예술계는 죽음과 너무도 친숙했다. 수많은 예술인이 경제적 어려움을 토로하며 극단적인 자살을 감행했을 때에도 큰 변화가 없었지 않나.

꽤 오래전부터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의 문제는 예술가를 더욱 예술가답게 하는 요소처럼 생각되었다. 고흐가 비운의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여주는 역할을 해 주었다. 성공을 꿈꾸는 수많은 무명 작가들은 스스로가 예술가의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채찍질을 할 때에나 그들을 걱정하는 가족 친지들을 달래는 데 고흐를 들먹이기도 한다. “고흐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열악한 환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 드라마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즐거운 감흥을 주는 이야깃거리가 됐지만 특히 예술가에게 닥친 가난과 병력은 그를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신체적이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초월한 예술혼을 뿜는 극도로 낭만적인 예술가 상에 사람들은 열광했고, 예술가는 엄숙한 종교의식처럼 병마나 빈곤에 굴하지 않고 그에게 주어진 ‘과제’를 꿋꿋이 해내어야 했다.

◇추락한 에블린 맥헤일. 사진:로버트 와일즈. 1947년 라이프

난롯불이 꺼진 지 한참은 되어보이는 싸늘한 다락방. 어둑하거나 희미한 촛불이나 등잔 아래서 콜록거리며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은 고뇌에 빠졌거나 글에 몰두하는 전형적인 작가의 이미지가 된 지 오래다. 과장된 경우에는 시뻘건 피가 묻은 손수건도 함께 등장한다. 문학에서만 해도 카뮈, 카프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작가가 결핵이나 폐렴에 걸려 세상을 등졌다.

그래서 결핵은 한동안 예술가나 지식인의 병으로 불리기도 했다. 문학은 젊고 한없이 건강해야 할 나이임에도 운명의 장난으로 병약해진 주인공들의 여위고 창백하지만 홍조 띤 얼굴들로 가득 차 있다.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은 결핵에 걸려 요양소에 머무는 젊은 귀족 한스 카스토르프의 이야기이며 유진 오닐은 ‘밤으로의 긴 여로’에서 가족 전체를 환자로 만들어 버렸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 경이 “결핵에 걸리고 싶다”고 했을 정도로 한때 결핵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사실 그 역시도 다리를 저는 신체장애가 있었지만 결핵은 숨겨진 감성을 일깨워 주는 질병으로 여겨졌기에 바이런은 영혼의 순수함에서 우러나오는 시를 쓰기 위해서 결핵을 병이기보다는 하늘에서 받을 선물이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뒤마의 소설 ‘동백꽃 여인(춘희)’을 기초로 쓰인 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애절함을 더하기 위해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등장한다. 푸치니의 ‘라보엠’에서도 시인과 사랑에 빠지는 재봉사 미미는 결핵 환자였고, 미국 단편 ‘마지막 잎새’ 역시 병약한 소녀에게 희망을 주고 폐렴으로 죽어가는 화가의 이야기이다. 이 글을 쓴 오 헨리는 아내를 결핵으로 잃었다.

프랑스의 조르주 상드도 결핵을 ‘낭만적인 질병’이라고 했다. 결핵에 걸려 죽어가는 쇼팽을 위해 남쪽의 따뜻한 보금자리를 찾아 옮겨다녔던 그녀는 쇼팽을 ‘병약하고 구슬픈 나의 천사’라고 불렀다. 쇼팽의 병이 깊어질수록 걱정도 더해갔던 그녀였지만 결핵이 쇼팽의 영감의 원천이라는 생각을 버리지는 못했다. 상드는 지인에게 쓴 편지에서 쇼팽이 ‘영원한 은총으로 기침’을 해댄다고 썼다.

◇‘임종을 앞둔 쇼팽’, 키아코프스키, 1849년 작. ‘랑베르 저택에서 연주하는 쇼팽’ 40여점의 그림에 쇼팽을 담은 그는 임종까지 들라크루아와 함께 쇼팽의 병상을 지켰다.

결핵은 다른 질병과 함께 예술가들을 따라다녔다. 르누아르는 풍만한 모델과 따뜻한 색채가 가득한 그의 그림과는 반대로 불면과 마비증세에 시달리는 어려운 삶을 살았고, 모딜리아니 역시 평생을 가난과 싸우다 결핵과 알코올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뭉크는 어머니와 누나를 잇달아 폐렴으로 잃은 뒤 ‘병든 아이’를 비롯해 인간의 절망과 고통, 죽음을 주제로 삼았다. 예술가란 고난의 한가운데에 태어난 사람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많은 예술가가 불운에 휩싸여 살았다.

폐렴이나 결핵은 가난하고 못 먹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었다. 결핵이 예술계를 휩쓸던 무렵 영국과 프랑스 인구 4분의 1이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할 만큼 크게 퍼졌던 전염병이었다. 고열에 시달리며 몽환적인 환상을 경험하게 하는 매독이나 장티푸스도 예술가의 고통과 죽음에 종종 등장하곤 했지만 요즘 이런 병을 앓는 이는 거의 없다.

영국 미술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 ‘부기우기’(2009년)를 보면 몬드리안의 동명 작품 ‘부기우기’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이 벌어진다. 몬드리안의 초기작 중 하나로 알려진 이 작품을 소장한 노부부는 자신들의 소장품 중 일부를 소더비를 통해 판매해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려 해보지만 경매에서 좀처럼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 그 사이 대형 갤러리와 그의 컬렉터가 서로에게는 비밀로 한 채 이 그림을 차지하려고 천문학적인 가격을 제시하며 경쟁하지만 결국 이 그림은 불타 없어지게 된다. 그림은 사라졌지만 미술시장의 주역들이 열정적으로 높여놓은 가격 덕에 미망인은 엄청난 금액의 보험금을 받게 되고 집사와 함께 남쪽에 저택을 사서 떠난다는 내용이다. 장례식장에 찾아간 갤러리 소유자가 유족에게 투자가치가 있는 새로운 작품을 권하는 장면은 이미 미술작품이 부동산이나 증권처럼 투기의 대상이 된 사실을 강조하는 대목이다.

◇‘병든 소녀’, 에드바르트 뭉크, 1896년 작, 어머니와 누나를 결핵으로 잃은 뭉크는 같은 주제로 여러 점의 그림을 남겼다.

영화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줄 하나 똑바로 그을 줄 모르는’ 레즈비언 비디오 예술가 일레인의 첫 개인전 오픈식에 초점을 맞추는데,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누군가가 차 지붕으로 떨어지는 장면이 큰 소음과 함께 벌어진다. 일레인을 도와주다 버림받은 가난한 무명 큐레이터 듀이의 실제 자살 장면이었다. 그녀가 자서전적 작품인 비디오의 마지막 피날레를 마무리하게 의도적으로 편집한 것이었다.

과연 듀이는 무엇 때문에 자살했을까. 감각적인 빈티지 정장을 챙겨 입으며 밝게 보이려고 하지만 그의 피부나 상심하는 표정에서 그가 적지 않은 나이에 경제적인 어려움까지 겪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국이 사회보장 면에서나 기업 후원 면에서 여느 나라보다 나은 상황이긴 하지만 무명 예술인들의 개인적인 포만감까지 충족시켜 주는 도구는 아니다.

아는 인맥을 최대한 동원해 도와줬던 무명 작가가 첫 기회를 잡자마자 그를 헌신짝처럼 버린 데 대한 배신감 때문에 충동적으로 저지른 일이었을까. 아니면 그 역시도 예술인이 겪는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나. 그런데 왜 일레인은 오랜 친구이자 후원자 듀이를 버리고 갤러리와 직접 거래하기로 결정하나. 그리고 듀이의 죽음을 작품에 이용할 수밖에 없었나.

일상의 모든 것을 작품으로 활용했던 미국 팝의 대표적 작가인 앤디 워홀은 자신과 함께 일하던 댄서 프레디 허코가 코넬리아 거리의 5층 건물에서 춤을 추며 몸을 던져 자살하는 사건이 일어났을 때 시니컬하게도 ‘자신에게 미리 귀띔해 줬으면 촬영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비윤리적인 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실제로 자살에 큰 관심을 보인 워홀은 1960년대 초부터 중반에 걸쳐 자살 시리즈 실크스크린을 제작했다. 그중 하나는 1947년 5월 1일, 남자친구에게 유언이 담긴 쪽지를 남기고 엠파이어 빌딩에서 투신 자살한 23세 여성 에블린 맥헤일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잡지 라이프에서 오려내 재해석한 작품으로 ‘자살(떨어진 육체)’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앤디 워홀은 아트 팩토리를 설립해 운영했고, 예술작품을 다량 생산해 예술적 가치와 상업적 가치를 노골적으로 일치시킴으로써 기존 예술가들의 고민거리였던 경제적 의존도를 현저하게 낮추며 자신이 피력한 비즈니스 이론을 실현시켰다.

◇‘자살(떨어진 육체)’, 앤디 워홀, 1962년 작. 1947년 5월 1일 엠파이어 빌딩의 86층에서 투신 자살한 에블린 맥헤일(당시 23세)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
 
영국 ‘아츠앤드비즈니스’의 필립 스패딩은 한 인터뷰에서 “예술단체가 펀드 레이징을 하려면 기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기부의 결과물이 기부자에게 어떤 이익을 주고 어떻게 향유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보고, 이를 설득해야 하지요. 현대 예술은 비즈니스 마인드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됩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동아일보 2010년 6월9일자).

물론 옳은 말이다. 특히나 예술이 공공영역에 들어오면서 자본의 규모도 커지고 다양해졌으니 그에 따라 자금 운용문제와 함께 예술가 지원 방법의 문제도 재점검해야 할 때다. 정부의 지원을 보조할 민간펀드의 활용은 무엇보다 중요한 카드이지만 대중의 호응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기업이 만들어 둔 펀드는 실험적인 예술을 하는 작가들에게는 먹기 싫거나 먹을 수 없는 떡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현대 미술계가 풀어야 할 과제의 가장 큰 매듭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작품에 누구나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업적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고 예술이 가진 내적 기준만을 고집하는 작품활동도 공감대를 끌어내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 않나. 무엇이 더 나은 예술인지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결국 예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해답 없는 질문으로 다시 귀결된다. 법 개정 하나로 문제가 해결될 리는 없다. 해답의 근사치를 찾으려는 노력은 이제 시작이다. 예술적 노동의 보상 역시 식사해결로 끝날 문제는 아니다.

이탈리아 밀라노 거주=조각·미술설치가 hojin00@gmail.com 

입력 2011.02.22 (화)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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