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디자인은 과학이다
국내에 휴대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를 기억하는가? 당시만 해도 휴대전화가 지금처럼 생활 필수품이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거리를 활보하며 자유롭게 통화할 수 있다는 그 놀라운 기술에 매료돼 너도나도 고가(高價)의 휴대전화를 구입했다. 기술과 성능이 곧 제품의 힘이었고 당연히 구매 기준은 통화품질이었다. 휴대전화의 진화에 가속이 붙어 터치폰에 대한 놀라움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스마트폰이 등장해 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최첨단 IT 제품인 스마트폰을 구입하려는 많은 소비자들이 기능보다 디자인을 더 중시한다는 점이다. 휴대전화뿐만 아니라 자동차, TV, 냉장고, 에어컨, 세탁기 같은 생활의 필수적인 기계 제품에서는 기능보다 디자인이 우선인 현상이 이미 오래전 시작됐다.
디자인의 부가가치를 체감한 한국 기업들도 2005년부터 디자인경영을 앞세우며 변화하는 소비자 심리에 발맞추고 있다. 올해 4월에는 세계 3대 디자인 경연대회인 독일 ‘레드닷디자인어워드(Reddot Design Award)’에서 국내 기업의 LED TV, 휴대전화, PMP, MP3, 이어폰 등이 인증 수상했다는 기쁜 소식도 있었다. 정부도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지식경제부는 2012년까지 매년 R&D 예산의 1%인 1000억원을 디자인 인력을 양성하는 데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시는 ‘디자인서울’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한강르네상스 사업, 서울성곽 복원, 디자인거리 조성 등 다양한 사업을 통해 서울의 역사성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되살리겠다고 한다. 심지어 서울시교육청과 손잡고 초등학교 5~6학년을 대상으로 디자인 조기교육을 실시해 창의성과 자기표현력을 향상시키겠다고 한다.
물질적 필요와 생존 문제가 해결되고 나면 자연스레 아름다운 문화를 즐기려는 인간 심리에 비춰 볼 때, 멋진 제품과 아름다운 도시를 개발하기 위한 디자인 역량 강화에 기업과 국가가 많은 투자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디자인을 근사하게 잘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디자인된 결과물이 불러일으키는 파급효과에 대한 과학적 분석일 것이다. 그 효과는 디자인의 대칭점에 서 있는 인간 반응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한다. 성능은 같지만 디자인이 더 우수한 제품에 소비자들은 얼마를 더 지불할 의향이 있을까? 서울숲을 산책하고 한강변을 자전거로 달리는 시민의 행복지수는 몇 점이나 올라갈까? 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을 마주친 소비자에게 어떠한 심리 변화가 유발될까?
우리는 아름다운 디자인이 눈(目)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눈으로 예쁜 디자인을 보니 일면 맞는 말이다. 멋진 디자인과 평범한 디자인 제품 두 가지를 보여주고 뇌 영상반응을 측정해보면, 전자를 봤을 때 소비자가 더 많이 주목한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아름다운 것에 대한 시선집중은 강력한 호기심으로 이어져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요모조모 따져보고 평가하게 된다. 원초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즐기려는 본능으로 많은 사물 중에서 옥석을 가려내어 추한 것은 재빨리 시야 밖으로 버리고, 아름다운 것은 계속 즐기려 하는 것이다.
좋은 디자인의 힘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공감각(multisensory) 디자인에 대한 인간의 뇌 반응 연구는 더욱 놀랍다. 평범한 컴퓨터 자판에 초콜릿 색깔을 입혀 보여주니 소비자의 주목률이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미각 반응도 보였다. 초콜릿을 실제로 먹은 것처럼 맛을 느낀 것이다. 문어 얼굴 모양의 통에 종이티슈를 넣어 문어 입으로 뽑아 쓸 수 있는 디자인의 티슈통을 본 소비자는 시각뿐 아니라 촉각(haptic) 반응도 보였음을 뇌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이 재미있는 티슈통을 보고 티슈를 하나씩 뽑아 쓰는 상상을 해 본 것이다. 눈으로 보기만 했는데 미각과 촉각이 반응했다는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이 연구에서 가장 결정적인 결과는 아름다운 디자인을 소비자들이 훨씬 더 행복해했다는 사실이다.
그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공감각 디자인 제품에 열광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과학적으로 규명한 셈이다.
디자인은 소통이다. 디자이너의 예술성이 작품을 만들지만 그것을 즐겨야 할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사람들은 왜 좋은 디자인을 원하는가. 무엇이 좋은 디자인인가. 좋은 디자인의 효과는 무엇인가…디자인의 예술성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힘을 가지려면 이 과제가 해결돼야 한다. 창의적인 디자이너 양성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관심과 투자가 과학적인 연구에까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성영신 고려대 교수·심리학
[중앙일보]2010.06.26 00:1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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