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14>제설함, 이미지 깨끗하고 사용은 손쉽게
도로 곳곳에 파란색 또는 노란색 제설함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소금이나 염화칼슘과 같은 제설재와 모래, 그리고 삽, 빗자루, 쓰레받기와 같은 도구가 들어 있습니다. 일부 제설함은 여름철 장마 때 모래함 역할을 겸하기도 하는데, 색상이 원색적인 데다 각 지자체의 로고나 캐릭터가 덧붙여지고, 쓰레기까지 버려져 도시미관을 해치고 있습니다. 강화플라스틱(FRP) 소재의 기존 제설함은 제설재를 뿌리기 위해 삽과 같은 도구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론 주변에 있는 도구들로 정돈되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제설함은 대개 경사진 길에 설치되기 때문에 비스듬히 놓여 있는 제설함도 많고, 수평을 맞추기 위해 잡동사니를 괴어놓기도 합니다(사진).
디자이너 안성모는 제설함이 지닌 특수 용도에 주목해 환경과 기능에 최적화된 제설함을 제안합니다. 폴리메틸 메타크릴레이트(PMMA, Polymethyl methacrylate) 소재로 시설물을 투명하게 만들어 존재감을 덜고, 제설함의 용도와 내용물이 투시되어 보이도록 하였습니다. 투명한 이 특수소재는 흠집에 강하고, 내충격성이 높으며, 깨지더라도 날카로운 파편이 생기지 않습니다. 또한 열반응 도료(Thermochromic Paint)를 이용하여 봄, 여름, 가을에는 매끈하고 투명하지만(그림1), 겨울철 기온이 0℃ 이하가 되면 눈꽃 패턴이 나타나 이 시설물을 사용할 때가 되었음을 알립니다(그림2).
제설함에는 제설재나 모래가 투명한 포대자루에 낱개로 포장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꺼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손잡이가 있는 긴 튜브는 한 번에 들기 쉽고, 입구를 손으로 뜯어낸 후 쉽게 흩뿌릴 수 있어 장비나 도구가 불필요합니다. 또 제설함의 길이와 폭을 줄여 점유공간을 최소화하고, 스테인리스스틸 지지부가 함을 지상으로부터 띄워 바닥면을 늘 청결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주변 경관에 상관없이 놓인 부피가 큰 원색의 제설함은 재고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투명하거나 중립적인 중성색이어야 합니다. 특수목적의 공공시설물은 외관도 중요하지만, ‘제설함’이란 글자 표시가 불필요할 정도로 제품의 용도와 사용법을 한눈에 알도록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쉽게 접근하도록 디자인되어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중앙일보] 200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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