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16> 간판은 다양 속 통일, 통일 속 다양성을
[사진] 야간대안
총량적으로 볼 때 간판은 도시의 지배적인 시각환경 요소입니다. 서울시 전수조사에 따르면 2009년 서울의 간판 수는 130만여 개에 이릅니다. 이 중 불법 간판의 비율은 66.8%에 이릅니다. 또한 옥외광고물의 40% 이상이 판형 간판입니다. 이는 자신의 점포와 광고물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넓은 면적의 판형 간판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덕지덕지 붙은 판형 간판으로 인해 낮에는 건물이 보이지 않고, 밤에는 그 넓은 간판의 내부에 형광등을 설치해 막대한 에너지를 소비할 뿐 아니라 형형색색의 빛을 발광하여 행인과 운전자의 시각을 어지럽게 합니다(왼쪽 사진).
규슈예술공과대학 사토 마사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보도를 걸어가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한 곳을 응시하는 시간은 평균 0.3초, 그 순간 사람의 뇌가 기억하는 정보량은 15글자를 넘지 못하며 시선이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지면으로부터 높이 10m 이내입니다. 이는 건축물의 3층 높이에 해당합니다. 이 범위를 넘어 게시된 정보는 잘 인식되지 않습니다. 즉 상당수의 간판이 정보 전달 기능이 매우 약한 무용지물인 셈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최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개발하여 간판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책을 살펴보면 천편일률적인 가이드라인의 적용으로 오히려 경관의 특성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디자이너 정규상은 간판으로 도배를 한 어느 아파트 단지 상가건물의 개선을 제안합니다. 우선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준수하여 3층 이상에 설치된 간판을 모두 제거하고, 판형을 입체문자형으로 교체하니 비로소 건물의 입면이 드러납니다(오른쪽 사진). 또한 빛이 투과되는 필름을 문자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하여, 낮에는 간판주들의 요구를 존중하여 업소별 여러 색상이 느껴지도록 하되, 밤에는 필수적인 정보만 흰색으로 표출되도록 함으로써 주변 환경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가독성을 높였습니다(아래 사진).
간판 디자인에 있어서 표준화·획일화·규격화는 질서와 상생을 위한 초보적인 방편이지, 최종의 대안이 아닙니다. 간판의 정답은 다양성 속의 통일성, 통일성 속의 다양성입니다. 그 원칙은 간판들 간의 조화로부터 그것이 부착되는 건물, 커뮤니티, 나아가 도시 전체에 적용돼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공간디자인
[중앙일보] 201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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