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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백남준 실험 정신 공유하는 탈경계적 사유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라투르 교수 선정… 슈아 야베 특별전도

박우진 기자 panorama@hk.co.kr

[사진]브뤼노 라투르 
 
백남준아트센터는 올해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의 수상자로 프랑스 파리정치학교 브뤼노 라투르 교수를 선정했다. 라투르 교수는 철학과 인류학을 전공했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드는 과학·기술사회학자로 널리 알려졌다.

2002년 <우상파괴, 과학, 종교 그리고 예술에서의 이미지 전쟁 너머> 전과 2005년 <사물의 공공화-민주주의의 기운>이라는 전시를 공동 기획해 예술과 과학을 연결하는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기도 했다.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심사위원회가 라투르 교수를 선정한 이유는 그의 이론이 "백남준의 철학과 창조성을 뒷받침하고 확장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인 인하대학교 성완경 교수는 "자연과 문화, 인간과 비인간 간의 위계 체계를 철폐하는 브뤼노 라투르의 이론은 백남준이 초창기 음악가로서 수행했던 실험들과 공통점을 가진다. 나아가 이후의 비디오 및 미디어 아트를 전체적으로 규명하는 데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브뤼노 라투르의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는 라투르 교수의 대표작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는 그 독창적인 사유의 바탕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라투르는 '우리 근대인'이 스스로 근대인이라고 규정하는 과정에서 빠진 언행 불일치의 딜레마가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한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국제환경회의는 각각 사회주의의 몰락과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지와 무능력을 뜻했다. 전근대와의 단절을 전제로 자연과 사회, 야만과 문명, 사실과 가치, 인간과 비인간을 구분함으로써 발전을 주장해 온 근대적 이상이 실패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라투르는 삶과 사회를 일련의 전문적 카테고리로 구분하는 근대적 논리가 오히려 세계를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은 다양한 자연과 문화적 요소들이 복합적이고 경험적으로 연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진]벡-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

"오존층의 구멍은 완전히 자연적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사회적이면서도 너무나 담론적이다. 기업의 산업 전략과 국가의 정상들은 권력과 이익만으로 환원되기에는 화학반응으로 너무나 가득 차 있다. 생태계에 대한 담론은 의미효과로 축소되기에는 너무나 실제적이고도 사회적이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라투르가 과학·기술이 사회적 현상으로 드러나는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방식이다. 그는 사회적 맥락이나 이해관계가 아니라 과학·기술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물들과, 그들 간의 관계가 낳는 효과에 주목한다.

예를 들면 "미 해군 조직은 근본적으로 각 직위가 그들이 사용하는 폭탄과 연관되는 방식에 따라 재편된다. 마찬가지로 프랑스 국영전력회사와 르노 자동차는 그들이 연료전지에 투자하느냐, 혹은 내연기관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입장을 택한다. 그리고 전기가 발명되기 이전의 미국과 그 이후의 미국은 완전히 다른 두 국가다."

라투르는 우리가 근대인이라는 믿음을 버릴 때 우리 자신의 현장을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타문화를 연구하는 인류학자처럼 말이다.

[사진]닉슨TV

인류학자들은 낯선 문화를 접할 때 그 사회의 신화와 정치 형태, 종교와 기술, 민속과 의식 등을 한 데 맞추어 단일한 서사를 짜게 되는데, 정작 자신의 사회는 그렇게 이해하지 못한다. 근대 문명 속에서는 모든 영역이 엄격하게 구분되어 있고 각각 기능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매우 과학적이면서도 야생적이고, 인간과 사물의 경계까지 흩뜨리며 문명적 범주들을 해체하는 동시에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라투르는 백남준과 만난다. 라투르에 대한 시상은 11월26일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진행되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이번 시상과 관련해 슈야 야베 특별전 <무봉탑: 백남준이 오래 사는 집>도 마련했다. 슈야 야베는 백남준과 함께 작업했던 일본의 전자공학자다. 백남준이 전자공학 기술과 예술을 접합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는 둘의 대표작인 '벡-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비롯해 '닉슨 TV', '로봇 K-456' 등이 공개된다.

'벡-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는 누구든지 피아노처럼 연주할 수 있는 비디오 합성기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개발된 작품이다. 비디오 카메라 등 7개의 영상 소스로부터 데이터가 입력되며, 실시간으로 편집할 수 있는 이 다재다능한 합성기에 대해 백남준은 이렇게 선언했다.

[사진]로봇 K-456 

"비디오 합성기는 우리로 하여금 TV라는 화면의 캔버스를/ 레오나르도만큼 정확하게/ 피카소만큼 자유롭게/ 르느와르만큼 다채롭게/ 몬드리안만큼 심오하게/ 폴록만큼 격렬하게/ 재스퍼 존스만큼 서정적으로 만들 수 있게 할 것이다."

자기장을 발생시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의 얼굴을 뒤틀어 놓은 '닉슨 TV'는 정치에 대한 풍자로 해석되는 작품이다.

'로봇 K-456'은 리모트 컨트롤러로 작동시키는 전자 자동인형으로 1963년에 만들어졌다. 이듬해에는 여러 차례 로봇 오페라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 남겨진 것은 그의 '시체'다. '로봇 K-456'은 1982년 뉴욕 휘트니미술관 앞 메디슨가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백남준에게 사망선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백남준은 그의 죽음을 일러 "21세기의 재앙"이라 칭하며 "인류가 기술을 통제해야지 기술이 인류를 통제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고 한다.

전시는 내년 3월30일까지 열린다. 031-201-8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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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시간 : 2010/12/02 14:45:57 수정시간 : 2010/12/02 14:45: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