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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김현태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서경이 만난 사람] 김현태 한국디자인진흥원장

"디자인은 비용 아닌 투자…매출액의 1%라도 투입해야"

대담=정상범 성장기업부장 ssang@sed.co.kr 
정리=김흥록기자 rok@sed.co.kr

부가가치 창출 핵심요소로 각광
中등 경쟁국은 투자 가속화

인문학적 소양·공학 이해력 갖춘
융합형 인재 10년내 1만명 육성
국내 디자인 파워 강화해야

매년 열리는 독일의 iF와 레드닷, 미국의 IDEA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다. 한국 기업들은 지난해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모두 317건의 상을 휩쓸어 전체의 10%를 차지했다. 어느덧 부쩍 성장한 한국의 디자인 역량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국내 디자인정책을 총괄하는 김현태(56ㆍ사진) 한국디자인진흥원장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경기도 분당 코리아디자인센터에서 만난 김 원장은 일부 대기업에서 디자인 발전을 주도할 뿐 진정한 디자인 강국으로 가기에는 대다수 기업의 관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국내 산업계의 최대 문제는 바로 디자인 분야에서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대기업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손색없는 디자인 경영을 하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디자인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김 원장은 특히 디자인을 투자가 아닌 비용으로 여기는 산업계의 인식이 디자인 경영 확산의 걸림돌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디자인은 소모성 비용이 아니라 연구개발(R&D)처럼 투자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R&D에 매출액의 3~5%를 쓴다면 디자인에는 적어도 단 1%라도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디자인 활용도가 12%에 불과하다며 이를 유럽 수준인 50%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가 이처럼 '1% 디자인투자론'을 강조하는 것은 실제 작은 규모의 디자인 투자를 통해 큰 효과를 거두는 사례를 직접 확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진흥원은 지난해부터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택, 디자인 지원 등을 통해 500만달러 이상의 수출기업으로 육성하는 '수출중기 500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울산의 한 소방방재 전문업체의 자료를 직접 찾아와 디자인 투자의 효과를 설명했다. 그 업체는 지난해 이동형 소방장치의 디자인을 개발한 후 1개월 만에 동남아시아에 150억원의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김 원장은 "디자인 투자야말로 적은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아울러 기업들이 디자인 투자를 장기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것도 주문했다. 그는 "R&D에 투자한다고 해서 100% 성공하지는 않듯이 디자인 투자도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며 "거래선 개척을 위해 한번의 접촉에 그치지 않고 재차ㆍ삼차 시도하듯 디자인도 지속적으로 투자한다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김 원장 나름의 디자인 투자론은 그의 디자인 철학은 물론 세계 산업계의 흐름과 맞닿아 있다. 일반기업이 기술로 차별화하기는 더욱 힘들어지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기술이 각광받던 예전과 달리 최근에는 소비자와 직접 접점이 없는 일부 첨단산업을 제외하고는 소비자에게 환영 받는 기술은 대부분 공용화됐다"며 "제품에서 기술이 갖는 우위는 점차 줄어들고 디자인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요소로 바뀌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기술이 주도하는 제품개발의 경우 기술적 강점이 부각돼 '만보기'와 같은 제품이 나오지만 디자인 주도형 개발을 한다면 나이키와 애플이 합작해 음악을 즐기면서 조깅 거리와 속도ㆍ시간 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든 나이키 플러스 같은 제품이 탄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따라 김 원장이 가진 산업 디자인 철학도 소비자에게 기반을 두고 있다. 소비자의 감성에 와 닿는 것이 디자인의 제1요건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내 발에 맞는 신발이 아니라 10켤레가 있더라도 또 갖고 싶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라며 "옷이나 신발뿐 아니라 핸드폰 등 모든 제품이 앞으로 이 같은 방향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디자인이 점차 제품개발의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어 한국 제품을 따라잡기 위한 경쟁국의 디자인 투자도 가속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의 디자인 역량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만큼 중국이나 신흥개발국으로부터 디자인진흥원과 협력관계를 맺자는 제의가 이어지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진흥원은 몇 년 전부터 중국의 여러 자치구와 업무협약을 맺어 디자인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김 원장은 여러 국가들 가운데 특히 중국의 디자인 투자활동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그는 "업무협조를 위해 중국을 방문해보면 현지 디자인 관계자들은 한국 제품이 중국산보다 인정받는 주요 이유가 기술이 아닌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중국 자치단체는 한 도시의 디자인센터로 쓰기 위해 9만㎡ 부지에 5개 건물, 지하가 연결되는 거대한 구조물을 새로 만드는 등 통 큰 디자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 같은 글로벌 경쟁을 뚫고 국내 디자인 파워를 높이기 위한 궁극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인력양성을 꼽았다.

특히 인문학적 소양과 공학적 이해력을 지닌 융합형 디자인 인재를 10년 내에 1만명가량 육성하는 것이 김 원장의 목표이자 바람이다. 국내 디자인 전공인력은 연간 약 2만4,000명이 배출되며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의 양적 인프라를 자랑하지만 과연 질적으로는 어떤지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소수의 상위인력은 세계적으로 실력을 인정받는 반면 대다수의 경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에 그는 인문학 등 타 학문과의 융합교육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있다고 밝힌 애플 정체성의 핵심도 바로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간의 심성이나 기호는 바뀌기 마련이고 이런 트렌드를 읽는 눈을 갖추려면 인문학 소양이 필요하다"며 "아무리 그림을 잘 그려도 인간을 보는 눈이 없으면 항상 뒷북만 치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흥원이 지원하는 융합형 디자인대학은 디자인학과를 중심으로 이공계와 상경계ㆍ인문사회계열 등의 다양한 학문 분야를 통합해 융합형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곳이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이제 겨우 씨를 뿌려놓은 상태로 10년은 지나야 결실이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한 뒤 "인문학적 배경을 지닌 디자이너들이 매년 몇백명씩 배출돼 십년 뒤 1만명가량 양성되면 대한민국 디자인계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며 웃었다.

내년 임기 3년차를 맞는 김 원장은 2011년에도 디자인진흥원의 본래 역할에 충실할 것이라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취임 초기 디자인에 대한 산업계의 관심을 높이는 일과 인력개발 및 양성을 임기 내 터전을 닦아놓아야 할 과제로 선정했다. 국내 유일의 공식 종합디자인 전시회인 디자인코리아와 디자인 인증인 '굿디자인'도 김 원장이 각별히 신경을 쓰는 분야다. 굿디자인의 경우 특히 기업의 영업활동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증이라는 점에서 매년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해외 기업에도 문호를 개방한 후 재규어나 볼보ㆍ지멘스ㆍ캐논 등 국내시장을 공략하려는 글로벌 기업들의 참여도 지속적으로 이어져 2006년 2곳에 불과했던 해외 기업이 올해 37개로 늘어났다.

그는 "디자인진흥원이 주관하고 지식경제부과 선정하는 행사인 만큼 인증을 획득한 후 매출로 직접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며 "앞으로 더욱 활성화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디자인진흥원이 지금까지 열악한 디자인 산업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디자인 경영이나 세계진출을 도와왔지만 이제는 질적 성장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고 전했다. 그는 "디자인이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디자인 문화 확산에 더욱 적극적으로 임할 것"이라며 "제조기반이 튼튼한 우리나라에서 디자인 개발에 투자한다면 세계시장을 무대로 한 강소기업도 얼마든지 육성할 수 있다"고 디자인에 대한 관심을 거듭 당부했다.

◇약력

▦1954년 경북 의성 ▦1978년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1979년 행정고시 23회 ▦1996년 통상산업부 행정관리담당관 ▦2004년 산업자원부 경수로지원기획단 파견 건설기술부장 ▦2006년 산업자원부 무역위원회 무역조사실장 ▦2008년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 보험사업단장 ▦2009년 4월 한국디자인진흥원장

업무자율 최대한 보장, 책임 소재는 명확하게


■金원장은

직원들과 소통도 중시… 취임후 매달 거르지않고 퇴근후 소주 만남 가져


김현태 원장은 소탈한 성격답게 직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며 업무의 성과를 높이는 방식으로 조직을 꾸려가고 있다. 즉 일단 업무를 맡겼다면 일을 진행하는 도중에는 별다른 참견을 하지 않고 지켜본다는 것.

다만 오랜 공직생활의 경험을 토대로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소재는 누구보다 분명히 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직원들은 연초에 팀마다 계량ㆍ비계량적 차원에서 업무목표치를 설정해놓았으며 오는 15일 실적보고를 앞두고 있다. 김 원장은 최근 직원들에게 목표달성 여부에 따라 신상필벌을 명확히 한다는 점을 재차 각인시켰다는 후문이다.

김 원장은 직원들과의 소통도 중요시한다. 그는 지난 2009년 취임 이후 지금까지 매달 거르지 않고 직급이나 성별에 따라 직원들을 분류해 퇴근 후 소주를 기울이는 자리를 이어오고 있다.

30년 경력의 행정관료 출신답게 여러 분야에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졌다. 또 기업의 디자인 역량을 높일 수 있는 분야라면 어느 곳이라도 뛰어가 반드시 일을 처리해내는 남다른 추진력을 갖추고 있다.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도시축제로"


■7일 개막 앞두고 막바지 준비

철거 주택서 전시 작업 ‘디자인코리아 인 한남’ 새롭고 다양한 시도 선봬
세계적 브랜드 전문가·산업 디자이너등 참석 내실있는 국제회의 자신


김현태 원장은 요즘 종합디자인전시회인 '디자인코리아'를 준비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그는 7일부터 오는 12일까지 서울 COEX에서 열리는 '디자인코리아 2010'을 위해 이탈리아 밀라노가구박람회와 영국의 100% 디자인런던을 직접 방문해 벤치마킹하는 등 열정을 쏟았다.

김 원장이 원하는 디자인코리아 행사의 지향점은 세계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거대한 도시축제다. 이 같은 아이디어는 100% 디자인런던에서 차용했다. 그는 "디자인런던 행사의 경우 주요 전시장이 차로 한 시간가량 떨어져 있어 디자인을 보기 위해 이동하면서 도시 자체를 즐기게 된다"며 "전시장에 갇혀 있지 않은 전시회라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상은 올해 디자인코리아 2010에도 일부 반영됐다. '디자인코리아 인 한남'이 대표적이다. 디자인코리아 인 한남은 한남동 재개발구역의 철거가구 20여채를 임대해 두 달간 약 30명의 아티스트들이 자유롭게 작업하고 결과물을 디자인코리아 2010에 전시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행사에는 영화배우 구혜선도 참여하고 있다. 일반인 누구나 작업기간 중 현장을 방문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행사기간 내 진행되는 콘퍼런스도 김 원장이 기획에 남다른 관심을 쏟은 행사다. 이번 국제회의는 세계적 브랜드 전문가이자 2012년 런던올림픽 디자인프로젝트 총괄책임자인 카를 하이젤먼을 비롯해 나이키ㆍ모토로라 디자인으로 이름이 높은 산업디자이너 스콧 윌슨, 이건표 LG디자인센터장, 마크 브라이텐버그 세계디자인단체협의회장 등 세계 유수의 디자인 권위자들이 참석한다. 김 원장은 "이번 국제회의는 세계 어느 곳과 견주어도 내실 있고 알찬 행사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디자인코리아 2010이 서울시의 디자인 행사와 중첩되는 게 아니냐는 일부의 시각에 두 행사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김 원장은 "서울시의 디자인 행사는 도시미관이나 환경 등 공공디자인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디자인코리아 2010은 산업디자인에 좀 더 비중이 맞춰져 있어 지향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다"고 명확히 밝혔다.

그는 "이탈리아의 밀라노페어는 삼성 등 글로벌 기업도 단체로 관람할 정도로 명성을 자랑한다"며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앞으로 디자인코리아 역시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디자인 전시회로 키워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12/05 17:2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