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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디자인으로 나눔 실천…복지기관 등에 CI 기부

[Nwes & People] 김형석 경희대학교 예술ㆍ디자인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에 달하는 기업이미지(CI)를 지난 5년간 국내 사회봉사기관과 비영리학술기관 등 70여 곳에 무상 기부한 이가 있다. 김형석(46) 경희대학교 예술ㆍ디자인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다.

2004년 3월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한 뒤 ‘아이덴티티 디자인’ 강좌를 맡으면서 학생들과 함께 디자인 기부를 시작한 그는 지난달 24일 KBS홀에서 보건복지부 주최로 열린 대한민국 휴먼대상 시상식에서 재능기부를 펼친 공로로 장관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는 “디자인 관련 분야의 위상이 높아진 만큼 이제 디자인을 통한 사회환원을 적극 실천해야 할 때”라며 말문을 열었다.

재능기부로 진정한 나눔 실천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작품에 상응하는 금전적 대가를 받고 클라이언트에게 주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디자인이 거래되다 보면 분명 음지가 생기게 된다. 돈 없는 곳은 디자인의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되는 거다. 1980년대 디자인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했을 때에 비하면 지금은 디자인의 위상이 사회적으로 매우 높아지지 않았나. 이렇게 디자인이 대접받고 중요시된 만큼 디자인을 통한 사회환원을 통해 디자인의 음지를 없애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서 아이덴티티 디자인(CIㆍBI 등)을 전공, 전임교수로 교단에 서기까지 그의 이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져 갔다. 그리고 2004년부터 경희대학교에서 ‘아이덴티티 디자인’ 강좌를 맡으면서 품고 있던 생각을 실천하기에 이르렀다.

“시각 디자이너로서, 특히 학생들을 가르치는 처지에서 ‘디자인이 더는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다’는 올바른 디자인 정신을 심고 싶었다. 무엇보다 돈이 없어서 디자인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곳에 우리들의 재능을 통해 미약하나마 선행을 베풀고자 했다.”

그렇게 ‘디자인의 사회환원’, ‘재능나눔ㆍ지식기부’의 모토를 내걸고 국내의 사회봉사기관과 비영리학술기관에 아이덴티티 디자인시스템을 구축해 무료로 기증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그의 조사 결과 이런 기관들은 예산이 절대적으로 부족해 제대로 된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2005년 첫 기부한 CI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고, 2006년부터 프로젝트는 더욱 본격화됐다. 현재까지 무상기부를 한 곳은 70여 곳이다. 나눔의 둥지, 대한민국 교육봉사단, 동물보호 학대방지연합, 로뎀나무, 샘물지역 아동센터, 서울시 여성보호센터, 선한 봉사센터, 영광 지압힐링센터, 인간개발연구원, 프로보노 코리아, 한국 알트루사, 한국 희귀질환연맹, 한민족복지재단 등에서 기부받은 CI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수준 높은 디자인으로 수혜기관 만족도 높아

그와 아이덴티티 디자인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한 해에 스무 곳 남짓한 기관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진행한다. 3~4명의 학생들이 한 팀이 돼 여름방학도 없이 일년 내내 매달려 완성한다.

“CI만 제작해 전달하면 빨리 끝나겠지만 그게 아니다. 3월에 디자인 나눔에 대한 취지를 학생들에게 설명하고 이론수업을 한 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심벌마크와 로고 타이프 제작에 착수한다. 5월 초 작업을 완료하게 되는데, 이때 총 10여 개의 심벌마크와 5~6개의 로고타이프가 준비된다. 학생들을 인솔해 해당 기관에 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기관에서 직접 원하는 디자인으로 고를 수 있게 한다. 선택이 완료되면 그 심벌마크와 로고타이프의 시각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배치와 비율을 찾아내고 그때부터 명함ㆍ봉투ㆍ편지지 등의 서식류, 유니폼, 차량, 간판 등에 CI를 활용할 수 있도록 12월 초까지 디자인 작업에 매달린다. CI 제작보다 그 CI가 잘 활용될 수 있도록 어플리케이션 디자인 작업을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수혜받는 기관은 CI 완성도에 대한 만족도가 상당히 높다.

“이 작업은 4학년 학생들과 함께하는 작업이지만 학생들이 과제수준에서 완성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내가 디자이너로서 이름을 걸고 모든 책임을 지고 진행하는 디자인이다. 또 엄연히 외부 실무 디자인 작업이므로 높은 수준의 작품성을 담보한다. 아무리 좋은 취지의 일이라고 하더라도 개발한 아이덴티티 디자인시스템을 수혜받는 기관 처지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전문 디자이너들의 시각에서 볼 때 값어치 없는 결과물로 보인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일년 내내 공을 들여 탄생시킨 작품이 잘 활용되는 경우가 대다수지만 간혹 예산상 이유로 CI를 활용하지 못하는 기관도 있다. 그의 마음이 가장 공허해지는 때다.

“명함이나 봉투 등을 인쇄만 해서 사용하면 되는데, 그 인쇄비용조차 예산에 막혀 감당하지 못하는 기관이 있다. 일년을 매달려 CI를 제작해 드렸는데 활용을 못하면 그것만큼 슬픈 일도 없다. 이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큰 애로점이 바로 그 부분이다.”

디자인 혜택, 해외로도 넓힐 것

5년여에 걸친 꾸준한 재능기부에 대한 명성이 쌓여 이제는 각 기관에서 직접 요청이 들어올 만큼 기부활동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며 겸손해했다.

“내가 조사한 것만 해도 국내 사회봉사기관은 수백개다. 70여 곳을 했지만 아직 티도 안 나는 정도다(웃음). 무슨 일이든 10년 정도는 해야 이렇다 할 결과물을 보이며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가서는 그동안 작업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책을 쓸 수도 있을 거고, 또 국내를 넘어 해외에도 디자인 기부활동을 넓히고자 한다.”

그는 “국내활동에 대한 만족할 만한 성과가 있은 후엔 ‘디자인 혜택’을 해외 오지의 기업 등에 넓혀 아이덴티티 디자인을 기부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좋은 일을 하고 있는 사회봉사기관의 활동 내용을 나타내는 데 CI만큼 효율적인 게 없다. CI가 없다 보니 그동안 그들의 존재를 국민에게 알리기 어려웠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아이덴티티 디자인 무상 기부를 실천했던 만치 CI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관에 앞으로 더 열심히 디자인 환원을 하고자 한다. 또 이런 활동에 동참할 디자이너나 교수 등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디자인 분야가 다양하기 때문에 각자의 분야에서 디자인으로 사회환원을 하고자 하는 동지가 많아진다면 더욱 신나게 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을 듯싶다.”

용인=글ㆍ홍연정기자 hong@ 사진ㆍ안윤수기자 ays77@

기사입력 2010-12-07 08: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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