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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애플 아이폰4, 디자인 우선주의

‘전봇대’ 뽑은 아이폰4, 무엇을 노렸나
안테나 없앤뒤 수신 불안
“부작용 미리 예상했을 것”
기능보다 디자인 선택
절제·단순함으로 승부수 

 » 아이폰4는 내부 기판을 없애고 안테나를 밖으로 꺼내 구조적 버팀대로 사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애플의 이같은 ‘디자인 우선주의’는 수신감도 저하라는 문제에 맞닥뜨리면서 형태와 기능에 관한 디자인계의 오랜 고민을 노출시키고 있다. 사진은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가 지난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아이폰4 출시행사에서 아이폰4의 안테나 기능을 소개하고 있는 모습. 

애플이 지난주 미국 등 5개국에서 출시한 스마트폰 ‘아이폰4’가 사흘 만에 170만여대가 팔려나가는 선풍적 인기 속에 안테나 수신감도 불량 문제로 홍역을 겪고 있다. 지난 7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아이폰4 출시행사에서 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가 “엔지니어링 안테나 시스템을 통한 놀라운 기술적 혁신”이라고 자랑한 제품이 암초를 만난 셈이다. 국내에도 7월중 출시 예정인 아이폰4는 형태와 기능, 미적 추구와 실용성 사이의 팽팽한 긴장 위에 있는 산업디자인계의 오랜 논쟁을 휴대전화 사용자한테도 던졌다. 디자인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지난 4월 인터넷에 유출된 ‘아이폰4’의 시제품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했다. 무엇보다 디자인이 애플답지 않다는 평가가 많았다. 아이폰은 2007년 출시 뒤 줄곧 유선형 디자인을 고수해왔는데, 시제품은 각진 모서리에 뒷면은 평평하고 두께가 얇아져 손에 쥐기 불편하다는 점 등이 ‘애플답지 않은’ 이유로 제시됐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가 제품 출시 프레젠테이션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 중 가장 아름다운 디자인”이라며 구조와 디자인 특성을 설명한 뒤 사정은 달라졌다. 아이폰4는 전화기 내부에 있던 안테나를 밖으로 꺼내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테두리로 삼는 파격을 시도했다. 또 기판을 없애 내부 공간을 넓혔다. 배터리 용량이 커졌는데도 단말기는 더 얇아진 배경이다. 플라스틱이던 뒷면은 앞면처럼 고강도 강화유리로 바뀌었다. 강화유리 두 쪽을 금속테두리가 감싸고 있어, 매끈하고 광택이 나는 직사각형의 물체다.

디자인 전문가들은 아이폰4가 절제와 단순함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니멀리즘의 극치라며 높이 평가했다. 특히 디스플레이 기능을 전혀 하지 않는 뒷면마저 유리로 만든 시도에 주목했다. 샌프란시스코의 디자인회사 ‘원앤코’(One&Co)의 책임디자이너 조나 베커는 “뒷면의 카메라 렌즈가 유리이기 때문에 나머지 영역도 모두 유리로 만든 것 같다”며 “수시로 얼굴에 갖다대는, 사람과 가장 친숙한 기기를 철과 돌의 재질로만 만든 실험적 시도”라고 평가했다.

통신단말기에서 안테나는 꼭 필요한 기능이지만, 디자인에선 골칫거리였다. 업계에서는 안테나를 ‘전봇대’로 부르며, 다단 연장형, 돌출형, 내장형, 스티커방식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스티브 잡스는 구조 기능의 안테나에 대해 “업계에서 일찍이 시도되지 않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정보기술 전문지 <컴퓨터월드>는 아이폰4가 애플 내부에서 디자인 부서가 기술이나 서비스 관련 부서보다 월등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무게도 더 나가고 깨질 수 있는 강화유리나 구조물 기능을 하는 안테나를 채택한 점 등을 근거로 꼽았다. 이 잡지는 “애플이 아이폰4에서 ‘기능을 압도하는 형태 우선주의’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산업디자인계의 불문율을 뒤집고 새 트렌드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 디자이너에게 새 고민을 안겨줬다. 기존 휴대전화에서 폴더, 슬라이드, 막대 등 다양한 디자인 요소를 활용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스마트폰은 디스플레이 화면과 배터리 덮개인 뒷면 정도만 활용할 수 있을 뿐이다. 차별화가 힘든 환경은 디자인을 최대한 배제하면서 디자인 경쟁을 하게 만들었다. 역설적으로 제약과 결핍이 다양한 새로운 기술적 시도를 낳게 한 것이다.

1500만대 넘게 팔린 ‘초콜릿폰’을 디자인한 차강희 엘지전자 디자인연구소 상무는 “당분간 스마트폰 디자인은 아이폰4에서처럼 화려함보다 절제되고 섬세한, 기본 기능 위주의 이성적 디자인이 주류가 될 것”이라며 “이후에는 일반전화처럼 다양한 시도가 자연히 생겨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은 애초부터 디자인 회사를 지향했다. 애플의 모든 제품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와 함께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만듦(Designed by Apple, Made in China)’이라는 알림이 새겨 있다.
 
☞ 미니멀리즘(Minimalism)
미술, 건축, 디자인 등에서 단순함과 절제를 통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적 흐름을 일컫는다. 꾸밈을 최소화하고 구조와 기능상 본질적인 것만을 남기고 불필요한 요소들을 과감하게 배제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패션계에서는 검은색 소재 위주로 간결미를 추구하는 프라다가 대표적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기사등록 : 2010-06-29 오후 07:36:00  기사수정 : 2010-06-30 오전 06: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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