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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고객은 이성으로 제품 선택안해

Cover Story `감성디자인 구루` 도널드 노먼 박사 -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 대담  

세계적인 디자인 구루(Guru) 도널드 노먼 박사(왼쪽)와 김준영 성균관대학교 총장이 지난 19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총장실에서 만나 인간 중심 디자인과 이를 위한 창의적 인재 양성을 주제로 대담했다. 노먼 박사와 김 총장이 대담에 앞서 가볍게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감성 디자인`은 단어가 추상적인만큼 기업인들이나 디자이너 등이 각자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달라진다. 혹자는 디자인이 예쁜 물건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감동할 수 있는 광고를 하거나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디자인해 고객을 감동시키는 것이 곧 감성 디자인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개념을 어떻게 해석하든 중요한 것은 기업들이 감성 디자인을 등한시해서는 결코 글로벌 생존 경쟁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감성 디자인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 향후 감성 디자인 이후를 이끌 화두는 무엇인가. 디자인 경영을 이끌어갈 인재는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 같은 문제는 기업은 물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매일경제 MBA팀은 이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감성 디자인 대가(Guru)인 도널드 노먼 박사와 지난 19일 융복합 과정으로 창의적 인재 양성에 주력하고 있는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을 만났다.

노먼 박사는 소비자의 구매결정에 가장 크고 즉각적인 영향을 끼치는 `감정`을 움직이는 디자인이 감성 디자인이고 이는 단순히 물건의 외양이 아름답게 디자인됐다고 해서, 제품의 기능이 뛰어나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밝혔다. 기업들이 감성 디자인 전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각 디자이너나 기술자, 경영자가 각자 자기 분야의 전문성을 뛰어넘어 상호 소통하고 장점과 아이디어를 융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또 우리는 매우 복잡한 시대에 살고 있다면서 복잡한 것들이 잘 정리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의 힘이라고 주장했다.

김준영 총장은 "산업현장에서 이 같은 통합적 기업 경영, 디자인 경영 전략이 창출되려면 그에 앞서 대학에서부터 학문 간 융복합 과정으로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위정환 매일경제 기업경영팀 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대담은 성균관대 총장실에서 약 1시간 동안 진행됐다.

-우선 노먼 박사에게 묻겠다. 공학자였는데 디자인 전문가가 됐다.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애플 부사장 경험이 아무래도 컸다. 처음에는 로봇과 같이 `지능을 갖춘 기계(inteligent machine)`에 관심이 많았다. 그 기계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연구하다보니 기계의 모델이랄 수 있는 사람의 뇌와 심리는 어떻게 작동하고 사람들이 결정을 어떻게 내리는가를 알고 싶어졌고 심리학을 공부하게 됐다. 그러던 중 정부 요청으로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조사하러 갔다가 발전소 내부의 설계가 엉망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있었는지에 대해 조사를 하게 됐다. 자연스레 내 관심도 순수 학문에서 산업현장으로 옮겨갔고 1993년부터 애플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디자인이 무엇이고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관심을 갖게 됐다. 공학이나 심리학, 경영학 그리고 디자인은 결국 함께가야 하는 것이다."

-노먼 박사의 1980~1990년대 저서를 보면 사용자의 감정에 대해 고려하지 않고 오직 제품의 유용성과 사용의 편리성, 그리고 기능과 형태만을 강조했다. 2006년에 `감성 디자인`이라는 저서를 집필하면서부터 심미성과 인간 감성에 대해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생각이 변한 이유는.

"생각이 변한 게 아니고 기술의 발달에 따라 더 높은 단계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봐야 한다. 기술 발달의 초기에는 기계나 제품이 잘 작동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했다. 설사 기계나 제품이 잘 작동한다고 해도 그 사용법을 익히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이제는 휴대폰이 별탈없이 돌아가고 다루기 쉬워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오히려 그보다는 제품을 사용하는 게 즐거워야 하고 특별한 경험을 선사해줘야 하는 시대가 됐다.

-우리 생활에서 디자인은 지속적으로 진화해왔다. 디자인은 우리 생활에 왜 중요하고 어떻게 진화해왔나.

"이제 디자인은 한 회사와 다른 회사를 차별화하는 핵심이다. 위대한 회사일수록 위대한 디자인을 창출해낸다. 삼성이나 LG도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고용하고 있고 애플이나 필립스는 말할 것도 없다. 지금 최고의 회사가 되려면 예전처럼 잘 작동하는 제품을 만드는 것으로는 불충분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최고의 회사는 최고의 디자이너를 고용해야 하는 이유다. 아직 한국기업들이 엔지니어 중심으로 돌아가는 점은 좀 아쉽다. 기능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은 기본이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감성 디자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사람들이 무엇이 중요한지, 중요한 일이 맞는지 결정하고 판단하도록 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공학자나 기술자, 과학자들은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이를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인지과학 연구를 해보면 사람들은 감정적이고, 또 감정에 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내가 말하는 세 종류의 디자인이 있다. 본능적으로 좋은 느낌을 갖게 되는 디자인과 좋은 기능과 사용의 편의성으로 인해 좋아하게 되는 디자인 그리고 제품을 써보면서 얻은 경험과 제품을 생산한 회사와 자신이 맺은 인연 등을 회고하고 생각하면서 좋아하게 되는 디자인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고려되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감성 디자인이다."

만족보다 행복하게 만드는 제품

-매력적인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가. 애플이나 아이디오(IDEO) 등이 디자인에 강한 이유와 함께 말해달라.

"모든 것을 다 갖고 있어야 한다. 최고의 디자인을 가진 제품은 일단 보기에 좋고 느낌이 좋다. 그 제품에 대해 생각했을 때 행복해지는 모든 요소를 다 가지고 있다. 애플의 경우 `사람들을 위한 제품`의 개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소비자 중심 경영`이 무엇인지도 세계 어느 회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단순히 아름답고 좋은 기능이 잘 작동하는 것을 넘어 사용자들이 애플 제품을 쓰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만든다. 아이디오는 디자인을 하는 회사라기보다는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회사다. 특히 기업이 자신이 생산해서 판매하는 제품의 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소비자는 물론 내부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까지 깨닫게 해주는 역할을 하게 된다."

-애플이나 아이디오 외에도 감성 디자인을 자신들의 서비스나 제품에 잘 구현하고 있는 회사가 있나.

"필립스, 삼성, LG 모두 스스로 `감성 디자인`을 하겠다고 했다. BMW만 해도 운전자가 가장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서 옆자리와 뒷자리에 타는 사람들 역시 차를 타보는 것이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디자인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뿐 아니라 지금은 많은 회사들의 `대세`다. 세무회사에서 감성 디자인을 적용하고 있다면 믿겠나. 소득세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였는데 `사람들이 세무 업무 자체를 너무 싫어한다`며 `감성 디자인을 적용해달라`고 한 적이 있다."

-`디자인 경영`을 내세우는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감성 디자인`에서 성공하기 위한 전략은 무엇일까.

"CEO가 혼자 떠드는 것으로는 `디자인 경영`이나 `감성 디자인`은 이뤄지지 않는다. LG에서 아무리 디자인을 강조한다고 해도 상사와 부하 디자이너들이 한자리에 모여 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 모두가 즐기는 분위기여야 하고 자유로워야 한다. 엔지니어나 경영진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디자이너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회사 시스템 개선도 필요한데, 삼성이나 LG는 각각의 제품이 다른 부서에서 고안되고 출시돼 서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애플이 여러 주변기기와 잘 조화를 이루는 것과 대조된다. 현대자동차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미국시장에서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했는데, 기아차와 현대차가 좀 더 차별화될 필요는 있겠다. 현대차는 부드러운 디자인으로, 기아차는 좀 더 스포티한 디자인으로 가는 것이 어떨까 싶다."

-현재 감성 디자인의 키워드, 감성 디자인 이후의 디자인 트렌드는 무엇인가.

"현재의 키워드는 `즐거움`(pleasure)이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만족스러운` 제품을 구입하지 않는다. 행복을 주는 제품을 산다. 필립스도 최근 기능이 훌륭해서 만족스러운 제품보다 재미있고 즐거운 제품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미래는 `경험 디자인`이 될 것이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이용하고 경험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에 더 집중하는 것이다. 은행에서 항상 자기가 선 줄이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느껴서 불쾌하지 않았나. 여기에 공정한 순서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경험을 주는 것이 경험 디자인의 출발이고, 디즈니랜드에서 재미있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것 자체가 즐거운 것이 또 경험 디자인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야 한다. 설문지를 돌리는 건 안 된다. 직접 관찰하면서 소비자를 잘 이해하는 기업이 생산성도 높아질 것이다."

`융복합과 통섭` 없이 감성 디자인 없다

-감성 디자인이든 미래의 경험 디자인이든 융합적이고 통섭적인 사고를 하는 인재들이 함께 모여 제품과 서비스를 디자인하고 이를 토대로 경영전략이 짜여져야 할 것 같다. 김준영 성균관대 총장과 노먼 박사는 각각 어떤 제안을 해줄 수 있나.

"(김준영 총장) `융합원`을 설치할 것이다. 융합원은 하나의 플랫폼이다. 인문과 자연을 연계하는 기초융합원, 사회과학과 공학의 창의융합원, 의학ㆍ약학ㆍ생명을 하이브리드하는 생명융합원을 설립하고자 한다. 학문 간 융합과 통섭이 이뤄지는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에서다. 학문 간 융복합 없이 창의적 인재 배출은 불가능하다."

"(노먼 박사) 동의한다. 항상 대학교가 문제였다. 산업현장에서는 그룹으로 일하고 항상 다른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는데 대학교는 각 분과 학문들이 좁고 깊게 자기영역에만 집중할 뿐 함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학교의 본질인 사회를 위한 기여에 대해 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한 가지 제안을 하자면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융합연구를 통해 얻은 성과를 충분히 보상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진짜 디자인 강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

"(노먼 박사) 한국은 `실패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비결은 실패가 용납되는, 아니 장려되는 바로 그런 분위기에 있다. 실패한 경험이 바탕이 돼야 성공할 수 있는데 한국은 실패를 용납하지도 않고 다들 무서워하기만 한다. 미국에서 사업하려다 실패하면 다들 좋은 경험을 얻었다며 기뻐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할 수 있을 것 아닌가. 디자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대학에서 현장으로, 현장에서 대학으로 인적 교류가 이뤄지면서 지식과 노하우가 쌓여가야 할텐데, 어떤 일을 해왔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를 추진할 것인지.

"(김 총장) 산학협력을 위해 10년 전부터 많은 일들을 추진해왔다. 삼성, LG 등과 함께 창의교육에 기반한 산학형 맞춤형학과, 트랙과정을 운영해왔고 많은 지원을 해왔는데 기업에서 전문가들이 와서 교육과정을 같이 개발하기도 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도 산학협동연구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고 교육-R&D-고용 연계 모델링 구축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노먼 박사) 맞는 방향이다. 학문적 의미에서의 과학과 산업현장의 기술이 융합하는데 대학이 기여할 필요가 있다. 다만 대학교가 기업체의 부속물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

[대담 진행 = 위정환 기업경영팀 부장 / 정리 = 고승연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기사입력 2011.07.22 14:17:58 | 최종수정 2011.07.22 22: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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