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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파워인터뷰] "디자인으로 기아차 브랜드 확립할 것"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00년 전에 단순함이 세련됨의 극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기아차 디자인팀의 임무를 완벽히 설명하는 말입니다. 수천개의 부품으로 구성된 자동차를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을 이룰 때 기아차의 브랜드가 세계 명차와 겨룰 수 있을 것입니다.”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은 지난 16일 제주 신라호텔에서 진행한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디자인은 브랜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주최한 ‘하계 기술경영인 포럼’에서 강연하기 위해 방한한 슈라이어 부사장은 아우디와 폴크스바겐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역임하고, 지난 2006년 기아차에 합류했다. 당시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그를 수차례 설득해 영입한 것은 유명한 일화.

 ▲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

슈라이어 부사장이 합류한 이후 기아차는 놀라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소울과 K5, K7 등을 출시한 기아차는 2007년 16조원 수준이던 매출이 2010년 23조원을 넘어섰고 생산량도 처음으로 200만대를 넘겼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적자에서 1조 7000억원가량의 흑자로 변모했다. 1만원이 채 안 되던 기아차의 주가는 어느덧 7만원을 훌쩍 넘은 상태다.

이런 성장에는 ‘호랑이 코’로 유명한 기아차의 패밀리룩(통일된 디자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이 주도해 만든 패밀리룩은 호랑이 코 모양의 그릴과 옆으로 이어진 헤드램프, 동그랗게 얹은 기아 심볼로 구성됐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디자인팀이 서열화된 문화를 갖고 있으면 안된다” 면서 “기아차 디자인조직은 자유롭게 변했고, 결국 올해 최고중의 최고라는 레드닷 디자인상 최우수상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또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소개했다. 특히 재즈 뮤지션인 마일즈 데이비스와 팀이 만들어내는 즉흥적이면서 정확한 연주가 디자인과 매우 비슷하다고 했다. 슈라이어 부사장은 “역사가 짧은 한국 자동차 업계가 1세대 만에 세계 4~5위를 다투는 것은 놀랍지만, 이런 성공에 디자인이나 브랜드의 역할은 별로 없었다”면서 “앞으로 기아차에서 역사가 긴 유럽 명차들과 같은 가치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피터 슈라이어 기아차 디자인 총괄 부사장이 김영수 조선비즈 대표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기아차에서 훌륭한 작업을 해냈다. 소감은.
“새로운 곳에서 브랜드를 다시 정립하는 일은 흥미로운 모험이었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결과물들은 길거리에서 볼 수 있다. 5~6년 전과 거리 풍경이 달라지지 않았는가?”

-정의선 부회장이 영입을 위해 수차례 설득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아차 디자인 조직을 재정립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들었다.
“디자인팀에 서열 시스템이 있으면 처음에 지시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정보가 전달되게 된다. 디자인팀은 그래서는 안 된다. 디자인은 직접 얘기해야 한다. (앞에 있던 유리컵 윗부분을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재며)‘높이를 이 정도 높이고 곡선은 이렇게 해라’ 라고 말한 것이 여러 단계를 거치며 정확히 전달되겠는가. 그래서 기아차에 합류한 이후 모든 이들이 직급에 상관없이 직접 대화를 나누도록 했다. 나도 한국인 디자이너들과 직접 의견을 나눴다.”

-자동차산업에서 디자인이 얼마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매우 중요한 요인(extreamly important factor)이다. 좋은 기술도 디자인이 없으면 제대로 구현되지 않는다. 그러나 디자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브랜드’다. 사람들이 자랑스럽게 ‘난 기아차를 탄다’라고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디자인이 아닌 브랜드다. 디자인은 이를 위한 하나의 요소다. 2006년 당시 기아차의 브랜드 파워는 다소 약했다. 하지만 새 디자인을 채용한 K5가 올해 레드닷 디자인상을 받는 등 브랜드 정체성이 확립되는 중이다. 경영진이 디자인의 파워를 신뢰해줬고, 그 결과 디자인은 기아의 핵심 요소가 됐다. 하지만 브랜드 구축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기아차 디자인에 대해 설명해 달라.
“(손으로 호랑이 코 모양의 그릴을 그리며)모든 자동차 디자인에는 이런 모양이 들어간다. 그리고 옆으로 헤드라이트를 놓으면 호랑이의 얼굴을 갖게 되는데, 이걸 조금씩 변형하면 여러 가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 위에 놓인 둥근 모양의 기아차 심볼도 중요하다. 이런 모양은 고급 차에서만 볼 수 있다. 이런 패밀리룩을 공통으로 적용해 사람들이 기아차를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다.”

“기아차 디자인은 단순함이라는 말로 귀결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500년 전에 단순함이 세련됨의 극치라고 했다. 이것이 기아 디자인팀의 임무를 완벽히 설명하는 말이다. 하지만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사실 가장 어려운 일이다. 고객에게 수천개의 부품이 들어간 복잡한 자동차를 쉽게 이해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바다.”

-캘리포니아와 프랑크푸르트에서 나온 디자인은 많이 다르다. 대표적인 예로 쏘나타를 봐도 그렇다. 미국 시장에서는 호응을 얻었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국가별로 맞는 디자인이 따로 있는 것 아닌가.
“시장은 어느 곳이든 사람들의 눈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K5(현지명 옵티마)는 미국에서도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아직 판매되고 있지 않지만, 수요가 크다. 스타일보다는 국가별로 인기를 끄는 차체형식이 다른 것 같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큰 차나 SUV가 주력이고, 한국은 C~D세그먼트(준중형~중형차) 세단의 수요가 많다. 유럽에서 세단은 BMW, 아우디, 벤츠 같은 고급 차로 인식된다.”

“아우디에서 TT라는 이름의 자동차를 디자인했을 때 마케팅팀에서는 부정적이었다. 당시 우리는 로드스터(지붕이 없는 2인승 자동차) 형식으로 디자인했는데, 마케팅팀에서는 연간 5000대밖에 못 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틀렸다. 우리의 디자인은 기존에 없던 수요를 창출했다. TT는 엄청나게 팔렸고 이후 아우디는 TT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현대인에게 자동차는 어떤 것인가. 또 디자인의 역할은.
“‘나는 이 차를 사랑한다’는 것은 감성의 표현이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다양한 종류의 경험을 한꺼번에 느끼는 것이다. 모든 감각이 활성화돼 느끼는 것들의 집합이라는 의미다. 앤디 워홀과 리히텐슈타인도 자동차에서 영감을 얻고 작품을 만들곤 했다. 랄프로렌은 유명한 클래식카 수집가인데 각각의 차가 다른 경험을 준다고 했다. 이처럼 자동차를 산다는 것은 점점 감성적인 열정의 산물이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기아차는 싼(bargain) 브랜드였지, 이런 열정에 의한 사랑을 받는(Love) 브랜드는 아니었다. 그래서 2006년부터 디자인 정체성을 만들기 시작했다. 디자인이 브랜드의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젠 디자인이 기아의 혼과 본질로 자리 잡고 있다. 기아의 연구소는 이제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동안 디자인한 차 중 가장 좋아하는 차는.
“어려운 질문이다. 굳이 말하자면 K5가 아닐까. 곧 출시되는 신형 리오(프라이드 후속모델)도 마음에 든다.”

-K3, K9는 어떤가.
“(비밀이라)얘기할 수 없다. K3와 K9에도 ‘호랑이 코’로 대표되는 기아차의 패밀리룩은 유지된다. 하지만 아직 많은 개발과정이 남아있다. 더욱 정제되고 굵직(BOLD)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빈치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데, 어떤 얘기인가.
“다빈치뿐만 아니라 음악, 건축물 등 수많은 것들로부터 영감을 얻는다. 특히 재즈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마일즈 데이비스의 음악에서 많은 영감을 얻는다. 재즈와 디자인은 비슷한 점이 많다. 재즈는 악보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하는데 우리 디자이너들도 순발력을 발휘해 일할 때가 잦다. 재즈는 또 즉흥적으로 연주하지만 대단한 정확성이 있다. 디자인도 팀원들이 긴밀하게 협력해야 한다. 또 발상의 전환도 중요한데 마일즈 데이비스는 록과 소울과 재즈를 융합한 첫 번째 음악인이다.”

-폴크스바겐ㆍ아우디에서 일할 때와의 차이점은.
“가장 큰 차이는 회사의 태생 배경과 역사다. 폴크스바겐과 아우디는 오래된 회사이고 현대ㆍ기아차는 추격자다. 유럽차 업체들은 CEO들이 차량 개발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직접 차를 타보고 다양한 주문을 한다. 물론 판촉과 생산방안도 검토하지만, 운전 자체를 매우 중시한다. 또 BMW는 갑작스럽게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거나 하지 않는다. 역사는 쉽게 바꿀 수 없는 가치라는 의미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아직 1세대가 지났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은 30여년 만에 제로(0)에서 세계 4~5위 자동차생산국으로 성장했다. 대단한 성과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디자인이 이런 성장에 큰 기여를 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나는 디자인을 통해 한국에서도 이러한(유럽 차 업체들 같은) 가치를 만들고 싶다. 한국인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가치를. 할 일이 많다.”

-한국에 얼마나 자주 오는가. 장점이 있다면.
“한국에 매우 자주 온다. 여권 도장을 보니 78개가 찍혀있다. 가족들은 모두 독일에 있지만 한국도 내겐 마치 집 같다. 한국에서 신뢰받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정의선 부회장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었고, 정씨일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다. 장점이라면 한국인들의 사람 사귀는 문화를 꼽고 싶다. 폴크스바겐의 경우 대형 프레젠테이션이 끝나면 아무리 성공적이더라도 별 반응 없이 바로 자기 업무로 돌아간다. 한국에서는 성공적으로 끝나면 저녁식사를 하고 축하를 하고 소주를 마시고 한다. 이런 문화가 좋다. 한국말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디자이너들이 독일어를 하는 게 빠르지 않겠나.
“그런가?(웃음) 한국말은 참 어렵다. 언어 구조 자체가 다르니까. 해보려고 했는데 쉽지 않더라.”

-골프는.
“2~3년 전 시작했는데 연습을 자주 못한다. 핸디캡은 37. 최고점수를 굳이 말하기 어려울 정도다. 한국인들이 골프를 참 잘하는 것 같다. 특히 여성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가족과 함께 한 시간이 역시 가장 행복하다. 집은 뮌헨에 있다.”

인터뷰=김영수 조선비즈 대표 yskim2@chosun.com
정   리=이재원 기자 true@chosun.com

기사입력 : 2011.07.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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