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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건축디자이너 황준규

‘공간’의 배려

‘건축디자이너 황준규’란 이름은 우리에겐 아직 생소하다. 건축가 가우디나 아이엠 페이, 혹은 안도 다다오처럼 대형 건축물을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백화점, 호텔, 병원 등 상업공간을 보다 더 아름답고 쾌적하게 디자인하는 일이 주업무라 그의 이름이 대중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준규씨(47)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목록을 보면 “아! 정말 이걸 한국 사람이 했다고?”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미국 삭스핍스 애비뉴백화점·블루밍데일 백화점(뉴욕), 일본의 세이부·다카시마야 백화점(도쿄), 호주의 마이어, 영국의 하우스오프 프레이저 등이 그의 손길이 닿은 프로젝트들이다. 국내에선 부산 센텀시티, 63빌딩 63스퀘어,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하얏트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삼성제일병원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요즘에도 한국은 물론 미국 역시 불경기로 건축경기가 꽁꽁 얼어붙었지만 그에게는 수많은 제안이 쏟아져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바쁜 시간을 보낸다. 황씨의 정식 직함은 미국 건축디자인회사인 JMCBX를 2009년 한국법인으로 오픈해 한국대표로 활약하고있고 최근 신세계 충청점을 오픈했다. 특히 노아의 방주에 착안, 한국의 거북선을 디자인 콘셉트로 진행했던 미국 뉴욕 장로교회 리모델링 프로젝트는 미국건축사회(AIA)와 타임지에 의해 미래 건축방향을 제시한 건축작품으로 선정됐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던 그는 청소년 시절을 건축의 도시로 불리는 미국 시카고에서 보내면서 역사적인 건축물과 루이스 설리번,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등 세계적 건축가들의 작품을 통해 건축에 눈을 떴다. 대학 진로를 고민할 때 한 지인에게서 “네가 제일 잘하는 것, 즐기며 할 수 있고 기쁜 일,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듣고 건축디자인을 선택했다.

미국의 유통전문 건축회사인 워커그룹에서 아시아 담당 지사장으로 15년간 일하기도 했다. 미국의 삭스핍스 애비뉴 등 백화점들과 스페인의 엘톰스센터 몰, 일본의 오다이바 쇼핑몰, 세이부백화점 인테리어를 맡아 실력을 인정받았다. 건축가 승효상씨는 ‘사는 사람이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좋은 집’이란 말을 했지만 황씨가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편안함과 편의성’이다.

“아무리 훌륭한 인테리어와 건축미, 최고의 자재가 갖춰져도 그 공간을 오가는 이들이 불편함을 느낀다면 그 공간은 ‘죽어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불필요한 디자인은 배제하는 실용주의’가 제 디자인 철학입니다. 쇼핑몰·백화점과 요즘의 복합쇼핑 상업환경공간은 그곳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그 시대의 문화를 선사하고 가족, 연인, 남녀노소가 모두 함께하는 곳이죠. 이런 기능에 적절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최고급 명품들이 전시된 백화점이나 명의가 많이 근무하는 병원이라도 공간 배치가 불편하고 쾌적한 분위기가 아니면 제 역할을 못합니다. 아름답지만 편안한 곳, 근사한 느낌을 주면서도 편리한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상업공간의 프로젝트를 주로 맡아 클라이언트의 필요와 목표, 상권 분석, 인구분포, 현장상황 등을 고려한 디자인 기획 방향을 철저하게 세우지만 그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아침 출근길에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표정에서, 자동차 창밖이나 지하철 속의 풍경에서 영감이 떠오른다. 점심시간 샌드위치를 먹으며 산책할 때나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서, 작업하면서 늘 틀어놓는 MP3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의 리듬과 가사에서 떠올린 아이디어가 병원, 호텔, 쇼핑몰, 교회 등의 프로젝트에 녹아든다.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그는 한국의 건축디자이너와 건축주들에게 그동안 눈에서 벗어나 있었던 ‘지하공간’에 주목할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지하공간을 ‘지하실’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무시하는 데 비해 세계적인 추세는 지하공간을 마치 지상공간인 것처럼 디자인해 유동인구를 끌어들이는 추세다. 미국 뉴욕의 록펠러센터가 지하공간을 겨울엔 아이스링크로, 여름엔 노천 카페로 활용하면서 세계적인 관광명소로 각광받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폐쇄적인 이미지’인 지하공간을 ‘개방적인 이미지’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출입문을 크게 만들고, 동선에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전시하면서 각종 조명을 활용하면 지하에 있어도 마치 지상에 있다는 ‘착시효과’를 줄 수 있어요. 이러한 ‘착시효과’가 곧 돈으로 연결됩니다. 대개의 쇼핑몰에서 지하층으로 갈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경향이 강한데 ‘죽어 있던’ 지하공간을 리뉴얼하면 매출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작품을 의뢰한 고객의 만족만큼이나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에서 “여기 참 멋지다”라며 행복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 더 커다란 기쁨을 느낀다는 황씨는 “외국에서 활동하고 서양 건축물을 맡아도 작품에 한국인의 혼이 담기게 된다”며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유인경 기자

입력 : 2010-12-28 21:14:11ㅣ수정 : 2010-12-29 17: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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