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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이 의자, 알면 세 번 놀란다

1. 한 달에 딱 하나 제작, 값은 3천만원+α
2. 그래도 없어서 못 팔 지경
3. 디자인한 배세화는 이제 서른하나

나이 서른하나의 가구 디자이너 배세화씨는 일산 성재공단의 허름한 공장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하루 15시간을 나무와 씨름한다. 영하 10도 아래로 수은주가 뚝뚝 떨어지는 날씨에서도 실내 기온은 늘 10도. 나무에 적정한 온도를 맞추려고 자신을 위한 난방은 양보했다.

이렇게 배씨가 일산의 공장 작업실에서 만든 가구들이 요즘 국내외 컬렉터들 사이에 가장 주목받는 작품으로 떠올랐다. 가장 작은 게 보통 3000만원일 정도로 그의 작품 가격은 고가(高價)다. 그런데도 이 가구들을 사러 미국과 유럽의 컬렉터, 예술에 관심 많은 '청담동 사모님'들이 모여들고 있다. 한 달에 하나씩 만들어 내는 가구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고 한다.
 

▲ 자신의 벤치 작품에 걸터앉은 배세화씨.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그는 지난해 8월 서른의 나이에 우리나라의 대표적 디자인갤러리인 '갤러리서미'의 전속 작가가 됐다. 지금까지 한국 디자인계에서 그처럼 젊은 나이에 갤러리에 전속된 경우는 거의 없다. 지난해 12월에는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세계적인 디자인 전시회 '디자인 마이애미'가 전시 대표작품으로 배씨의 의자를 선택해 포스터에 실었다. 9월에는 유수 경매회사 '크리스티'가 운영하는 런던의 갤러리 '헌치 오브 벤션(Haunch of Vension)'에서 개인전을 연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디자인계까지 그의 상품성과 예술성, 장래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루 종일 나무와 함께 한다는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고 즐겁다." 최근 서울 청담동 갤러리서미에서 만난 배씨는 나무와 열애(熱愛)에 빠진 사람이었다. 목(木) 작업 때문에 손톱 사이사이 새카맣게 낀 때를 못 봤다면 홍대 앞 인디밴드로 착각할 수도 있을 만큼 해맑았다.
 

▲ 등판이 한국 산의 능선을 연상시키는 곡선으로 된 의자. /갤러리서미 제공

배씨의 작품을 본 사람은 작품의 완성도에 놀라고, 작가의 젊은 나이에 또 한 번 놀란다. 홍익대 목조형 가구디자인과 99학번으로 4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가구 디자이너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독특함이 아닌 담백함을 추구하는 그의 디자인 스타일 때문에 짧은 경력에 비해 디자인에 깊이가 느껴진다는 평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아늑하고 포근한 한국 산의 능선이 오버랩된다. 의자의 좌판과 등판 부분이 완만한 곡선을 이룬다. 벤치도 시작과 끝은 평범한 직사각 형태인데 중간이 완만하게 솟거나 부드럽게 패었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열린 '디자인 마이애미/바젤'에 출품했을 때 전시 첫날 바로 사 간 스위스 현지 컬렉터는 "정말 다른 느낌의 선"이라고 감탄했다고 한다. 작가는 "한국의 자연을 보고 자란 느낌이 그렇게 표현된 듯하다"고 했다.

배씨는 단면이 가로·세로 1㎝인 긴 나무 막대기를 휘어서 이어붙이는 스팀 벤딩(steam bending) 기법으로 가구를 만든다. 이음과 짜임이 가구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다. 그래서 언뜻언뜻 그의 작품에서 대나무를 엮은 바구니와 죽부인의 느낌이 스친다. 지나온 길보다 갈 길이 더 먼 그는"(작업이)재미없어질까 봐, 그게 제일 두렵다"고 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2.11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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