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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12] '인도의 실리콘밸리'서 성공한 건축디자이너 김창현씨

[사람과 이야기] [글로벌 영 파워] "글로벌 감각 젊은 디자인으로 떴죠"

[12] '인도의 실리콘밸리'서 성공한 건축디자이너 김창현씨
인도 건축물 공부하면서 처음 5년은 온갖 일 다해…
11년 만에 직원 30명 사장, 연 매출 500%씩 늘어나

인도 수도 뉴델리에서 남쪽으로 2500㎞ 떨어진 인도 제2의 도시 방갈로르 시내엔 요즘 지상 7층, 지하 1층 건물이 지어지고 있다. 통유리로 장식되는 이 건물은 1~2층의 낮은 건물이 대부분인 시내에서 홀로 우뚝 서게 된다.

병원과 헬스장, 레스토랑 등이 들어갈 이 최신식 건물은 한국인 건축 디자이너 김창현(39)씨 작품이다. 김씨는 "방갈로르는 인도 IT의 중심지"라며 "세계적 기업들이 들어서면서 최신식 건물에 대한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 27일 오후 인도 방갈로르 AA스튜디오에서 건축디자이너 김창현 사장이 환하게 웃고 있다. /김창현씨 제공

인도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방갈로르엔 마이크로소프트(MS), 델(Dell), 삼성 등 글로벌 기업들이 들어가 있다. 김씨는 이곳에서 'AA스튜디오'라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한다.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현지 젊은이들 사이에서 '잇 플레이스(뜨는 공간)'로 소문난 '클럽 파이어플라이(club firefly)'와 미술관 '갤러리 하우스'도 김씨 작품이다.

"한국에서 대학원 졸업 후 잠깐 공부하기 위해 왔는데 인도의 매력에 푹 빠져 사업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는 2001년 건국대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더 넓은 세상을 보겠다'며 무작정 인도로 갔다. 졸업 후 작은 술집을 디자인해 번 돈 700만원이 유학 자금 전부였다.

김씨는 처음 몇 달은 인도 전역을 돌아다니며 타지마할, 네루 기념관 같은 인도 건축물을 답사했다. 아는 교수 소개로 현지 건축전문학교를 한 학기 다니기도 했다. 2002년부터는 남인도의 오로빌(Auroville)에 있는 건축사무소에서 무급(無給) 설계사로 일했다.

2001년 결혼한 아내까지 인도에 데려가서 살면서 생활은 더 빠듯했다. "인도에 가서 5년간은 인도 패키지여행 가이드, 통역 아르바이트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습니다." 생활비를 대고 답사하며 책을 사 보려면 1년에 한두 달은 아르바이트를 몰아서 해야 했다.

김씨는 "영어가 안 되고 음식이 안 맞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며 "우리나라처럼 '빨리, 정확히' 일을 처리하는 문화가 인도에는 없어서 업무를 하면서 속이 터진 적도 여러 번"이라고 했다. 실수를 하면 우리나라에선 '제 잘못입니다. 시정하겠습니다'는 말이 나오지만, 인도에선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라는 것이냐'는 반응이 나온다고 했다.

그는 인도의 다양한 언어·인종·종교에도 적응이 어려웠다고 했다. 인도엔 정식 언어만 18개이고 방언까지 합하면 400개가 넘는다. 인종 역시 북인도의 아리안족, 남인도의 드라비다족, 중국 접경지대의 몽골리안 등이 각자 다른 문화를 갖고 산다. 힌두교·이슬람교·시크교 등 종교도 다양하다. 김씨는 "남인도인들은 생김새가 다른 북인도인들과 일하려 하지 않았다"며 "한국 사람인 제가 중간에서 이들을 중재하는 역할도 했다"고 말했다.

2003년 그에게 시련이 닥쳤다. 대학 동기인 아내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31세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낮에도 빛이 없던 시기였다"고 했다. 한국에 돌아와 6개월여 아무 일도 안 하고 지내던 김씨는 문득 '디자인학도였던 아내를 위해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김씨는 '아내가 하고 싶었던 건축에 내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생각으로 인도로 돌아갔다.

2005년엔 후배와 방갈로르에 사무실을 열었지만, 한국인이 하는 디자인 사무실에 디자인을 의뢰하려는 인도인은 많지 않았다. 김씨는 "일이 없어서 한참 고생하다 한 번 일을 맡겨본 글로벌 기업의 외국인 임직원들 사이에서 소문이 나면서 5년 전부터는 일거리가 쏟아져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고 했다.

인도에 간 지 11년 만에 김씨는 정직원 30명을 둔 사장이 됐다. 최근엔 첸나이와 델리에 진출한 현대자동차 본사의 헤드오피스와 직원 복지센터, 강당, 자동차연구소도 디자인을 의뢰받아 완공했다. 인도 부동산·건설시장의 활황을 타고 연 매출이 매년 500%씩 성장하고 있다.

그는 "인도는 빠르게 성장하면서도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곳"이라며 "인도 건축의 아름다움을 토대로 한 친환경 디자인을 하는 건축가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뉴델리(인도)=김시현 기자 shyun@chosun.com

기사입력 : 2011.01.28 03:04 / 수정 : 2011.01.28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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