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면역거부 반응 없어 인공 각막, 뼈·근육 이식에 사용
거미 실크 유전자 완전 해독, 감자·누에·대장균 등에 넣어 더 강한 실크도 대량생산
지난 23일 영국 런던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끈 패션쇼가 열렸다. 이날 모델이 선보인 패션 '케이프(망토)'는 무당거미가 분비하는 거미 실크(silk)로 만든 것이었다. 거미 실크로 이뤄진 거미줄은 강철보다 강하면서도 인체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는 자연계 최고의 섬유로 알려져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성질을 이용해 거미줄로 환자의 눈을 뜨게 하고 휠체어에서 일어서도록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그룹 체리필터의 인기곡 '낭만고양이'에 나오는 '거미로 그물 쳐서 물고기 잡으러'라는 가사처럼 '거미로 질병을 잡으러' 가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 지난 23일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에서 모델이 무당거미의 거미줄로 만든 옷을 선보이고 있다. 이 옷 한 벌을 만드는 데 8년 동안 120만 마리의 거미가 사용됐다. /PPA 연합뉴스
◇강철보다 강하고 인체에 무해(無害)
과학자들이 제일 먼저 주목한 것은 거미줄의 강도다. 거미 실크(silk)는 같은 무게의 강철과 비교하면 20배나 질기다. 듀폰사가 만든 방탄복 소재인 케블라 섬유보다 4배나 강하다. 그러면서도 잘 휘어지고 50%까지 길이를 늘일 수 있다. 영국에서는 이 거미 실크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한 군인들의 아랫도리를 폭탄으로부터 보호하는 속옷을 만들었을 정도다.
과학자들은 최근 강도 같은 물리적 특성 대신 거미줄의 생물학적 장점으로 눈길을 돌렸다. 거미 실크 단백질은 인체에서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분해되는 것도 장점이다. 자연 상태보다 많이 약해졌다 해도 다른 생체 물질에 비하면 강하다는 장점도 여전하다.
미 터프스대의 데이비드 카플란(Kaplan) 교수는 2009년 거미 실크로 만든 투명 필름으로 인공 각막을 개발했다. 이듬해에는 뇌 표면에 부착하는 거미 실크 센서도 발표했다. 거미 실크로 손상된 뼈나 근육과 같은 모양의 틀을 만들고, 여기에 줄기세포를 집어넣어 이식용 조직을 만드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거미 실크의 특성은 전류를 흘리면 끈적끈적한 상태가 됐다가 전류가 끊어지면 마르는 현상이다. 카플란 교수팀은 이를 이용해 응급환자용 드레싱 재료를 연구 중이다. 사고 현장에서 거미 실크 단백질을 뿌리고 전류를 흘려 깁스하듯 상처를 단단히 싸맸다가, 병원에 도착하면 전류를 끊어 상처 부위를 여는 식이다.
◇거미줄 설계도인 유전자 해독돼
문제는 원료인 거미 실크를 대량으로 구하는 일이다. 거미줄을 일일이 걷어 실을 만드는 것은 경제성이 없다. 영국에서 선보인 거미 실크 옷을 만드는 데 120만 마리의 황금무당거미와 제작 기간 8년이 소요됐을 정도다.
인류가 5000년 동안 비단을 만드는 데 사용한 누에와 달리, 거미는 육식성에 주로 혼자 살아 집단 사육도 어렵다. 자연 상태의 거미줄을 풀어서 섬유로 만들면 군데군데 단백질 결합이 깨져 강도도 5분의 1로 줄어든다.
미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의 세릴 하야시(Hayashi) 교수는 이 문제를 유전자로 해결했다. 하야시 교수는 지난 2007년 검은과부거미에서 거미 실크를 만드는 핵심 유전자인 MaSp1, MasP2를 찾아 완전히 해독했다. 이 유전자를 공장 격인 다른 생물의 유전자에 넣어 설계도 대로 거미줄을 만들면 된다.
하야시 교수는 담배나 감자 같은 식물에 거미줄 유전자를 넣어 밭에서 거미 실크를 뽑아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미 노트르담대의 말콤 프레이저(Fraser) 교수는 최근 거미 실크 유전자를 누에에 넣어 기존 누에 실크보다 훨씬 강한 실크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대장균 공장으로 거미 실크 생산
국내에서는 지난 2010년 이상엽 KAIST 특훈교수(생명화학공학)가 박영환 서울대 교수(바이오시스템·소재학부)와 함께 거미 실크 유전자를 대장균에 넣었다. 연구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만들지 못했던 초고분자량의 거미 실크 단백질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전에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지만, 단백질을 구성하는 특정 아미노산이 반복되는 거미 실크 단백질의 특수성 때문에 고분자량의 거미 실크를 만들지 못했다. 연구진은 일반 대장균의 유전자를 거미 실크 단백질 생산에 최적인 상태로 바꾸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를테면 거미 실크 전용 공장을 새로 만든 것이다.
차형준 포스텍 교수(화학공학) 교수는 아예 새로운 설계도를 찾았다. 연구진은 미국과 유럽 연안에 사는 '스타렛 말미잘'이 수축·팽창할 때 몸길이가 최대 5~10배까지 차이 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거미나 누에처럼 실크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차 교수는 이렇게 찾은 유전자를 대장균 유전자에 끼워넣어 거미 실크와 유사한 섬유를 만들었다.
차 교수는 "누에에서 나오는 실크는 강도가 약하고, 거미 실크는 강도는 뛰어나지만 서로 잡아먹어 양식이 불가능했다"며 "말미잘 실크 섬유는 대장균을 이용해 만들어 대량생산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영완 기자 ywlee@chosun.com
기사입력 : 2012.01.3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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