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투데이 - '명품창출포럼' 초대 수장 박성철 신원 회장
국내 브랜드 디자인·품질 유럽 명품의 80~90% 수준
'스토리'만 입히면 가능
남성복 '반 하트'가 선봉장…해외 브랜드도 인수 추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은 2008년 이후 국내 판매가격을 다섯 번이나 올렸다. 4년 전 334만원이던 ‘빈티지 라지’ 핸드백은 두 배가 넘는 740만원을 줘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여전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나간다.
해외 명품업체에 한국은 그야말로 ‘장사하기 좋은’ 시장이다. 본국보다 훨씬 비싸게 팔아도, 한국사회에 기부 한 푼 안해도 매장은 언제나 북적인다. 이들을 견제할 만한 국산 브랜드는 어디에도 없다.
보다 못한 국내기업들이 “우리도 명품 한번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지난 1일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 주최로 신원 코오롱 블랙야크 한국도자기 등 100개 토종 기업이 모여 ‘명품창출 포럼’을 발족한 것이다. 초대 회장에는 베스띠벨리·이사베이·지이크 등의 브랜드를 둔 39년 역사의 중견 패션기업 신원의 박성철 회장(72·사진)이 추대됐다.
◆“국산 명품 만들어보자”
지난 주말 서울 도화동 본사에서 만난 박 회장은 앞으로 10년 안에 샤넬 루이비통에 못지 않은 한국산(産) 명품 브랜드가 나올 것으로 자신했다. 전자 조선 자동차에서 시작된 대한민국의 ‘뻗어나가는 기운’이 이제 패션으로 옮겨붙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세요. ‘삼성 TV’나 ‘현대중공업 선박’은 이제 글로벌 명품이 됐잖습니까. 스포츠에서도 김연아나 박지성 같은 명품이 나왔고, 한류 열풍 덕분에 문화·연예계에서도 명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음 차례는 패션이 될 겁니다.”
박 회장은 그 근거로 한국 브랜드들이 품질과 디자인 측면에서 해외 명품의 턱밑까지 따라잡았다는 점을 들었다. 각 브랜드에 그럴 듯한 ‘스토리’를 입힌 뒤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잘 관리하면 명품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샤넬이나 루이비통을 보면 ‘좋은 원·부자재에 멋진 디자인을 입힌 뒤 완벽하게 생산한다’는 세 가지 기본원칙을 철저히 지킵니다. 얄밉더라도 인정할 건 해야죠. 다행스럽게도 이런 것만 따지면 국내 업체들도 80~90% 수준까지 따라잡았어요. 문제는 소비자들이 ‘메이드 인 코리아’를 인정해주느냐인데, 조금씩 길은 보입니다. 브랜드 이름만 따지던 사람들이 점차 품질과 스타일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한류 스타 덕분에 브랜드에 입힐 ‘이야깃거리’도 늘고 있고요.”
그는 “명품창출 포럼을 통해 국산 명품 콘테스트를 열기로 한 것도 ‘한국 정부가 공인한 명품’이란 스토리를 해당 브랜드에 주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 및 소비자 평가를 거쳐 연말께 패션 섬유 전자 생활용품 등 분야별 1위 제품에 명품이란 칭호와 함께 정부 포상을 줄 계획이다.
◆‘반 하트 옴므’ 로 명품시장 도전
박 회장은 신원에서 나올 글로벌 명품 브랜드로 작년 가을 선보인 ‘반 하트 옴므’를 꼽았다. 정장 한벌 가격이 200만원에 달하는 고급 남성복 브랜드다.
“브리오니 아시죠. 양복 한 벌에 2000만원에 달하는 ‘명품중의 명품’ 브랜드요. 2009년부터 신원이 수입·판매하면서 공장도 여러번 방문하고 제품도 다 뜯어봤어요. 이게 다 반 하트 옴므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원자재는 이탈리아산을 쓰고, 제작은 이탈리아와 개성공단에서 나눠 맡습니다. 북한사람들 손재주가 여간 좋은 게 아니어서 입어본 사람들이 ‘100% 메이드 인 이탈리아’보다 오히려 더 좋다고들 합니다.”
박 회장은 개성공단이 2시간 거리에 있는 것도 향후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나오는 데 일조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개성공단의 인건비는 중국의 3분의 1에 불과한데 품질수준은 오히려 20% 이상 높다”며 “명품은 장인이 ‘한땀 한땀’ 꿰매는 수작업이 많은 만큼 개성공단을 활용하면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후에도 두 차례 개성공단을 방문했지만, 별다른 동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신원은 오는 7월께 중국 최대 백화점인 항저우다샤(杭州大厦) 백화점에 반 하트 옴므 1호점을 낸다. 이를 시작으로 세계 최대 명품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시장 공략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반 하트 옴므와 비슷한 가격대의 여성 명품 및 잡화 브랜드도 준비하고 있다.
◆“해외 명품 브랜드도 인수할 것”
해외 명품 브랜드 인수에도 나선다. 재정위기로 신음하는 유럽기업들이 명품 브랜드를 싼 값에 내놓고 있는 만큼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현재 유럽 브랜드 한 두곳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패스트패션 시장에도 도전한다. 박 회장은 “값비싼 것만 명품이 아니라 스웨덴 H&M처럼 저렴하지만 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패스트패션 브랜드들도 일종의 명품 아니냐”며 “지난해 론칭한 ‘이사베이’를 앞세워 패스트패션 시장도 공략해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박 회장에게 ‘지금 잘하고 있는 중·저가 시장에 집중하지 않고, 명품시장에 도전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명품은 해당 회사는 물론 국가 브랜드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합니다. 김연아 선수를 보세요. 덕분에 대한민국이 얼마나 큰 홍보효과를 거뒀습니까. 패션에서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게 바로 명품이에요. 한국이 아닌 세계를 보고 명품시장에 뛰어드는 겁니다. 한국산 명품 브랜드가 세계로 나가는 순간 한국의 국격도 한 단계 높아질 겁니다.”
오상헌/민지혜 기자 ohyeah@hankyung.com
박성철 회장은
기자 출신…신원, 패션전문기업으로 키워
재계에 보기 드문 신문기자 출신 기업인이다. 1940년 전남 신안 출생으로, 목포고와 한양대 행정학과를 나와 산업경제신문(현 헤럴드경제) 기자 시절 섬유 분야를 취재했던 경험을 살려 1973년 신원을 설립했다. 1990년대 중반엔 국내 1위 패션업체이자 재계 31위(연간 매출 약 2조원) 그룹으로 키웠다.
신원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패션전문 기업(지난해 매출은 약 5200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1998년부터 6년 동안 한국섬유산업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기사입력: 2012-02-05 17:32 / 수정: 2012-02-06 02:54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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