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집, 우울한 표정, 남루한 차림, 누드화….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나라는 어디일까. 북한에는 아직도 눈에 보이지 않는 `소재의 터부`가 엄격히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그림 중개업을 하는 중국인 왕모씨는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와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은 그림을 그릴 때도 나라의 품격을 깎아내리는 소재를 엄격히 제한한다"며 "이번에 확인된 북한 화가들의 그림에는 이런 금기가 명확했다"고 말했다. 비록 풍경화를 그리더라도 초가집과 같은 허름한 건축물이 있는 풍경은 절대 못그린다. `강성대국`의 선전전략과 배치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표정은 항상 밝아야 하고, 남루한 옷차림도 그릴 수 없다. 심지어 밭일을 하는 농부를 그릴 때도 옷에 흙이 묻은 모습을 그리면 안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나 정감을 담아내는 그림보다는 체제 선전을 염두에 둔 조작을 한다는 얘기다.
평양에 소재하고 있는 만수대 창작사는 9층 건물에 북한에서 내로라 하는 화가·조각가 3000여 명이 모여 조선화·서양화·도자기·수예 등의 작업을 하는 대형 작업실이다. 그러나 표현할 수 있는 소재가 한정돼 작품들은 개성적이라기보다는 전체주의적 화풍이다. 노동의식을 고취시키고 사회주의 체제를 홍보하는 그림 위주다. 고려대 이숙자(미술학) 교수는 "북한은 수묵화를 배격하고 민중들이 그린 채색화(조선화)를 권장해 인물화에 치우쳐 있고 고도의 기교가 발달됐다"고 설명한다. 이 곳 화가들은 개인적 작품 활동이 금지돼 있으며 판권도 전량 국가소유로 묶여 있다. 이 때문에 화가들을 중국 단동·선양·연길 등 중국의 변경에서 틈틈히 그림을 밀반출해 생계를 유지한다.
이런 북한의 화풍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는 데도 걸림돌로 작용한다. 올 1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북한 현대미술 전시회를 관람한 호주 시드니대학의 레오니드 페트로프 교수는 "행복하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원숭이에게 먹이를 주는 평양 동물원의 통통한 어린이 그림을 보고 누가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겠는가"며 "묘사법도 구소련 스탈린이나 중국 마오쩌뚱 시대의 인물들를 답습하는 데 그쳐 북한 미술품의 예술적 가치가 해외 시장에서 급락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 화가들은 다른 수입원을 찾아 나서고 있다. 쿠웨이트나 짐바브웨 등 북한 근로자가 진출한 국가에서는 근로자들이 부업으로 그림을 그려 외화벌이를 하기도 한다. 최근 4000명의 북한 건설노동자가 파견된 쿠웨이트에서 대형 벽화 등을 그리는 근로자들이 늘고 있다. 쿠웨이트 심현섭 한인회장은 RFA에 "북한에서 우상화 작업 등으로 그림과 동상, 조형물 등을 만들어본 경험이 풍부한 화가들이 와서 대형 화보를 그려주는 풍경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고 말했다.
이원진 기자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1.11.01 00:01 / 수정 2011.11.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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