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흥분된 얼굴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두운 조명 아래 재빨리 자리에 앉는다. 암전이 되고 가슴 설레게 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그 사이로 디자이너가 준비한 의상들이 모델의 움직임 속에 작은 주름과 흔들림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혹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메모를 시작한다.
3월 28일부터 4월 2일까지 서울 강남구 서울무역전시장(SETEC)에서 열린 2011~2012 가을·겨울 시즌 ‘서울 패션 위크’ 패션쇼 현장의 모습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들은 단 10분 내외의 이 컬렉션을 위해 6개월간 준비한다. 1년에 2회 봄·여름 시즌과 가을·겨울 시즌의 컬렉션을 통해 그들은 오랫동안 생각했던 디자인을 유감없이 풀어놓는다. 이렇게 발표된 의상은 2011년 가을과 겨울에 우리가 매장에서 직접 입어보고 구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다.
패션쇼를 통한 비즈니스 방식은 서양에서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가장 유명한 컬렉션을 하는 도시는 파리와 밀라노, 그리고 뉴욕이다. 파리는 정신적 우월감을 표현하는 아방가르드한 룩과 파리 특유의 시크함으로, 밀라노는 각종 명품 브랜드의 각축장으로, 뉴욕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사랑스러운 컬렉션으로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 뒤를 도쿄와 바르셀로나, 그리고 서울이 따라가는 상황이다.
컬렉션 현장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표현해낼 수 없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디자이너가 발표한 의상 외에도 쇼가 열리는 공간의 느낌, 그곳에 모여든 취재단과 바이어, 관계자들의 열정, 그리고 최고의 몸을 가진 모델들의 움직임, 이 모든 것을 한층 더 끌어올리는 음악과 조명, 마지막으로 이를 집중해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와 숨소리가 모두 화학적으로 결합해 어떠한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특히 서울 패션 위크는 패션 관계자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문이 활짝 열려 있다. 컬렉션 티켓은 인터넷을 통해 구입할 수 있고, 참여 디자이너의 매장에서 구할 수도 있다. 즉, 의상을 공부하는 학생, 의상을 전공하지 않으나 관심이 많은 일반인이 패션쇼장이라는 특수한 현장에서 함께 호흡하고 그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것.
몇몇 패션 행정가는 학생 혹은 일반인이 컬렉션에 모여드는 것을 외국의 경우에 비춰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대중의 에너지는 패션을 만드는 또 다른 창조의 힘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치른 이들은 선수와 축구 행정가뿐 아니라, 붉은색 옷을 입고 광장에 모여 ‘대한민국’을 외친 대중이었다. 대중이 창조한 광장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그래서 세계인이 따라 하는 독특한 하나의 문화가 됐다. 결국 창조에는 일인자, 또는 일련의 전문가 그룹과는 다르면서도 진심이 담긴 대중이라는 코드가 필요하다.
서울, 나아가 대한민국의 패션이 앞서가려면 ‘서울 패션 위크’가 가진 개방성을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여러분도 패션과 디자이너에게 관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다. 그런 관심은 디자이너에게 용기를 주고,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서울 패션 위크 등 패션쇼장에 꼭 한번 놀러오라는 것이다. 서울 패션 위크 다음 시즌은 9월 또는 10월 중순에 열린다. 패션쇼는 특별한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다. 전혀 어렵지도 않다. 영화 한 편, 뮤지컬 한 편 보듯 패션쇼를 즐겨보자.
*한상혁 · 제일모직 남성복 부문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10년 ‘코리아 라이프스타일 어워드’에서 ‘올해의 브랜드’와 ‘디자이너’상을 동시에 수상했다.‘소년의 꿈’을 가진 ‘단정한 청년’이 그가 추구하는 이미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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