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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자동차 디자인의 세계③

[구상 교수의 자동차 디자인] 해치백 3인방의 3色  
 

미니 ― 감각적인 복고풍
C30 ― 미래풍의 디자인
골프 ― 간결한 기능주의  
 
기계는 투입된 에너지에 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이른바 좋은 기계의 기준이다. 기계로 구성된 자동차도 그런 기준으로 평가될까? 그러나 그 누구도 자동차를 단지 `기계의 기준`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자동차가 기계, 즉 하드웨어로 평가받지 않는다면 그 기준은 무엇일까? 자주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요즘 자동차는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 경쟁이 더 치열하다. 바로 그 차에 녹아들어 있는 소프트웨어가 그 차의 가치와 미래를 결정해주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어떤 차이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알려져 있다. 하드웨어는 말 그대로 딱딱한 본체를 이루는 여러 가지 부품들과 그것들로 이뤄진 기기를 말한다. 소프트웨어는 하드웨어를 일정한 용도로 쓸 수 있도록 작동방식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을 일컫는다. 프로그램 수준에 따라 컴퓨터는 단순한 게임기에 지나지 않기도 하고 혹은 복잡한 자동차나 선박, 항공기 등을 디자인하고 설계할 수 있는 최고로 정교한 도구로까지 변신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소프트웨어의 힘이다. 
 

자동차에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라는 하드웨어를 어떤 소프트웨어로 움직여 주느냐에 따라 그 차는 평범한 소형 승용차가 되기도 하고 귀엽고 앙증맞은 복고풍 승용차가 되기도 한다.

이 소프트웨어가 바로 디자인이다. 사실 오늘날의 우리들이 자동차를 고르는 기준 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 어쩌면 가장 중요한 기준이 바로 디자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해도 디자인이 자동차에서 오늘날처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지 않았다. 그때는 성능이 가장 중요하고 그다음에 멋까지 있다면 더 좋은 것이었다.

지금은 멋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여기에서 멋있다는 것이 그저 깔끔하고 번듯한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멋이 있되, 그것이 그저 막연히 멋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의 개성을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필자는 지난달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미대 캠퍼스에서 세 종류의 소형 승용차를 가지고 학생들과 `실습`을 했다. 각자 강한 개성을 가진 `BMW 미니 쿠퍼`와 `볼보 C30`, 그리고 `폭스바겐 6세대 골프`를 놓고 그들의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비교해 본 것이다. 이들 세 가지 차는 크기와 엔진 배기량, 감각적인 성향 등에서 백중지세(伯仲之勢)에 있는 차들이다.

세 종류의 차들 중에서 가장 작은 차체를 가진 미니는 그 이름 그대로 미니멀리즘(minimalism)이 가장 큰 무기다. 1959년에 등장했던 오리지널 미니가 가지고 있던 가치를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차체 내ㆍ외부에서는 작지만 단단하고 팽팽하게 당겨진 에너지 감각이 가득하다.  
 
더구나 그런 힘이 가득한 팽팽함은 뒷모습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차체 디자인을 보면 누구나 한눈에 "예쁘다"는 말을 토해내도록 이끄는 힘, 그것이 바로 미니가 가지고 있는 디자인의 소프트웨어다. 클래식 미니의 디자인 전통을 재해석한 모던한 디자인이 작고 단단한 느낌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런 디자인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미니는 경승용차 크기의 차체에 중형 승용차의 엔진을 얹은 `이해할 수 없는 경승용차`로 취급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복고풍의 감각적인 디자인`이라는 소프트웨어의 마법이 `중형 승용차 엔진을 얹은 경승용차`라는 하드웨어를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미니에서 `중형 승용차 엔진을 얹은 경승용차`를 강하게 원한다. 그것이 바로 하드웨어를 뛰어넘는 소프트웨어의 마법 같은 힘이다.

볼보 C30은 미래에서 왔거나 UFO에서 떨어져 나와 지상에 착륙한 차 같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런 느낌은 타원형의 유리 한 장으로 된 테일 게이트, 그리고 양쪽으로 길게 서 있는 테일 램프의 뒷모습 덕분이다.

미래지향적인 뒷모습은 종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박스형 볼보`에 대한 선입관을 여지없이 깨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마치 콘셉트카를 그대로 몰고 나온 듯한 느낌까지도 풍긴다.

볼보는 안전한 차로 정평이 나 있다. 다만 상자 형태이거나 경직된 디자인이었다. 볼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볼보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지금의 볼보는 변했다. 강렬한 오렌지빛 차체 색과 라디에이터 그릴에 붙은 커다란 아이언 마크, 그리고 부드러워진 헤드램프의 눈매로 이전의 경직된 이미지를 털어버렸다.

세 종류의 소형 승용차들 중 골프의 차체는 가장 크다. 그리고 가장 넓고 기능적이다. 모든 내장 및 외장 디자인은 철저한 기능주의에 입각해 합리적으로 디자인돼 있다. 박스형에 가까운 차체, 구석구석 넓은 트렁크 공간은 볼보나 미니의 그것보다 두 배는 될 듯해 보인다.

운전석에 앉으면 나도 모르게 전투적인 긴장감이 다가온다. 이것이 바로 기능적인 독일의 디자인이 주는 차가움의 미학(cool elegance) 감성인지도 모른다.

감성이 없는 것이 바로 독일 디자인의 감성이다. 앞모습과 뒷모습에서는 군더더기가 없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철저하게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독일 기능주의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6세대 골프는 5세대 골프가 매우 논리적이었다면 거기에 약간의 파격을 더해 여유로워진 마음을 가질 수 있게 해주는 면이 있다. C필러에서 시작된 직선에 가까운 트렁크 분할선을 테일 램프가 끊어주면서 논리가 지배하던 디자인에서 감성을 더했다.

학생들은 미니 쪽으로만 몰려가지는 않았다. 골프의 기능적인 디자인을 좋아하는가 하면, 볼보의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이리도 보고 저리도 보곤 했다. 세 종류의 승용차가 `3차 3색`이듯, 사람들 역시 `10인 10색`인 것이 틀림없다.

◆ 앞태와 뒤태는철학이 다르다 
 
=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자동차를 디자인할 때 앞모습과 뒷모습은 서로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작업한다.

일견 이 말은 전체적인 통일성을 가져야 하는 것과는 배치되는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자동차 앞과 뒤를 관찰하는 시간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그런 특성을 고려해야만 한다.

대체로 자동차 앞모습은 마주 오는 차를 순간적으로 관찰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에 강렬한 인상을 풍기거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줘야 한다. 또 그런 조건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사람들이 자동차 앞모습을 통해 그 차에 대한 첫인상을 갖게 되므로 인상적인 앞모습 디자인은 중요하다. 따라서 앞에는 엠블럼과 같은 글씨보다는 메이커 심벌마크를 붙이고 라디에이터나 헤드램프를 이용한 인상 강조가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수직적인 디자인 요소가 주로 쓰인다. 실제 라디에이터 그릴을 수직적인 형태로 디자인하거나 후드에서 그릴로 이어지는 선의 처리가 마치 수직적인 인상을 받도록 디자인하게 된다. 어떤 때는 앞모습에서 V자 같은 이미지로 수직적이면서도 공격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반면 뒷모습은 앞서 가는 차를 따라가면서 오랫동안 관찰하게 된다. 따라서 읽을 수 있는 자동차 이름의 엠블럼을 부착하기도 하고 전체적으로 수평적이고 안정적인 구성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뒤에는 브레이크 등과 방향지시등, 후진등, 후면 반사기를 법규제가 만족하는 크기와 밝기로 붙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번호판을 일정한 위치에 붙여야 하는 등 기능적 요구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만큼 디자인을 발휘할 수 있는 조건이 제한적이다. 이런 조건들을 만족시키면서도 인상적이면서 기능적인 앞뒤 모습을 갖추도록 디자인하는 것이 디자이너들에게 맡겨진 임무이자 고민거리인 것이다.

[한밭대 산업디자인학부 구상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2010.06.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