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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5] 아내의 '거친 손마디'를 위한 디자인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주방용품 업계에서 은퇴한 미국인 샘 파버는 부인과 전원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손가락 관절염을 앓던 부인은 감자깎이 등 주방기구들을 사용하면서 자주 고통을 호소했다. 당시 시중에서 팔리던 기구들은 인체공학적인 배려가 부족하여 여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안전하고 편리한 고급 주방기구는 없을까?

그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파버는 1990년 주방기구 제조회사인 옥소(OXO)를 설립했다. 노련한 사업가 출신답게 그는 새로운 비즈니스의 승부수가 바로 '예쁘고 쓰기 편한 디자인'임을 간파하고, 뉴욕의 스마트디자인과 로열티 지불 방식으로 협력했다. 산업디자이너 데빈 스토웰이 이끄는 스마트디자인은 직원이 20여명으로 규모는 작았지만, 모든 연령층의 소비자들이 편히 사용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유니버설 디자인'에 정통했기 때문이다.

  옥소(OXO) 감자칼 - 스마트 디자인, 길이 18㎝, 1990년. 오른쪽 사진은 이 칼로 감자를 깎는 모습.

디자인 팀은 주부들의 편의와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감자칼(potato peeler)을 디자인하면서 '샌토프린'이라는 신소재를 찾아내 활용했다. 고무와 플라스틱이 배합된 이 신소재는 젖어도 미끄럽지 않고 촉감도 좋아 고품질 주방용품의 손잡이로는 제격이었다. 특히 칼날이 자유자재로 돌아가게 하고, 엄지와 검지가 닿는 부위에 부드러운 홈을 두어 세게 잡아도 무리가 가지 않게 했다. 인체공학적인 디자인과 고품질의 감자깎이는 가격이 8.99달러로 비싼 편이지만 관절염 환자들은 물론 일반 주부들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특히 남자들이 선물용으로 크게 선호하였다. "젖은 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 안타까웠소…"를 즐겨 부르는 우리나라 남편들의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옥소는 스마트디자인과 파트너십을 맺고 빼어난 디자인을 갖춘 갖가지 주방기구들의 개발에 적극 나서 현재 850여종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1991년 매출 300만달러를 돌파한 이후 연평균 27%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2.04.16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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