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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정경원의 디자인노트] [2] 주스 짜는 알루미늄 제품, 거실 장식품으로 둔갑?

정경원 KAIST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디자이너들은 누구나 자기가 디자인한 제품이 저명한 미술관에 소장되는 것을 꿈꾼다. 알루미늄 주조(鑄造)로 만들어진 직경 14㎝, 높이 29㎝의 이 작은 제품 '레몬즙 짜는 기구(Juicy Salif)'는 형태가 아름다워 미국 뉴욕의 현대미술관에 소장되는 등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고 있다. 1990년 프랑스 태생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lip Starck)이 가장 간단한 구조를 통해 레몬즙을 짜는 용도로 디자인했는데, 레몬을 손으로 잡고 제품 위쪽 부분에 대고 으깨면 아래로 즙이 흘러나온다. 원래 해산물 전문 식당에서 흔히 보는 '오징어'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거미'처럼 생겼다는 반응을 보였다.

  '레몬즙 짜는 기구'… 필립 스탁, 높이 29㎝, 1990년. 오른쪽은 이 기구로 주스를 만드는 모습.

제조사인 알레시는 출시(出市) 10주년 되던 해에 금도금한 고급품 1만개에 고유 일련번호를 새겨 판매했는데 요즘은 구하기 쉽지 않으며 인터넷 경매에서 500~ 600달러를 호가한다. 애호가들이 주방이나 식당에서 주스 짜기용으로 쓰지 않고 거실의 장식용 조각품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소장자들은 주머니 사정에 따라 회색·검정 버전(100달러 정도)이나 미니어처(50달러 내외)를 선택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설회사들이 모델하우스를 광고할 때 이 제품을 거실용 소품으로 즐겨 사용한다. 얼마 전, 경영대학원 학생들에게 디자인 경영을 강의하면서 훌륭한 디자인의 예시(例示)로 이 제품을 보여준 적이 있다. 그런데 학기말 과제 발표 때 한 학생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제목으로 "종전에는 광고에서 예쁜 모델만 보였는데, 이제는 멋지게 디자인된 소품들이 눈에 들어온다"고 하여 모두 크게 웃었다.

기사입력 : 2012.03.19 2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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