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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1>“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할때 좋은 디자이너가 된다”

‘헤럴드 디자인포럼’ 패널…삼성디자인학교 정국현 학장 인터뷰

디자인 한 역할만 고집하면 실패
다양한 기능·고객과의 소통도 필수
先디자인 後개발 체제로 변화 가속
디자이너, 제품 미래상 제시해야
도요타 ‘렉서스’ 착석땐 시동에 불
예견·배려 중시하는 일본 茶문화 내재
단순한 외관 아닌 문화 본질 구현
무형 가치·감성 경험할 수 있어야

오는 6일 서울 광장동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1’에 앞서 포럼 패널로 참석하는 정국현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장을 직접 만났다. 그는 삼성그룹 최초로 디자이너 출신 부사장이 되는 등 ‘디자인 삼성’의 선봉에 선 인물로, 지난해부터는 SADI에서 후학 양성에 힘을 쓰고 있다. 34년 동안 디자인업계에서 몸담아온 그가 후배 디자이너와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학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하라”다.

-디자인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요즘 업계에서 디자인의 위치는 어느 정도인가.

▶최근 기업에서 디자인의 위치는 ‘디자인이 먼저냐, 마케팅이 먼저냐’가 논란이 될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 기업들이 과거 OEM(주문자 상표 부착) 비즈니스 방식에서 벗어나 각자 브랜드를 갖다 보니 ‘브랜드의 가시화’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특히 삼성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디자인 경영’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삼성전자에서는 상품 기획 단계부터 디자이너들이 참여하고 있으며, 심지어 디자이너들이 먼저 제품군의 미래상을 제시하면 엔지니어들이 이에 맞게 기술 개발을 하기도 한다. ‘기획→엔지니어→디자인’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제품 개발 방식이 ‘디자인→엔지니어→기획’으로 바뀐 것이다. 즉, 디자이너가 상품 기획자나 마케터를 선택하는 시대가 됐다.

또 최근 디자인센터가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 서초 본사로 옮겨갔다. 그룹의 중심에 디자인부대가 있다는 것은 경영자들이 그만큼 디자인에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기업에서 디자이너의 역할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

▶그렇다. 과거에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부합하는 외형을 잘 만드는 것이 디자이너의 최대 과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 범위가 확대되면서 디자이너들이 할 일도 많아졌다. 브랜드의 가치를 제고시키는 것은 물론, 고객들이 엔지니어들이 개발한 기능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역할도 해야 한다.

특히 디자이너가 고객과의 관계 속에서 제품의 여러 기능이나 부분을 고객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전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기획, 엔지니어 등 회사 내 다른 기능과의 소통과 함께 고객과의 소통도 디자이너의 중요 덕목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가끔 후배 디자이너들에게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하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디자이너라고 고집하면 할수록 관련 부서 사람들은 물론, 고객과의 관계도 만들어 가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즉,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역설적이게도 디자이너이기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국현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장은 ‘디자인 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좋은 디자이너가 되려면 역설적이게도 디자이너기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디자인에만 매이지 않는, 다른 분야와의 소통 능력도 중요해진 까닭이다.

-디자인 역할의 확대에도, 국내 디자인인력들은 변화한 환경에 적응을 잘 못한다는 지적이 있다. 현직에 계실 때 신입 디자이너들의 자질은 어떠했나.

▶당시 신입 디자이너들을 볼 때 생각이나 경험이 좀 좁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 초등, 중ㆍ고교 및 대학과 대학원을 거치는 한 가지 루트를 좇다 보니 보고 듣고 느낀 것이 모두 비슷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런 디자이너가 필요한 시대는 지났다. 앞으로 디자인 사고를 키워가는 학습, 또는 통합된 환경 속에서 각각의 기능을 미리 경험해보는 융합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디자인이 지향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디자인은 ‘도자기의 선’과 같은 유형적인 것이 아니다. 무형의 가치나 문화를 구현해 사용자들의 ‘감성’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 바로 디자인이다. 즉, 고객들이 제품을 사용하면서 쌓을 수 있는 경험 가치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도요타가 만든 세단 브랜드인 ‘렉서스’다. 렉서스에는 예견과 배려로 압축되는 ‘일본의 차(茶)문화’가 내재돼 있다. 렉서스는 스마트키를 가진 사람이 접근하면 사이드미러(side mirror) 하단등이 들어오고, 좌석에 앉으면 시동 스위치에 불이 켜진다. 즉, 고객을 배려해 한 발 앞서 예고해주는 차(茶)문화를 자동차에 대입시킨 것이다.

이처럼 미래에는 디자인이 모든 분야에 접목이 돼 ‘일반화’될 것으로 보인다. 디자인이 모든 분야에서 적용이 되는 만큼 디자인이 점점 하찮아질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디자인이 하찮아질 정도로 일반화되려면 선행돼야 할 것이 많다. 우선 그만큼 우리 사회의 지적 수준이 높아져야 한다. 또 기업의 전략적인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 가능하다.

신소연 기자/carrier@heraldm.com

2011-10-04 11:33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