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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영상

컴퓨터 그래픽 영화史④-파격적인 지원자

200페이지에 달하는 소개자료가 완성되자 그들은 재정 지원자를 찾기 위해 로스앤젤레스 지역에 그 자료를 배포했다. 디즈니 스튜디오라는 이름은 재정 지원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제작사 목록의 맨 아랫부분에 자리했다.

디즈니는 전통적인 수작업 애니메이션에 의존하는 업체였기 때문에 두 사람은 그 스튜디오가 자신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는 어려우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그 스튜디오의 제작 책임자로 임명된 29세의 톰 윌히트가 그 제의에 관심을 보였다.

윌히트의 상사들은 그 프로젝트가 야심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그다지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 역시 리스버거가 제작한 2분짜리 시사용 필름을 보고는 마음이 동요되었다. 그 필름은 애니메이터 리스버거가 실제 연기를 감독할 능력이 있음을 입증해주었고 배우의 동작과 컴퓨터 영상의 결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1981년 4월 쿠슈너와 리스버거는 디즈니로부터 작업을 시작하라는 허락을 받았다.

시사용 필름에 사용된 컴퓨터 그래픽은 뉴욕 엘름스퍼드의 MAGI, 캘리포니아 걸버시의 트리플I, 뉴욕공과대학의 한 그룹 이렇게 세 그룹이 합작해 만들었다. 그리고 리처드 테일러가 영화의 특수 효과 연출자로 트리플I에 초빙됐다.

원래는 트리플I가 '트론'의 모든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맡기로 했으나 그 일을 수행하기에는 그 회사의 컴퓨터 용량이 너무 작았고 그렇다고 용량을 늘릴 형편도 못됐다. 그래서 AMGI가 그 일을 분담하게 됐고 그 밖에 뉴욕 디지털이펙트와 TV게임 그래픽으로 유명한 로스엔젤리스 로버트아벨 이 두 회사가 타이틀과 그 밖의 몇몇 장면을 제공했다.

■ 다이내믹파 MAGI vs 영상파 트리플I

만일 트리플I가 '트론'의 그래픽 작업 전체를 모두 담당했더라면 영화는 아주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접근 방법이 완전히 다른 두 회사 MAGI와 트리플I가 '트론'의 컴퓨터 영상 제작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그래픽스의 양대 조류가 영화 속에 모두 반영됐다.

MAGI가 대표하는 다이내믹파는 정교함보다는 움직임에 보다 중요한 가치를 두었는데 그것이 바로 MAGI의 장점이었다. 반면에 트리플I로 대표되는 영상파는 동작보다는 영상의 짜임새와 매끄러움에 역점을 두었다.

▲TV, 영화 등의 영상 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래리 앨런.

MAGI는 원통, 구, 사각뿔, 원뿔, 도넛 모양 등 25가지 기본 도형을 갖춘 신사비전이라는 영상 시스템을 개발했다. 신사비전의 소프트웨어는 프리미티브라 불리는 기본 도형들을 조합해 좀 더 복잡한 구조를 만들고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그것들을 다시 조립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MAGI의 제작팀장 래리 앨린은 그 시스템을 블록으로 집짓기 놀이를 하는 장난감에 비유했다.

블록 쌓기 식으로 컴퓨터 영상을 만들어나가는 신사비전의 접근 방식은 매끄럽고 기계적인 외관을 지닌 물체를 그려낼 뿐 명암을 주는 것 외에는 굴곡이 진 표면을 묘사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실체감의 결여를 보완해 주는 다른 장점이 있었다.

신사비전은 매우 복잡한 물체를 묘사하는 데도 상대적으로 적은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필요로 했다. 따라서 영상이 신속히 계산되고 일단 계산된 영상은 필름속도 즉 필름 위에 나타나기 전에 동작을 미리 점검, 조정될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스크린 상에 디스플레이됐다.

애니메이터는 신사비전 시스템에 입력돼 있는 일련의 언어를 이용해 물체가 움직이는 길을 묘사한 뒤 컴퓨터 디스플레이 장치에 나타난 결과를 검토해 필요한 경우 그 통로를 수정할 수도 있었다. 스크린 상의 물체의 움직임을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 덕택에 MAGI의 시스템은 복잡한 움직임을 완벽하게 묘사해내야 하는 '트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영화 속의 '비디오 게임 전장'에서는 고속의 라이트 사이클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달려가는 장면을 만들어 넣었고 또 질서 유지 역할을 맡은 모난 아치 모양의 험상궂은 경찰 로봇이 마치 무슨 기계로 된 새처럼 컴퓨터 영상을 급습하는 장면도 창출해냈다.

그에 반해 트리플I가 컴퓨터 영상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그처럼 자유롭지는 못했다. 트리플I의 아티스트들은 프리미티브를 사용해 복잡한 도형을 만들어내는 대신 수많은 다각형들을 마치 타일처럼 연결해 입체적인 모자이크를 만듦으로써 정교한 영상을 구성했다. 모자이크 무늬는 컴퓨터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아티스트가 의도한 대로 매끄러워지면서 모양이 갖춰지고 의도한 색과 무늬 명암을 표현했다.

이 기법의 장점은 독특한 표면을 가진 물체나 상상 속의 우주선 모형들을 실물과 똑같이 세밀하게 그려낸다는 데 있었다. 그러나 MAGI의 기본 도형들과는 달리 트리플I의 다각형 하나하나는 각기 그 모양과 크기가 달랐기 때문에 각 꼭지점의 좌표가 모두 컴퓨터에 입력돼야만 했다. 게다가 영상을 입체도형으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그 다각형 하나하나의 전면, 측면, 그리고 위헤서 바라본 좌표들을 각기 따로따로 기록해야만 했다.

따라서 필름 한 프레임에 들어있는 물체 하나를 그리는 데만도 모두 1만 5,000개 정도의 다각형이 필요했다. 그것은 한 사람의 트리플I 아티스트가 몇 주일을 걸려도 완성하기 벅찬 작업이었다.

수백만 개의 다각형을 추적하는 일은 트리플I의 컴퓨터를 거의 녹초로 만들어 놓았다. 음영이나 기타 세부 묘사가 들어가는 보다 정교한 그림들은 1분이 지나서야 스크린에 나타나기도 했다. 트리플I 시스템 처리 속도로는 영화 '트론'에서의 영상을 미리 점검할 수가 없었다.

이형수 객원기자 news@ebuzz.co.kr | 201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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