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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style&] “한복·단청의 과감한 컬러 매치 놀랍다”

패션쇼 위해 방한한 ‘레오나드’ 다니엘 트리부이야 회장

“한국의 색은 푸샤 핑크(꽃분홍)다. 중국의 빨간색보다 현대적이고 일본의 연분홍보다 선명하다.”

 2011년 현재 이 땅에서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은 죄 ‘차도녀(차가운 도시 여자)’다. 사시사철 검은색을 고수하고 기껏해야 회색, 낙타색 정도로 변화를 꾀한다. 미니멀리즘의 영향 때문. 하지만 이방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다르다. 한복이나 단청을 보면 우리처럼 색스러운 민족이 없단다. 대담하고 화려한 실크 프린팅으로 유명한 ‘레오나드’의 다니엘 트리부이야 회장도 그렇게 확신하고 있었다. 지난해 말 레오나드 패션쇼를 위해 방한한 트리부이야 회장(76·사진)과 그의 딸이자 제너럴 디렉터인 나탈리(48)를 만나 우리가 몰랐던 우리에 대해 들었다.

-레오나드 하면 고상하면서도 색스러운 난초 무늬가 떠오른다. 대단히 동양적인데.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다. 14년 전부터 중국 상하이대 명예교수로 패션산업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일본의 기모노 염색기법을 외국인으로는 처음 배우기도 했다. 레오나드와 기모노는 실크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예술적인 전통기법을 우리 식으로 녹여낸 것은 행운이었다. 한국적인 것에서도 배울 점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에 대해 잘 아는 것 같다.

“20년 전 처음 방한한 뒤 몇 년에 한 번씩은 한국에 들른다. 서울은 놀라운 도시다. 전근대적인 전통과 근·현대, 미래적인 것들이 뒤섞여 있다.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올 때마다 다르다.”

-우리의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았나.

“한국의 색과 문양이다. 오늘날 한국 여성들이 세계 트렌드를 정확히 이해하고 때로 그 흐름을 선도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들의 DNA에 이미 그런 패션에 대한 열정이 숨어 있다. 한복이나 단청을 보라. 꽃분홍과 청록색, 노란색과 자주색을 과감하게 매치하는 감각은 세계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옛 판화나 그림 속의 구름무늬, 꽃무늬는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올 때마다 한국의 고판화, 화보집 같은 책을 잔뜩 사간다. 디자인에 참고하기 위해서다.”

-한데 서울의 젊은 여성들은 색을 두려워한다. 촌스럽다는 비평 때문이다.

“대담하고 화려한 프린트에 소극적이라고 들었다. 이번 시즌엔 그런 여성들을 고려해 회색과 연분홍색, 베이지색 같은 뉴트럴 컬러로 중화시킨 제품도 선보였다. 다만 스카프나 블라우스 등으로 패션에 활력을 주면 인생도 밝아진다. 두려워 말고 시도해 보라. 색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 촌스러운 일이다.”

-레오나드는 서울에선 ‘사모님’들의 옷이다.

“귀한 소재를 귀하게 염색해 그럴 것이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에게도 잘 어울리는 옷이다. 도쿄에서 레오나드 튜닉 미니드레스에 레깅스를 신은 펑크족 아가씨를 봤다. 충격적이었다. 우리의 고유색을 유지하면서도 레이어링에 어울리는 아이템을 개발한다면 더 젊어질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당신의 꿈은 뭔가?

“에르메스처럼 되는 것이다. 19세에 직물 제조업에 뛰어들어 지금의 레오나드를 일궜다. 작은 액세서리부터 옷이나 향수, 화장품까지 우리 정체성인 색과 프린트를 유지하면서 젊은이들에게도 사랑받는 것이 목표다.”

이진주 기자 [meganews@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1.12 00:06 / 수정 2011.01.12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