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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j Insight] 논란 된 런던올림픽 로고 디자인 ‘울프 올린스’의 칼 하이젤먼 대표

“소수의 반감 살지라도 소신있게 밀어붙여라”

울프 올린스에서 만든 작품과 함께한 칼 하이젤먼 대표.

2007년 6월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가 2012년 런던올림픽 로고를 발표하자 영국 여론은 들끓었다. 대회 개최연도인 ‘2012’ 4개의 숫자를 해체해 조각 도형을 짜맞추듯 바꾼 이 로고에 대한 반응은 비난 일색이었다. 조직위는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활력이 넘치는 디자인으로 기존 올림픽 로고와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했으나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성행위 장면을 연상케 한다든가, 나치의 문양을 닮았다, 조잡하다는 등…. 영국 BBC방송 여론조사 결과 응답자의 80%가 로고에 대해 비호감을 드러낼 정도였다. 그러나 조직위는 꿋꿋이 이 로고를 지켜냈고 4년이 지난 현재 ‘창의적’이라는 여론이 늘고 있다. 이 논란의 중심에는 런던올림픽 로고를 디자인한 브랜드 컨설팅 회사 울프 올린스가 있다. 울프 올린스는 업계로부터 ‘다른 회사가 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한국을 찾은 영국 울프 올린스의 칼 하이젤먼(47) 대표를 만났다. 그는 런던올림픽 디자인 프로젝트 총책임자를 맡았다. 또 GE·유니세프·펩시·AOL·마이크로소프트 등이 그의 손을 거쳐 갔다.

글=김창규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2012년 런던올림픽 로고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유는 무엇인가.

“2006년 이 프로젝트를 하기로 했을 때 올림픽은 점점 인기가 떨어져 가고 있었다. 특히 젊은 층에서 심했다. 그래서 젊은 층에 호소력 있고 이들이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문화를 강조하고 싶었다. 바로 모두를 위한 올림픽이다. 올림픽은 운동경기만이 아니라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런던올림픽의 목적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다르다. 베이징올림픽은 세상에 베이징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런던은 그게 아니다. 런던올림픽의 야망은 훨씬 더 크다. 예를 들어 런던올림픽은 모든 사람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런던에서 열리는 것이지만 ‘영국스러운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첫째 목적은 전 세계적으로 어필할 수 있는 유니버설한 것이었다. 동양 또는 서양에만 치우친 것이 아니고 영국의 이벤트가 아닌 전 세계의 이벤트, 그러면서 도전적인 것을 하고 싶었다. 무조건 튀려고 하는 게 아니라 분명한 우리 관점이 있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다르면서 도전적인 것 말이다. 그래서 기존 올림픽 로고와 다른 것을 창조하려 했다. 그래서 나온 게 모든 이를 위한 올림픽이다. 런던올림픽 로고는 모든 것을 다 담을 수 있는 컨테이너 개념이다. 로고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파트너 회사가 나름대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이 로고는 열려 있고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그런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로고

●요즘 이 로고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로고를 만들 당시 미래를 예측하고 창조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때 반론이 있었지만 지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에 재평가를 받을 것이라는 신념이 있다. 그리고 올림픽 파트너십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을 벌었다.”

●여론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나.

“새로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 새것에 대한 충격이란 게 항상 있다.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게 마련이다. 울프 올린스 작품에 대한 반응은 아주 싫어하거나 너무 사랑하는 양극단으로 나뉜다. 어떤 작품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할 수는 없다. 소수에게 반감을 살지라도 소신 있게 최선의 일을 해야 한다.”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의도적으로 구설수를 일으켜 손님을 끄는 전략)은 아닌가.

“그건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남들이 다 하는 것을 원하는 고객은 우리에게 오지 않는다. 일단 이를 알고 오는 경우가 많다. 런던올림픽 로고를 내놓았을 때도 직원의 집까지 파파라치들이 찾아와 아이를 시골에 피신시킨 경우도 있었다. 당시 논란을 만든 건 맞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좋게 평가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전에 없었던 최초의 것을 만들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결과물이 나왔다. 입소문 안 나고 조용히 지나가려 한다면 남들이 다 하는 것만 하면 된다.”

●다르다는 것의 창의성은 어디서 오는가.

“항상 사람에게서 출발한다. 우리는 일이 어떻게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지 항상 염두에 둔다. 또 제일 중요한 건 호기심이다.”

●디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problem solving)이다. 사람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고 어떤 것이 세상에 영향을 줄까 생각해야 한다. 좋은 디자이너는 호기심과 세상을 관찰하는 눈이 중요하다.”

●근본적인 질문이다. 기업에 회사 이름이나 로고가 꼭 필요하다고 보는가.

“좋은 질문이다. 이는 브랜드가 도대체 무엇인가와 연관이 있다. 인터넷이 널리 퍼지기 전에는 기업이 대중매체를 통해 일방적 소통을 하는 성격이 강했다. 대표적인 예가 말버러 담배다. 처음에 말버러는 여성을 타깃으로 했다. ‘아기 엄마가 스트레스받으면 담배를 피우세요’라는 광고를 했다. 그후 말버러는 남자에게 담배를 팔기로 결정했고 ‘카우보이’ 이미지를 넣는 일방적인 소통의 광고를 선보였다.”

●인터넷 이전에는 브랜드 마케팅이 일방적이었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예전의 브랜드는 ‘군사적 언어’다. 일단 입장을 정하고 캠페인을 통해 방어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 이후 경험이 중요해졌다. 회사가 ‘이런 이런 회사다’ ‘이런 상품이다’라고 홍보하는 게 먹히지 않는다. 심지어 낯선 사람의 경험이 기업 홍보보다 중요해졌다. 이제는 기업이 컨트롤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는 의미다. 약간 예외적인 경우는 애플이다. 애플은 잘 정착된 브랜드다. 애플의 경험은 명확하고 상상할 수 있다. 애플이 은행이나 항공사를 만든다면 어떤 서비스를 하겠구나 상상이 간다. 하지만 다른 회사들은 경험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그럼 인터넷 시대에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하나.

“회사 내부에서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회사의 존재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고 소비자의 삶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면 유니레버와 일한 적이 있는데 로고를 만들기 전에 4년 동안 함께 일한 다음 로고를 만들어냈다. 그때 브랜드 아이디어는 생활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컨셉트였다. 상품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건축가라면 우리 같은 브랜드 컨설팅사는 도시를 만드는 사람이다. 큰 그림을 그리고 조화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동안 한 작업 가운데 제일 인상적인 것은.

“레드(RED) 캠페인이다. 레드는 세계적인 록그룹 유투(U2)의 보컬인 보노와 아널드 슈워제네거 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매부인 바비 슈라이버가 세계적 기업들과 손잡고 추진하는 아프리카 에이즈 확산방지 운동이다. 레드는 세계적인 브랜드와 파트너십을 통해 아프리카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한 글로벌 펀드 기금을 모집한다. 처음엔 이 운동은 정부 의뢰를 받아 하는 정부 프로젝트였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가 참여하는 것을 고민했고 우리가 참여해 다른 브랜드와 협력해 제품을 만드는 것을 생각해냈다. 여기에는 애플·스타벅스·나이키·아르마니·갭 등 수많은 세계적 기업이 참여했다. 이는 자선사업만 하는 게 아니라 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1억5000만 달러를 모았다. 특히 갭은 ‘Ispi(Red)’ ‘Bo(Red)’ ‘Ado(Red)’ 등의 단어가 찍힌 레드 캠페인용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Ispi(Red)’ 문구가 있는 티셔츠는 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제품이다. 상품 자체가 탐나는 데다 의도도 좋으니 잘 팔린 것이다. 이는 자선에 새로운 개념을 불어넣은 것이다.”

●많은 기업에 컨설팅을 하는데 이들이 공통으로 원하는 건 무엇인가.

“가치 창조, 산업 자체를 재편할 정도의 엄청난 영향,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욕구,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 등이다.”

●디자인 전문가이자 경영자다. 어릴 때 꿈은 무엇이었나.

“사업가는 분명 아니었다. 어릴 때 꿈은 록스타 또는 화가였다. 어렸을 때는 모든 게 재미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무엇을 딱히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산업디자인 쪽의 영역이 다양해 그곳으로 가게 됐다. 즐거움(fun)이 내 인생의 가이드 역할을 했다.”

칼 하이젤먼의 디자인 철학

“애플을 보라, 사람들 경험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다”

미국 뉴욕 태생의 칼 하이젤먼은 산업디자인 전문가다. 1992년부터 2년간 애플사의 디자인 디렉터로 근무한 그는 스와치그룹을 거쳐 2000년 울프 올린스에 입사했다.

창의적 디자인으로 잘 알려진 애플은 항상 다름을 추구하는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애플과 다른 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에게 세계적인 업체인 애플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진지하게 30분 정도 이야기했다.

●애플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하는가.

“애플에서 디자인을 보는 특징은 ‘디자인=대상’이 아니다. 디자인의 시작은 사람이다. 어떤 물건을 디자인할 때 단순히 그 상품만의 디자인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그 상품과 사람의 상호작용, 상품 디자인, 소프트웨어 등 상품과 관련된 전체를 하나로 생각한다.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 부문의 최고책임자다. 애플은 상품 디자인이 아니라 경험 전체를 생각한다. 보통 다른 회사는 상품 조립과 포장을 분리해 생각하는데 애플은 이를 연결된 경험으로 생각한다.”

●상품 하나가 아니라 상품과 관련된 전체를 본다는 것인가.

“그렇다. 애플은 상품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경험 전체를 생각한다. 뉴욕의 애플스토어를 디자인한 사람이 나의 친구다. 그에 따르면 애플스토어에 흐르는 전반적인 메시지가 경험이다. 애플스토어에 가 보면 알겠지만 애플은 상품을 팔려는 게 아니다. 이곳은 경험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돼 있다. 애플은 절대로 특정 상품의 구체적인 스펙에 대해 광고하려 하지 않는다. 매장 환경도 중성적으로 디자인돼 있다. 특정 상품 하나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다. 애플에는 제품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제품 사용에 대한 이해가 있다.”

●애플과 다른 회사를 비교해 보면.

“애플 제품은 모두 가족처럼 느껴져 애플의 로고가 없어도 애플 상품이란 것을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회사는 브랜드를 나타낼 수 있는 ‘가족’ 같은 게 없다. 다른 제품은 로고를 가렸을 때 이게 소니인지, 파나소닉인지 알 수 없다. 독일의 BMW나 아우디에도 면면히 흐르는 관점이 있다. 애플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무엇을 안 하는 걸 결정하는 게 뭔가 하는 걸 결정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는 이것, 저것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삶을 편하게 하고 단순하게 하는 것이다. 소비자의 삶에 필요하지 않다면 배제하는 게 더 중요하다.”

●한국에도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이 많다. 이들 기업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으로 삼성이 전자제품 분야에서 잘한다고 본다. 이는 디자인 중심으로 생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플은 디자인 세상을 이끌고 있다.”

●애플에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애플에서 배운 교훈을 헨리 포드 말을 인용해 설명하겠다. ‘자동차 왕’으로 알려진 헨리 포드(1863~1947)가 소비자에게 지금 뭐가 필요하냐고 물었다면 “(자동차가 아니라) 더 빠른 말”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을 것이다. 자동차가 나오기 전에는 제일 중요한 이동 수단이 말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는 세상에 대한 책임이 있다. 디자이너는 소비자의 수요를 이끌(창조할) 필요가 있다. 서베이는 자동차의 백미러(과거)를 보는 것과 같다. 물론 이런 서베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앞을 내다보면서 세상을 이끌 필요가 있다.”

●이처럼 세상을 이끈 사례가 있나.

“좋은 예가 프랑스 이동통신회사인 오랑주(Orange)다. 이 회사는 처음 회사를 대표하는 색을 오렌지색으로 하는 게 좋은지 고민을 했다. 당시 오렌지색은 낙관적인 생각을 뜻했다. 그러다가 아예 사업 브랜드를 오랑주로 부르는 게 어떠냐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이 생각은 매우 급진적이었다. 그래서 그 회사 회장이 이 말을 듣고 ‘내 눈에 흙이 들어가면 하라’고 할 정도로 반대를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결국 이름을 오랑주로 정했고 이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6년 만에 0에서 250억 파운드로 늘어나는 기록을 세웠다. 당시 휴대전화는 주로 영업사원이 갖고 다니는 벽돌 같은 것이었는데 오랑주라는 이름 덕에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상품으로 거듭났다.”

j 칵테일 >> 로고 홍보용 동영상에 발작도

런던올림픽 로고는 다양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2007년 런던올림픽 로고 홍보 영상을 보던 사람이 발작을 일으켰다. 감광성 간질이었다. 감광성 간질은 시각적인 자극이 강할 경우 발생해 경련·의식상실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가 홈페이지에서 이 영상물을 삭제하는 등 한때 소동이 일었다. 당시 10여 명이 간질 증세를 호소했다. 로고 홍보용으로 제작된 이 동영상에서 다이빙 선수가 물속에 뛰어드는 장면의 물결 색깔이 너무 현란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로고의 초기 논란 때문인지 세계인의 절반가량이 벌써 런던올림픽 로고를 알 정도로 로고 인지도가 높아졌다. 또한 1년 만에 기업 후원액이 4억 파운드에 달할 정도로 큰 성과를 내고 있다.

김창규 기자 [teenteen@joongang.co.kr]
박종근 기자 [jokepark@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1.15 00:23 / 수정 2011.01.15 0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