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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명품 디자인의 비결은 깊이있는 사고


가브리엘 페치니 에르메스 수석 디자이너

명품 브랜드는 현대인들을 열광시킨다. 세계적인 프랑스 명품 브랜드인 에르메스(Hermes)의 경우, 여성 핸드백 하나가 수천만원을 호가한다. 비싸더라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는 덕분에 명품을 사기 위해 전 세계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대부분 명품은 최고의 재료, 충분한 시간, 장인의 노하우로 만들어진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렇다면 전 세계 소비자들의 마음과 영혼을 흔드는 명품 디자인의 비결은 무엇일까. 지난 18일 인천광역시가 주최한 ‘2010인천국제디자인페어’에 에르메스의 가브리엘 페치니 수석 디자이너(사진)가 연사로 참석했다. 그는 이탈리아 명차인 부가티(Bugatti)와 헬리콥터, 가구, 라디오 등 다양한 디자인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자신을 디자이너가 아닌 ‘Thinker(사상가)’로 소개하는 페치니 씨를 직접 만나 명품 디자인, 디자이너의 세계와 디자인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에르메스는 170년 전 마구(馬具)작업장으로 출발해 현재 의류 및 액세서리, 가구 등 총 14개 분야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상표보단 상품의 질 우선
디자인은 이성적인 과정
창조 위해선 용기 있어야

- 에르메스가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 에르메스는 상품을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브랜드를 생각한다(Hermes considers products first and then the brand). 이러한 철학은 상품에서도 알 수 있는데, 에르메스 브랜드를 상품 표면에 절대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들은 고객들이 가방을 에르메스이기 때문이 아닌 ‘그 가방을 좋아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로 상품을 사길 원한다. 또한 에르메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가족 같은 관계에 있다. 그것이 에르메스를 강하게 만드는 요소다.

- 헬리콥터, 자동차에서 카펫, 가구 등 다양한 물건을 디자인했다. 어떻게 가능한가.

▶ 디자인은 이성적 과정이다(Design is a rational process). 만드는 상품에 대해 배우고, 자신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창조를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 변화를 주는 것을 두려워하면 안된다. 헬리콥터를 만들거나, 스탠드를 만드는 것은 상품의 가격차이는 크지만 내가 다가가는 방식은 동일하다.

- 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 어려서부터 배움 자체를 항상 갈구했다. 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학교를 다닌 것은 아니었다. 배움자체를 추구하다 보니 플로렌스에 있는 학교를 가게 됐고, 그 학교는 디자인 중심의 명문학교였다. 디자인 과정을 보니 다양한 분야의 뭔가를 많이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갤러리도 다니고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됐다.

- 창의적 디자인을 위해서 필요한 요소는 무엇인가.

▶ 창조는 우선 용기를 필요로 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다. 창의적이 되기 위한 좋은 교육과 방향은 자기 자신이 되는 데 있다(The good education and direction to become creative is to be yourself). 시장의 대세가 아닌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낼 용기를 갖고 자신만의 아이디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야말로 창의적인 태도다(Being yourself is a creative attitude).

- 미래 디자이너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이 있다면.

▶ 우선, 디자인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역사를 알고, 그것이 어떤 이유로 유용한 것인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First of all, you must have an understanding of design history, where design is coming from and for what reasons it’s useful). 둘째, 관심분야의 디자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디자인 개념이 처음 시작된 영국의 경우 가구, 상품, 패션, 공예 디자인 등 특화된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해당 분야에 대해 명확한 이해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외 국가의 디자인 세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 가구, TV를 디자인하기도 한다. 나 역시 다른 많은 것들을 디자인 했다. 이것은 경험이 있고,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이제 더 이상 모양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회와의 소통을 통해 사회가 안고 있는 주된 문제점을 이해해 보다 멀리,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 오늘날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상품을 디자인할 능력을 지닌다. 디자이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이 오히려 상품의 구조를 알기 때문에 디자이너보다 훨씬 디자인을 잘 이해하고 잘해 낼 수 있다. 따라서 디자이너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보다 정치적 역할을 해내야 한다.
디자이너들은 산업과 함께 우리가 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아닌지, 생산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남이 하니까 그대로 따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오늘날 학교 역시 비즈니스화돼 디자이너를 마치 물건처럼 생산해 내고 있다. 그렇게 배출돼 스스로 어디를 향해 가는지 모르는 학생들, 디자이너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이들에게 미래의 현실을 말해주는 사람들이 없다. 디자이너에게 교육과 함께 그들의 현실에 대해 명확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글 최한이기자·사진 장세영기자·영상 이철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