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걸 교수의 공공디자인 클리닉 <7> 문화재 안내판, 문화 수준이 보인다
우리나라에는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서 등록 지정한 1만여 개의 문화유산이 있고, 그중 국보·보물·사적·명승 등 주요 유형문화재는 5300여 개에 이릅니다. 문화재마다 방문자의 이해를 돕고자 안내판이 설치되는데 재질·색채·크기에서 역사문화 경관을 해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같은 지역 내의 안내판도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이어서 여러 문화재가 밀집되어 있는 곳에는 각양각색의 안내판이 난립합니다.
사적 284호인 서울역사에도 문화재 안내판이 설치되어 이 건축물의 역사와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전하고 있지만,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육중한 안내판이 벽돌과 화강석을 주재료로 하는 서울역과 조화롭지 않고 안내문도 잘 읽히지 않습니다<사진1>.
금속재 안내판을 없애고, 투명한 유리 소재의 안내판으로 교체하니 역사 건축물이 보다 시원하게 다가옵니다. 디자이너 김현선이 제안한 이 안내판은 상부는 다소 어둡지만, 아래로 내려갈수록 유리의 투명도가 높게 특수코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문안이 들어가는 부분은 글자가 잘 읽히고 바닥에 닿은 부분은 밝아 안내판이 경쾌하게 떠 있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그림2>.
샌드위치 구조의 이 안내판은 두 장의 강화유리 사이에 전체를 지지하는 뼈대 기능의 유리를 넣어 지하에서 고정함으로써 두꺼운 프레임을 피하고 부피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보기와 달리 충격에도 강하고, 깨져도 비산되지 않는 강화접합유리를 사용해 공공시설물을 파괴하는 행위 로부터 문화재와 시민을 보호합니다. 문안은 유리 안쪽에 특수 프린트해 훼손을 방지하고, 장애인·어린이·일반인의 시야 범위를 고려해 적정 높이에 배치했습니다.
문화재 안내판은 이해를 돕기 위한 보조시설일 뿐입니다. 따라서 어느 경우에도 존재감이 지나치게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전달의 기능만 가져야 합니다.
문화재 안내판을 보면 그 나라, 그 도시의 문화 수준이 보입니다. 안내판도 문화재에 걸맞은 품격을 지녀야 합니다.
권영걸 서울대 교수·한국공공디자인학회 회장
[중앙일보] 2009.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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