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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I saloni milano 2010"

“The show must go on”. 20세기 초•중반 왕성하게 활동했던 영국의 유명 희곡 작가 노엘 카우어드가 처음 사용한 이 표현처럼 2010년 4월 중순의 밀라노는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꿋꿋하게 큰 행사를 치러냈다. 바로 세계 디자인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신작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국제적인 행사 ‘2010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I Saloni Milano 2010)’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I saloni milano 2010 "“The show must go on”. 20세기 초•중반 왕성하게 활동했던 영국의 유명 희곡 작가 노엘 카우어드가 처음 사용한 이 표현처럼 2010년 4월 중순의 밀라노는 아이슬란드의 화산 폭발이라는 돌발 악재에도 꿋꿋하게 큰 행사를 치러냈다. 바로 세계 디자인계의 흐름을 꿰뚫어보고 최고의 디자이너들이 내놓은 신작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국제적인 행사 ‘2010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I Saloni Milano 2010)’다.

세계적인 가구 업체들이 총출동하는 지상 최대의 가구 쇼
지난달 14일부터 19일까지 밀라노 근교의 로 피에라(Rho Fiera) 박람회장을 주축으로 열린 이 행사는 2천4백99개의 업체가 참여해 지난해(2천7백23개 업체)에 비해 규모가 다소 축소되긴 했지만 관람객 수는 오히려 10% 가까이 증가한 33만 명에 이르렀을 정도로 성황리에 진행됐다. 해마다 4월이면 전시장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에 휩싸일 정도로 곳곳에서 풍성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여전히 ‘명불허전’이었다.  기나긴 경기 침체의 여파로 규모와 화려함 등 여러모로 볼 때 풀이 약간 죽은 감이 있다지만 사실 ‘알맹이’를 살펴보자면 ‘발품’ 파는 게 결코 아깝지는 않았다. 특히 시공간을 초월한 견고한 아름다움을 지니는 ‘클래식’이나 ‘향수(nostalgia)’의 정서를 담은 고전적인 성향의 작품과 여느 때보다도 더욱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느낌이 물씬 배어나는 기발한 발상을 바탕으로 한 참신한 작품의 대비와 조화가 자못 흥미로웠다.   

 


▲ 1 스웨덴 여성 3인조 디자이너 그룹 프런트(Front)가 선보인 잡지꽂이 ‘Front Page’. 책장을 넘기는 느낌을 살려낸 곡선의 디자인이 흥미롭다(Kartell). 2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의 3백60도 회전이 가능한 의자 ‘Spun’ (Magis). 3,4 이탈리아의 가구 업체 캄페지(Campeggi)가 전시한 다용도 소파 시리즈. 평상시엔 일반적인 소파로 사용하다 조작을 하면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가볍게 몸을 풀 수 있는 펀칭 볼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 제품 ‘Champ’ (왼쪽)와 길게 펼치면 편안한 매트리스로 변신하는 소파 ‘Girella’ (오른쪽). Champ는 토비아스 프란첼(Tobias Fraenzel), Girella는 로렌조 다미아니(Lorenzo Damiani)가 각각 디자인했다.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발상의 전환
세상에 무수한 디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줄기차게 도전 받는 디자인 영역의 하나가 우리가 일상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의자일 것이다.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비트라(Vitra)는 의자 본연의 가치를 묻는 듯한 작품 ‘체어리스(Chairless)’를 선보여 주목받았다. 칠레 출신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인도의 유목민이 대대로 사용해온 도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만들었다는 이 제품은 등과 양 무릎을 끈으로 감싸 ‘양반다리’식으로 바닥에 편히 앉을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이름 그대로 의자가 필요 없는 의자 대용품인 셈이다.

여성 3인조로 구성된 스웨덴의 디자인 그룹 프런트(Front)는 이탈리아 가구 업체 포로(Porro)와 손잡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케 하는 작품인 ‘미러 테이블(Mirror Table)’을 내놓았다. 직사각형 거울과 결합한 콘솔(console)로, 거울의 반사 효과 때문에 마치 미지의 공간을 향해 열려 있는 입구처럼 보이는 이색적인 제품이다. 마지스(Magis)의 3백60도 회전 가능한 의자 ‘스펀(Spun)’은 다양한 재료는 물론이고 조각, 건축 등 다채로운 영역에 도전하는 ‘팔색조’ 영국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특유의 성향을 잘 드러냈다.

캄페지(Campeggi)에서 내놓은 참신하고 다양한 의자와 소파 시리즈도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했다. 예컨대 ‘지렐라(Girella)’라는 의자는 돌돌 말면 의자 모양이 되지만 길게 펴면 푹신한 매트리스로 쓸 수 있다. 또  ‘챔프(Champ)’라는 제품은 평소엔 평범한 소파로 사용하다가 등받이를 올리면 권투 샌드백을 겸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 1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겸 건축가 안토니오 치테리오(Antonio Citterio)의 소파 세트 ‘Suita Sofa’ (Vitra).
2 칠레 출신 알레한드로 아라베나(Alejandro Aravena)가 내놓은 의자 대용품 ‘Chairless’. 등과 양 무릎을 끈으로 감싸면 의외로 편안하게 바닥에 앉아 먹고 마시고 음악을 듣거나 명상을 할 수 있는 의자 아닌 의자가 된다(Vitra).
3 프런트가 이탈리아 명품 가구 브랜드 모로소(Moroso)와 손잡고 디자인한 ‘Wood Chair’. 택시 기사의 운전석과 아프리카의 수공예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 의자는 나무 소재의 구슬을 활용한 비누 거품의 독특한 디자인과 함께 고도의 안락함을 추구한다.


시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고전과 추억의 정서
장기 경기 침체의 영향일까? 실험 정신과 대조적으로 ‘타임리스(timeless)’도 올해 박람회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였다. 이는 박람회 주최 측도 거듭 강조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타임리스’는 유행을 타지 않는 고전적인 우아함에 대한 선망을 뜻할 뿐만 아니라 시대의 흔적은 물론 기술, 심지어는 디자이너의 손길마저 느껴지지 않는 특성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전적인 명작을 재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찰스 임스와 레이 임스의 걸작인 ‘라운지 체어(Lounge Chair)’의 ‘월넛(Walnut)’ 버전(브랜드: 비트라)을 들 수 있다. 소박한 추억이 깃든 동심으로 이끄는 가구 소품으로 뻐꾸기시계만큼 강력한 물건을 찾기도 힘들지 않을까? 일본의 후카사와 나오토(Fukasawa Naoto)가 마지스와 손잡고 디자인한 뻐꾸기시계 ‘쿠클락(CuClock)’과 지오바니 레반티(Giovanni Levanti)의 추가 달린 뻐꾸기시계(브랜드: 디아만티니 & 도메니코니) 등은 향수가 느껴지는 정감 어린 작품이다. 또 카사마니아(Casamania)의 앙증맞은 니트 램프 ‘그래니(Granny)’는 오스트리아의 3인조 디자이너 그룹 푸델스컨(Pudelskern)의 디자인으로 알프스의 소농에서 공수한 양모를 사용해 제품명에서 알 수 있듯이 할머니의 정겨운 뜨개질을 연상케 한다. 

      
▲ 1 오스트리아의 3인 디자이너 그룹 푸델스컨(Pudelskern)의 양모를 사용한 니트 램프 ’Granny’ (Casamania).
2 브라질 출신의 듀오, 캄파냐(Campana) 형제(페르난도, 움베르토)의 레이저 커팅 기술을 활용한 알루미늄 소재 조명 ‘Campana’와 테라코타 테이블 ‘Cotto’ (Edra).
3 스위스 출신의 산업 디자이너 이브 베하(Yves Béhar) 가 크리스털의 대명사격 브랜드인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팰리스’ 전시회에서 선보인 샹들리에 ‘Amplify’ (Swarovski).
4 일본의 산업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Fukasawa Naoto)가 디자인한 시계 ‘Tempo’ (Magis).
5 프랑스 태생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이 내놓은 ‘고스트 버스터’ 시리즈의 하나인 작은 탁자 ‘Small Ghost Buster’ (Kartell).

무채색과 투명의 향연
올해는 화려한 파스텔 톤 ‘컬러’보다 무채색, 투명함, 나무 빛깔 등이 다른 때보다 눈길을 끌었다. 그 대표 주자는 올해 키워드를 ‘블랙’으로 내세운 이탈리아의 카르텔(Kartell). “블랙 이즈 백(Black is Back)”이라고 외치며 부스를 강렬한 검정으로 단장한 카르텔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디자이너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을 비롯해 피에로 리소니(Pierro Lissoni), 패트리샤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 등 스타 군단을 앞세워 관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카르텔 측에서는 “어째서 검정 위주의 단색으로 변신을 시도했냐고 묻는다면 ‘놀라움’을 선사하기 위해서라고 답하겠다”라고 설명했다. 필립 스탁은 ‘고스트 버스터(Ghost Buster)’라는 이름의 수납장 시리즈를 비롯해 찰스 임스, 아르네 야콥센, 에로 사리넨 등 20세기의 거장 디자이너 3명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들의 대표작을 재해석해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의자 ‘매스터스(Masters)’, 독특한 디자인과 기능성이 돋보이는 야외용 안락의자와 소파 시리즈 ‘매직 홀(Magic Hole)’, 동그란 모양에 가볍고 간편한 사이드 테이블 ‘팁 톱(Tip Top)’ 그리고 현대적인 느낌의 투명한 벽시계 ‘틱&택(Tic & Tac)’까지 한꺼번에 쏟아냈다.  

소재의 끊임없는 진화
일본 출신의 세계적으로 명성 높은 디자이너 요시오카 도쿠진(Yoshioka Tokujin)은 앉거나 만질 때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구겨지는 재활용 알루미늄을 바탕으로 한 신소재로 만든 의자 ‘메모리(Memory)’를 모로소(Moroso)를 통해 선보였다. 신소재의 특수성에 기반한 형태의 자유로운 변화를 통해 자연의 성질을 표현했다고 한다. 벨기에 디자인 갤러리인 ‘Z33’도 어떤 식으로 취급하느냐에 따라 형태가 바뀌는 제품 시리즈를 전시했다.이 밖에 실험성이 강한 브랜드로 알려진 에드라(Edra)는 브라질의 캄파냐(Campana) 형제를 통해 알루미늄과 강철을 소재로 한 독특한 느낌의 수납공간과 조명, 테이블을 선보였다. 이처럼 첨단 소재도 두드러지지만 2009년에 이어 나무와 같은 천연 소재의 활용도 더욱더 강세를 띠고 있다는 평가다. 모로소와 작업한 프런트의 ‘우드 체어(Wood Chair)’는 자작나무 소재의 크고 작은 구슬을 엮어 마치 비누 거품과 같은 모양을 빚어낸 작품으로, 수많은 의자 사이에서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스페인이 자랑하는 여성 디자이너 패트리샤 우르퀴올라는 단순미가 돋보이는 목재 의자 ‘클라라(Klara)’를 선보였다. 또 다른 스페인 출신의 스타 디자이너 제이미 헤이온(Jaime Hayon)도 나무와 친환경 소재 등을 활용한 의자(브랜드:마지스) ‘피냐(Piña)’를 내놓았다.   

 
▲ 1 스페인 출신의 제이미 헤이온(Jaime Hayon)이 나무와 흰색 와이어를 사용해 만들어낸 그물형 의자 ‘Piña’(Magis).
2 요즘 세계에서 가장 각광 받는 디자이너의 하나인 스페인의 패트리샤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가 선보인 의자 ‘Comback Chair’. 18세기 잉글랜드에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실용적인 ‘윈저 체어’의 틀에 그녀만의 감각을 입혔다 (Kartell). 
3 양쪽 팔걸이에 달린 주황색의 ‘주머니’가 눈에 띄는 필립 스탁의 야외용 의자 ‘Magic Hole’ 시리즈 (Kartell).
4 기하학적 느낌의 디자인이 돋보이는 패트리샤 우르퀴올라의 또 다른 의자 디자인 ‘Silver Lake’ (Moroso).
5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주목 받은 대표적인 디자이너 일본의 요시오카 도쿠진(Yoshioka Tokujin)의 신소재 의자 ‘Memory’. 소재의 특수성으로 인해 앉거나 만질 때마다 여러 가지 형태로 변하는 게 특징이다(Moroso).


크리스털과 과학의 만남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기간 동안 많은 이가 빼놓지 않고 찾은 장소 중 하나는 크리스털이라는 한결같은 소재로 매해 다양한 진화를 추구하는 스와로브스키의(Swarovski) 전시장이었다. 밀라노 시내의 조나 토르토나(Zona Tortona)에 위치한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팰리스(Crystal Palace)’ 전시장 앞에는 예외 없이 길고 긴 행렬이 늘어섰다. 올해 그 누구 못지않게 빼어난 활약을 펼친 요시오카 도쿠진을 비롯해 5명의 디자이너가 각각에게 주어진 5개의 방을 자신의 영감을 크리스털로 엮어내는 이 화려한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올해의 크리스털 팰리스는 LED(발광 다이오드)와 같은 첨단 기술과 크리스털의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조화를 인상적으로 보여줬다. 스위스 출신의 산업 디자이너 이브 베하(Yves Béhar)는 언뜻 크리스털처럼 보이는 종이 소재의 여섯 가지 랜턴이 진짜 크리스털의 빛에 굴절돼 표면에 아름다운 형상을 빚어내는 방식이 돋보이는 ‘앰플리파이(Amplify)’라는 작품을 선보였다. ‘어포더블 샹들리에(Affordable Chandelier)’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상대적으로 가격대가 저렴한 조명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프랑스 출신으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하는 그웨나엘 니콜라스(Gwenael Nicholas)는 LED 조명을 사용한 12m 길이의 화려한 크리스털 막대와 함께 작은 크리스털 조각품이 들어 있는 커다란 투명 풍선을 전시했다. LED와 나사(NASA)의 첨단 기술이 적용된 이 특별한 풍선이 움직이면 LED 광선 때문에 크리스털이 불꽃처럼 번쩍이는 효과가 난다. 그웨나엘은 “첨단 기술로 영감 어린 디자인의 표현력을 증대시킬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작품을 빚어내기 위해 LED 기술 수준이 향상되기를 기다렸다”며 “크리스털과 신기술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디자이너들에게 굉장한 기회이자 특권”이라고 덧붙였다. 

2010년 5월 vol.43 / 글 고성연 기자 (밀라노 현지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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