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반대 의견을 의식했는지 며칠 전 서울시에서 이 가림막을 이순신 동상 실사 사진으로 바꾸겠다고 말했다가,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하니 71%가 긍정 반응을 보였다"며 철거 계획을 철회했습니다.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서울시 균형발전추진과 실무자에게 물어보니 "시민들의 반응을 더 지켜보면서 바꿀 수도 있다"고 답하더군요. 교체 여지를 남겨둔 겁니다.
가림막을 디자인한 광고 디자이너 이제석씨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봤습니다. 이씨는 국제적인 광고상을 휩쓴 '광고 천재'입니다. 뉴욕에 있는 그는 할 말이 참 많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서울시가 일을 하면 더 이상 서울시와 일하고 싶지 않다"며 그 사이 가림막 뒤에 가려져 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놓더군요.
서울시 홍보대사인 그는 한달여 전 서울시로부터 가림막을 제안받았답니다. 누구보다 오세훈 시장이 적극적이었다네요. 오 시장은 상식을 깨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직접 주문했답니다. 가림막 문구로 '휴가 중' '내시경 중' '탈의 중' 등이 있었는데 오 시장과 함께 리노베이션의 의미가 강한 '탈의 중'으로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시안을 가지고 서울시 쪽과 처음으로 화상회의를 하던 날 이씨는 "권위주의에 혀를 내둘렀다"고 했습니다. 자문단으로 참여한 모 미대 교수들이 "너무 가볍다" "장난스럽다"며 '강의'를 했답니다. 이씨 표현으로는 '면박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못 참은 이씨는 "이럴 거면 못 한다"고 했답니다.
막상 이씨가 'No'를 하니 급해진 건 실무팀이었습니다. 오 시장이 직접 의뢰했는데 못 하겠다니 비상이 떨어진 거죠. 결국 팀에서 다시 사정해 이씨는 계획대로 설치물을 완성했답니다. 그런데 설치 예정일 이틀 전인 12일 서울시가 연락해 "아무래도 반대 여론 때문에 취소해야겠다"고 했답니다. "양복집에서 옷 맞춰 놓고 마음에 안 드니 안 가져가겠다는 식 아닙니까." 이씨는 이 대목에서 많이 흥분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설치는 했지만 아직 설치 기간은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이 가림막은 엄연한 설치 작품입니다. 작가가 전시 기간도 모르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요.
모처럼 '공무원스럽지 않은' 시도에 박수치려던 마음이 싹 가셨습니다. '탈의 중' 가림막과 함께 공무원 조직 안에 깊게 밴 권위주의, 복지부동(伏地不動)도 탈의했으면 합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입력 : 2010.11.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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