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과 재창조 프로젝트 벌이는 남이섬
폐기물을 다시 쓰는 걸 재활용 또는 재사용이라고 한다. 버릴 수밖에 없는 걸 활용해 예술작품을 만든다면 그것은 재사용을 넘어 창조가 된다. 사옥 이전 과정에서 나온 특수유리를 매립하는 대신 관광조형물로 만든 사례를 취재하기 위해 6일 강원도 춘천시 남산면 방하리의 남이섬을 찾았다.
평일인데도 중국·대만·말레이시아 등지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수년 전만 해도 왕년의 인기 연속극 ‘겨울연가’의 촬영지를 둘러보려는 일본 여성 관광객이 넘쳤지만, 요즘엔 지갑이 두둑해진 중국계 관광객이 그 자리를 메운다. 남이 장군 묘역 인근의 대형 안내판 앞에서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들은 뒤 삼삼오오 흩어져 섬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방문객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들어 두는 건 남이섬 중앙광장 옆 밥플렉스 건물이다. 아직 준공되지 않았지만 내부는 1일부터 시작된 세계책나라축제 행사장으로 쓰여 다양한 그림책 등이 전시되고 있었다. 밥플렉스 앞 연못에선 대규모 분수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돌 분수와 유리 분수가 쌍둥이 형상으로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유리 분수대는 남이섬 창조 프로젝트의 상징이다. 압축 소주병을 쌓은 기단 위에 세로 2.5m, 가로 1.1m 크기의 강화유리를 겹겹이 세우고 그 위에 다시 15장의 강화유리를 덮었다. 삼성증권이 지난해 서울 종로2가 본사를 태평로로 이전하면서 뜯어낸 350장의 사무실 벽 유리를 옮겨 유리분수대를 만든 것이다. 강화유리는 재활용·재사용이 안 돼 땅에 묻을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고민 끝에 낸 아이디어다. 유리에는 감사파트·인터넷/Telecom파트·Small cap파트·증권조사파트·채권분석파트 같은 부서 명칭과 회사 로고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상상’과 쉼터라는 뜻의 ‘마루’를 합쳐 ‘상상마루’로 명명한 분수대는 14일부터 물을 내뿜는다.
분수대에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면 길이 150m 가량의 긴 연못이 있다. 남이섬이 오수 정화를 위해 만든 환경 연못이다. 연못에는 ‘첫 키스의 다리’라는 나무다리가 있다. 배용준 등 ‘겨울연가’의 주인공들이 첫 키스를 한 곳이란다. 이 다리를 따라 30장의 강화유리에 압축한 녹색 소주병을 붙여 만든 유리 가로수길이 늘어서 있다. 남이섬의 명물인 메타세쿼이아 길을 본뜬 것이다. 이 유리 역시 삼성증권 옛 사옥에서 나온 것이다. 이 회사의 이병희 전무는 “당초 깨서 매립할 생각을 했는데 ‘Create with You’라는 회사 브랜드 슬로건이 새로 나온 김에 창조적 재사용을 해보자는 구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이섬에 모여 현장 전략회의를 거듭하면서 폐기물 활용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증권회사로는 드물게 ‘환경경영’에 대한 아이디어까지 얻게 됐다.
‘남이섬 프로젝트’에는 사옥 이전 때 나온 폐기물 100t 중 13%가 들어갔다. 대형 유리를 남이섬으로 옮기는 과정이 까다로웠지만 그보다 작품제작 과정은 더욱 순탄치 않았다. 강화유리는 녹이는 가공이 불가능해 디자인에 제약이 많았다. 제작은 일본 도야마유리공방 소속 모리 고이치로(森康一朗·24)와 남이섬 공예원 작가들이 참여했다.
수년간 지속된 남이섬의 폐기물 ‘재창조’프로젝트는 이번 일로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남이섬 입구의 ‘사랑과 평화의 등대’는 아모레퍼시픽이 제공한 1만여 개의 설화수 공병으로 만든 설치미술이다. 목련꽃이 활짝 핀 듯한 모양의 등대는 미국·세르비아·필리핀·한국 4개국 설치미술가 7명이 참여해 만들었다. 포스코는 남이섬의 버려진 고철·목재를 가지고 회사 경영이념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드는 직원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남이섬 남단의 ‘남이장대’라는 정자는 화재로 소실된 경기도 수원 화성 서장대(西將臺)의 잔해와 강원도 낙산사 화재 때 불타다 남은 주변 소나무, 200년 지나 교체한 경남 하동 쌍계사 금강문 기와 등을 활용했다. ‘스토리 텔링’의 관광상품, 문화적 재창조를 이룩한 건축물이다. 남이섬은 또 배를 만들다 버린 고철과 자전거 등을 활용해 영화 ‘프레데터’의 주인공을 형상화한 작품을 만들어 환경연못 옆에 전시하고 있다.서울 송파구는 해마다 소각할 낙엽 200여t을 남이섬으로 실어날라 ‘송파 은행나무 길’이라는 촬영장소를 만들기도 했다.
㈜남이섬의 강우현(57) 대표는 “남이섬은 2000년대 초반부터 폐기물 재창조 사업을 해 왔는데 근래 기업과 공공기관의 관심이 부쩍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녹색성장’은 기업 ‘지속가능 경영’의 중점 과제가 되고 있다. 미국 다우존스는 지난달 2010/11년 글로벌 지속가능 기업을 선정 발표하면서 경영성과뿐 아니라 친환경과 사회공헌활동을 점수에 반영했다. 이번 ‘월드지수’에는 삼성전자 등 국내 13개 업체가 포함됐는데 남이섬에 재창조 조형물을 설치한 삼성증권과 아모레가 명단에 들었다.
남이섬(춘천)=이찬호 기자
이찬호 기자 [kabear@joongang.co.kr]
[중앙일보]2010.10.11 00:07 입력 / 2010.10.11 00:07 수정
'Design Trend > 환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터뷰] 헬레나 휘보넨 알토대 예술디자인대학장 (0) | 2010.10.11 |
---|---|
이젠 세계 건축가분야도 여인천하 (0) | 2010.10.11 |
몸으로 느껴야 제맛인 ‘한글에 앉기’ 전시회, 10일까지 광화문 광장 (0) | 2010.10.08 |
이보크(Evoque) 출시 기념 전시: 레인지로버(Range Rover)와 예술의 결합 (0) | 2010.10.07 |
‘놀이 동산 사무실’ 세계의 최고의 환상적 회사 (0) | 2010.1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