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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스마트폰 대중화, 여성들이 이끌어갈 것

파격·감성 디자인 내세운 ‘글램’
멀티미디어 즐기는 여성 타깃
“디자인 속엔 이야기 있어야”
    
 

» 황성걸 모토롤라 디자인센터장 
 
첫 ‘한국형 모델’ 선보인 황성걸 모토롤라 디자인센터장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 핑크 골드와 화이트를 조화시킨 풍부한 색감, 다이아몬드 컷이 뿜어내는 화려함과 고급스러움, 뛰어난 손맛, 뒤태를 돋보이게 만드는 격자 무늬….” 지난 16일 오후 서울 양재동 하이브랜드빌딩 13층 모토롤라 한국디자인센터에서 만난 황성걸(큰 사진) 모토롤라 한국디자인센터장(상무)은 듣는 쪽이 민망할 정도로 ‘모토 글램’에 대한 찬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정작 위쪽에서 바라본 모토 글램의 모습은 달랐다. 원시인 입술만큼이나 두툼하고, 가운데 있는 이어폰 연결꽂이 구멍 역시 볼품없다. 흔히 쓰는 말로 ‘확 깬다’는 느낌마저 준다. 아이폰4와 ‘수신불량’의 조합만큼이나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것일까? 황 센터장은 “스마트폰을 개발할 때는 디자인을 중시할 것인가, 기능을 우선적으로 살릴 것인가의 충돌이 늘 발생한다”며 “모토 글램의 위쪽 모습은 기능을 우선적으로 살린 것이고, 아이폰4의 수신불량은 디자인 쪽의 주장이 강해 발생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모토 글램은 최근 에스케이텔레콤(SKT) 이동통신 가입자들에게 공급되기 시작한 모토롤라의 새 스마트폰으로,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채택했다. 황 센터장은 “모토롤라 쪽에서 보면, 모토 글램은 휴대전화 디자인의 ‘혁명’이자 ‘실험’이고 ‘이단아’”라고 말했다. 실제로 모토롤라가 기존에 내놓은 휴대전화나 스마트폰들이 모두 기계적이고 남성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것과 달리, 모토 글램은 감성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가 강조됐다.

모토 글램은 모토롤라 휴대전화와 스마트폰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디자인센터가 디자인 개발을 주도한 것도 특징이다. 모토롤라는 현재 미국·중국·한국 등에 7개 휴대전화 디자인센터를 두고 있다. 각 디자인센터에는 모토롤라에서 ‘디자인 명장’ 대우를 받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배치돼, 경쟁과 보완 관계를 유지한다. 모토롤라가 새로운 휴대전화를 디자인할 때는 7개 디자인센터 가운데 한 곳이 그 프로젝트를 주관하고, 다른 6곳이 조언하고 평가하는 구실을 하는데, 7명의 명장이 만장일치로 ‘만족’ 사인을 줘야 디자인이 최종 완성된다.   
 

» 모토롤라 글램 
 
모토 글램 디자인이 완성되는 데는 11개월이나 걸렸다. 기존의 모토롤라 휴대전화 디자인 철학으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디자인이다 보니, 다른 디자인센터 쪽의 ‘태클’이 유독 심했다. 심지어 미국 쪽에서는 “게이스럽다”는 평가까지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반대도 ‘한국적인 게 세계적이 될 수 있다’는 한국디자인센터의 끈질긴 뚝심을 끝내 꺾지는 못했다. 실제로 모토 글램은 한국 사람의 몸과 정서에 맞춰 개발됐다. 국내 스마트폰 시장이 이미 대중화 단계에 들어섰고, 스마트폰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여성이 스마트폰의 대중화를 이끌 것이란 진단에 따라, 그에 걸맞은 디자인을 개발했다. 황 센터장은 “패션 감각을 가진 남성과 여성 소비자를 동등하게 배려했다”며 “한국 여성의 표준 손크기를 조사해, 쥐는 느낌이 좋고, 오래 쥐고 있어도 손이 피로해지지 않는 폭과 두께, 곡선의 기울기 지점을 찾아 반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디자인이 아무리 중요해도 3.5㎜ 이어폰 꽂이까지 내칠 수는 없었다. 위쪽 모습까지 세련되게 보이게 하려면 이어폰 꽂이까지도 얇은 것으로 바꿔야 했지만, 이렇게 되면 사용자들이 전용 이어폰을 써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멀티미디어 기능을 강조해 스마트폰으로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여성 사용자들에게 다가선다는 모토 글램 나름의 ‘스토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끝내 두툼한 느낌을 주게 된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황 센터장은 “우리와 반대로 애플의 아이폰4는 디자인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안테나를 밖으로 노출시키면 몸에서 발생한 전기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기능 진영의 의견을 묵살한 경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황 센터장은 “디자인과 기능이 충돌했을 때 건설적인 결론을 맺기 위해서는 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며 “이게 바로 우리나라가 부족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디자인을 공모하거나 결정할 때 ‘미인대회’식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완성된 그림을 놓고 선택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외국의 유명업체들은 완성된 디자인보다는 그 앞 단계의 스토리를 더욱 중시하는 편이다.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지역이 디자인 부문에서 앞서가는 것도 바로 풍부한 스토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작가와 정치인 등이 디자이너인 경우도 많고, 디자이너의 사회적인 지위도 높다. 히틀러 시절엔 디자이너들이 좌파로 몰려 미국으로 대거 쫓겨나기도 했다. 애플 아이폰 디자인 책임자도 영국계다.
황 센터장은 “완성된 디자인은 훔칠 수 있어도 스토리는 베낄 수 없다”며 “스토리를 갖지 못한 디자인은 표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스토리에서 출발하지 않은 디자인은 윤리적인 문제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황 센터장은 “베끼는 것은 중국이 우리보다 더 잘한다”며 “제품 경쟁력에서 앞서려면 창의성, 신뢰성과 함께 스토리를 가진 디자인이 강조돼야 한다”고 말을 맺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사진 모토롤라코리아 제공
기사등록 : 2010-08-23 오후 09: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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