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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영상

스마트폰, 디자인의 개념을 바꾸다

[매거진 esc] 앱게임 ‘픽스픽스’로 반향 일으킨 독일의 디자이너 그룹 ‘이보이’ 인터뷰 

» 아이폰에서 픽스픽스 게임을 구동시킨 모습.

네모난 스마트폰 속 세상은, 두가지 색깔로 이뤄진 작은 아이콘부터 애플리케이션을 실행하면 등장하는 화면까지 그 어느 것 하나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시각적인 즐거움은 그렇게 우리의 일상 속으로, 손바닥 안으로 쏙 들어왔다. 그뿐인가, 손가락을 조금 움직여 디자인 등 시각예술과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으면 더 감각적이고 농도 높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은 시각예술을, 그중에서 특히 디자인을 어떻게 바꿔놓고 있을까?


» 아이폰에서 픽스픽스 게임을 구동시킨 모습.

미디어아트 전문채널 <앨리스온>의 류임상 아트디렉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음악에는 ‘대중가요’가 있지만 미술에는 ‘대중미술’이 없었어요. 그런데 갤러리 등에서 즐기던 예술이 개인적인 매체인 스마트폰 등을 통해 개인적인 예술로 바뀌고 있어요. 그러면서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가 무너지기 시작했죠. 그렇게 스마트폰은 시각예술을 점점 더 개인적인 영역으로, 또 디자인을 대중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어요.”

전통적인 예술가들보다 새로운 매체 적응력이 뛰어난 디자이너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지고 있는 것도 역시 주목할 만한 현상이다. 디자이너들은 자신의 작업을 담은 다양한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을 통해 자신의 작업을 알리고, 또 증강현실 등의 기술과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작업을 구현해낸다. 이런 디자이너들 중 주목할 만한 이들이 있다. 독일과 캐나다에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카이 페어메어와 슈테판 자워타이크, 슈벤트 슈미탈 등 3명이 함께 하는 디자이너 그룹 ‘이보이’(eBoy)다.


“픽셀아트는 실제 이미지와 그래픽의 경계 작업”

이보이의 작업은 꽤 친숙하다.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를 구성하는 수많은 픽셀을 이용해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픽셀아트’ 혹은 ‘도트 디자인’ 작업이다. ‘팩맨’ 같은 오래된 컴퓨터 게임이나 싸이월드 미니홈피 미니룸 등이 이런 작업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이보이는 도트 그래픽으로 전세계의 도시 이미지를 재현하고, 캐릭터를 만든다. 창의적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이들의 독특한 디자인 코드는 이미 2000년대 초반 국내에서도 대중적 관심을 끌어낸 적이 있다. 류임상 아트디렉터는 “픽셀로 촘촘하게 그려낸 픽셀아트는 사진과 같은 실제 이미지와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의 경계에 있는 작업”이라며 “오래된 컴퓨터 게임이나 레고 블록 등이 연상되는 향수 역시 픽셀아트의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10년이 넘도록 픽셀아트 작업을 해 온 이보이가 최근 또 하나의 흥미로운 작업을 내놓았다. 지난달 아이튠스 앱스토어를 통해 공개한 픽셀아트 기반의 게임 ‘픽스픽스’(FixPix)다. 직접 아이폰을 흔들어 여러 개의 층(레이어)으로 나눠진 이미지를 원래의 이미지로 맞추는 이 게임은 출시된 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반응이 뜨겁다. 기존 2차원 이미지 작업이 3차원으로, 감상하는 방식에서 게임하는 방식으로, 보는 눈에서 직접 만지는 손으로 디자인 작업을 한 차원 끌어올린 이들과 전자우편으로 얘기를 나눴다.

» ‘이보이’의 디자이너. (왼쪽부터)카이 페어메어, 슈벤트 슈미탈, 슈테판 자워타이크.

⊙ 1997년부터 ‘이보이’를 시작했는데, 어떤 계기로 픽셀아트 작업을 시작하게 됐나? “처음에 우리는 기업 로고, 타이포그래피 등을 만드는 평범한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러던 중 우리 셋 모두 컴퓨터로, 그리고 컴퓨터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고, 또 그림 등의 작업을 전자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픽셀아트는 우리에게 당연한 대안으로 다가왔다. 우리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컴퓨터 데이터로 만들어낸 결과물로 그대로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출판사도 필요 없었고, 출력비용도 들지 않았다.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하자 픽셀아트 작업이 유일한 선택권이 됐다.”

⊙ 픽셀아트는 어떤 작업 과정을 거치나? “우리 셋 중 하나가 포토샵으로 간단한 레이아웃을 만든다. 그러면 셋 모두가 집이나 자동차, 사람 같은 세세한 부분을 작업하기 시작하면서 전체 레이아웃을 서서히 완성한다.”

» 이보이가 세계 도시를 픽셀아트로 작업하는 ‘이시티’ 시리즈 중 독일 쾰른 이미지.

⊙ 3명의 디자이너가 어떻게 각자 디자이너로서 자신의 개성을 작업에 표현하나? “작업을 할 때 우리는 항상 일을 분담한다. 셋 모두 색깔이나 모양, 혹은 주제에 관한 취향이 있다. 그렇지만 다양한 취향을 최대한 공유한다. 다채로움이 일을 할 때 더 큰 재미를 주기도 하고, 작품을 더 흥미롭게 만든다. 작품이 완성되면 누가 어떤 부분을 작업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가끔은 오래된 아이디어를 다른 누군가가 새롭게 재해석할 때도 있다. 전세계 여러 도시를 다루는 ‘이시티’(eCity) 작업의 경우, 셋이 한 작품에서 함께 일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다.”

⊙ 앱스토어를 통해 픽스픽스 게임을 출시했다. 그리고 이보이 누리집(hello.eboy.com)에 ‘꿈이 이뤄졌다’고 썼는데, 어떻게 이 게임을 만들게 됐나?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 아이폰은 먼 미래에서 온 물체인 것 같았다. 그전까지 휴대전화는 재미가 없었고, 쓰기도 복잡했을뿐더러, 가끔은 형편없이 만들어졌다. 애플은 우리에게 공상과학물(SF)을 선물했다. 아이폰을 사용하면 할수록 아이폰에 빠져들었고, 아이폰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관련 개발 프로그램을 배우기에는 시간과 재능이 부족했다. 그러던 중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딜리셔스 토이스’라는 회사가 게임에 관한 기획을 제안했고, 우리는 사용자 환경과 게임 각본을 만들었다.”

» 픽스픽스 게임 화면.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무한한 놀이터”

⊙ 이보이에게, 또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아이폰과 같은 스마트폰의 출현은 어떤 가능성을 의미하나? “소프트웨어는 마술이다. 소프트웨어로 이뤄낼 수 있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뭔가를 창조하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아이폰과 아이패드 같은 새로운 기기는 무한한 놀이터와도 같다. 그리고 앱스토어는 누구에게나 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 원래 이보이의 작업도 재미있었지만, 스마트폰에서 보는 작업은 또 다르게,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그 이유가 뭘까? “아이폰에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그림들이 픽셀로 만들어졌고 훌륭한 디스플레이에서 보여지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픽스픽스에는 3차원(3D) 효과를 넣어 그림과 작업이 더욱 선명해지고 입체감이 더해졌다.”

⊙ 이보이는 지금 또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 독일 본에 관한 ‘이시티’ 작업, 또 슈퍼히어로에 관한 포스터 작업을 하고 있다. 티셔츠 제작도 꾸준히 하고 있다. 요즘은 도시 포스터처럼 큰 그림을 만들어나가는 일이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다. 게임에 관한 아이디어는 더 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다.”

글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사진제공 이보이(eBoy)
한겨레신문 | 기사등록 : 2010-06-30 오후 10:33:13  기사수정 : 2010-07-04 오후 03:2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