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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이 사람]디자이너 이상봉 ‘패션 한류’ 리더 건강한 지구를 디자인하다

ㆍ‘한글 옷’으로 세계적 주목…이젠 환경에 눈돌려
ㆍ‘사람이 입는 옷’에서 ‘세상이 입는 옷’ 짓기로
ㆍ환경 주제 패션쇼에 각종 환경 홍보대사로 바쁜 활동

이상봉은 더 이상 패션 디자이너가 아니다. 여전히 옷 만드는 일에서 손을 놓지 않았지만, 그의 발걸음은 이미 패션을 넘어섰다. 그는 1994년에 열린 SFAA 컬렉션에 혜성처럼 등장해 한국 패션 디자이너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패션 디자이너로 10여년. 최근 그가 새로운 화두를 부여잡았다. 환경이다. 사람들에 입힐 옷을 재단하는 디자이너에서 이제는 세상에 입힐 옷을 고민하는 환경디자이너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상봉은 나이를 애써 밝히지 않았다. 언제나 37살의 열정으로 살고 싶다는 그를 그의 작품이 호위하고 있는 강남구 역삼동의 디자인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창길 기자

피부를 뭉갠 병, 자신에 주목하다

이상봉은 패션 디자이너로 쌓은 화려한 이력 덕에 주변에 사람이 많이 꼬인다. 그러나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스스로 외톨이가 돼야 했던 어린 상봉은 만성 피부병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냈다. 비책을 찾을 수 없는 병증은 목욕탕 마저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가정 환경도 숨이 막혔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투병 생활을 했고, 가계를 책임져야 하는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일을 해야 했다. 어린 상봉에게 아버지란 존재는 서서히 원망의 대상으로 자리잡았다.

“중학교때 몇 안되는 중학교 가출을 했어요. 부산 영도다리 인근에 방도 구했죠. 혹시 친구들이 집으로 돌아가면 전 영도다리에서 떨어져 죽을 생각까지 했어요. 좀처럼 낫지 않는 피부병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저를 괴롭히는 고질병이 됐습니다. 이 약 저약이 듣지 않아, 여름이면 피부를 까맣게 태우는 선텐으로 허물을 벗기는 게 전부였으니까요. 다행히 이 방법이 묘책이었던지, 피부병은 많이 나았지만 팔과 몸에 노인네처럼 검버섯이 생기더군요.”

이 뿐이 아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출신으로 오랫동안 꿈꾸던 연극 무대에 서고자 했지만 무대 공포증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되는 일이 없는 삶이었다. 돌파구가 된 것은 아내였다. 음악다방에서 만난 아내와 일주일 만에 동거를 시작했고, 6개월 후에 물 한 사발 떠놓고 결혼식을 올렸다. 초라한 결혼 생활에 생계를 위해 취직을 해야 했지만, 그 역시 이상봉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었다. 보다 못한 아내의 권유로 복학을 했고, 졸업후 디자이너 학원에 들어가면서 그의 행로는 천양지차로 달라졌다.

이상봉이 손을 대면 트렌드가 됐다. 스페인의 한 출판사는 ‘아틀라스 오브 패션 디자이너스’라는 책을 내며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디자이너 60명을 소개하면서 한국 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이상봉을 꼽았다. ‘샤넬’의 칼 라거펠트, ‘랑방’의 앨버 알바즈와 마틴 마르지엘라, 알렉산더 왕 등의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어깨를 나란히 한 것이다.


한국이 품은 얼, 한글에 주목하다

이상봉이 세계에 디자이너로서 명성을 확실히 하게 된 것은 한글 문양을 통해서다. 이 의상을 처음 선보인 것은 2006년 파리 컬렉션. 2002년 세계 최고의 무대라 할 수 있는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진출한 이후, 이 무대에서 또 다시 한글을 가지고 ‘사고’를 친 셈이다.

이 패션쇼는 이벤트로 끝나지 않았다. 세계적 스타들의 눈을 사로잡은 패션 트렌드가 됐다. 할리우드 스타 린제이 로한은 한글 디자인의 옷을 입고 유명 패션지 ‘나일론’ 화보를 찍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가수 장사익의 붓글씨로 표현한 디자인이었다. 프랑스 여배우 줄리엣 비노시는 한국 방문 후 출국 보따리에 한글 디자인의 옷을 챙겨갔다.

패션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린 한글 디자인은, 아이로니컬하게도 패션디자이너의 벽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그의 한글 모티프는 행남자기의 그릇세트와 프랭클린 다이어리의 표지를 장식했고, 그가 만든 한글도자기는 영국 앨버트뮤지움에 영구 보관 중이기도 하다. 패션을 넘어 문화로 업그레이드된 셈이다.

이상하게 인기는 뒷담화라는 꼬리를 달고 온다. 그의 한글 패션에 대해 “한글 팔아 돈 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런 딴죽걸기 외에 “한글에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단호하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차별화를 위해 ‘우리 것’을 찾다가 한글로 옷을 디자인하게 된 거죠. 그저 새로운 시도란 생각에 한글패션을 시작했지만 이젠 사명감이 느껴져요.한글을 디자인에 접목하면서 25년간 사용하던 영어 레이블도 한글로 바꿨으니까요.”

인기 좀 끌었다고, 그의 생각이 한글에 안주한 것은 아니다. 패션이란 우물을 나와 세상을 마주한 그는 세상이 입은 옷인 환경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세상이 입은 옷, 환경에 주목하다

이상봉은 지난달 30일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환경재단 주최 행사에서 환경과 어린이를 위한 ‘그린 이즈 러브(Green is love)’ 패션쇼를 진행했다. ‘어린이 환경센터’ 설립을 위해 마련한 행사다. 그는 패션쇼에 대한 전반적 기획을 맡았고 ‘그린 산타상’을 수상하며 무대의 주역으로 떠올랐다.

2007년 11월에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소나무를 주제로 한 패션쇼를 열었다.

“우리 국민의 70%가 선택한 한국의 상징 자연물은 소나무더군요.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2043년이 되면 한반도에서 소나무의 모습을 볼 수 없다고 해요. 결국 소나무를 지키는 일이 지구 온난화를 막는 길이고, 그 기금을 마련하는 자선 패션쇼를 연 거죠. 소나무 컨셉트의 패션쇼를 통해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펼치게 된 계기가 된거죠.”

그는 2007년 환경재단 홍보대사에 이어 올해 광주에서 열린 2011 도시환경협약(UEA) 정상회의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그의 환경운동은 작지만 자신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낡은 옷을 고쳐 입고, 20여년 전 사용하던 명함을 아직도 그대로 사용한다. 그런 탓에 휴대전화 번호를 일일이 직접 써주는 수고를 마다 하지 않는다.

그의 디자인은 현실이고 유일한 몽상은 생물학적 나이다. 늘 푸른 소나무처럼 실제 나이를 밝히기보다 ‘언제나 37세’라고 우기는(?) 열혈청년 이상봉의 지치지 않는 도전이, 환경의 시곗침을 뒤로 돌리는 거창한 일에 조그마한 힘을 보태고 있다.

‘어린이 환경센터’ 설립 위해 매진도

이상봉은 지난달 30일 환경과 어린이를 위한 패션쇼를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서 진행했다. 국내 최초 어린이 환경전문 기관인 어린이 환경센터 설립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 쇼가 끝난 뒤 이상봉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는 앞으로 몇 년 간 전혀 옷을 만들지 않아도 전 인류가 입을 수 있을 만큼 많은 옷이 있다”며 “옷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환경, 그리고 미래의 주인인 어린이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며 환경을 화두로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글 강석봉·사진 김창길 기자 ksb@kyunghyang.com

입력: 2011년 12월 19일 21: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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