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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조선일보 비주얼 특별기획 image] 한국 디자인, 런던에 내려앉다

15개팀 연합 '코리아', 세계적 디자인 축제 '100% 디자인 런던'에 도전장
당장 상품화 가능한 실용적 디자인 박람회… 전세계 2만여명 찾아

지금 영국 런던은 성대한 디자인 축제로 한껏 달아올라 있다. 올해로 9회를 맞은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이 지난 17일 막이 오르면서 런던 시내 곳곳에서 280여개의 크고 작은 디자인 행사가 동시 다발로 열리고 있다.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은 상업성과 예술성 양 측면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국제 디자인 행사이다. 보리스 존슨(Johnson) 런던시장은 "런던이 전 세계 창조 산업의 허브임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라며 축제의 열기를 더했다.

이 '세계 창조 산업의 수도'에 '디자인 한류'가 도전장을 내민다. 페스티벌의 메인 전시 중 하나로 22일부터 25일까지 런던 얼즈코트 전시장에서 열리는 '100% 디자인 런던'에 한국 디자인 기업과 디자이너 총 15팀이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함께 참여한다. 이들은 지식경제부와 한국디자인진흥원(KIDP)의 지원으로 설치되는 한국관에서 작품을 전시할 예정이다. 개막 직전, 한국 디자인에 대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몇몇 작품이 전시 대표 작품으로 소개되고 주요 수상작 후보로 주목받고 있다.

▲ 갈라진 나무 틈새로 따뜻한 빛이… 갈라진 나무 틈으로 빛이 새어나오게 만든 권재민의‘크랙 볼 펜던트 램프’.(왼쪽) 한지로 만든 의자 - 신태호의 한지로 만든‘한지-플라스틱 의자’. 블루프린트상 최종 후보작.(가운데) 잠수부, 찻잔 속으로 풍덩 - 윤성문의‘티다이버’. 차를 우려낼 때 쓰는 도구. 잠수부가 물 속에 있는 듯한 모양이다.

◆식상한 전통미는 싫다! 재해석된 한국미

행사의 막은 오르지 않았지만 이미 인터넷상에선 사전 전시가 한창이다. 전시회 하이라이트로 꼽히는 '블루프린트 상' 최종후보 10개도 홈페이지에 공개됐다. '블루프린트 상'은 저명 디자인잡지 블루프린트에서 그해의 디자인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대표 작품에 주는 상으로 22일 수상작 4점이 발표된다. 사전 공개한 최종 후보작에 한국 디자이너 신태호(31)씨의 작품 '한지-플라스틱 의자'가 포함됐다. 언뜻 보면 재료를 가늠할 수 없는 이 의자는 한지로 만들어졌다. 한지의 주 재료인 닥나무 원료를 이용해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한지를 덧발라 완성한 것. 알고 보면 100% 한국적인 작품인 셈이다. 신씨는 "전통이라고 하면 대개 전통 무늬나 형태를 활용한 공예적인 접근을 생각하는데 여기서 벗어나 실용적으로 한국적인 소재를 응용해 봤다"고 했다.

한지 의자처럼 이번에 전시된 한국 디자이너들의 작품을 보면 표면적으로 대놓고 '한국 디자인'이라고 아우성치는 듯한 작품은 거의 없다. 전통 소재를 새로운 방식으로 적용하거나 익숙한 한국적인 사물을 의외의 쓰임으로 해석해 한국 고유의 아름다움을 담았다.

수와 크래프트의 소파 작품 '칸'은 못질을 하지 않고 짜맞추는 한옥의 결구(結構) 방식을 소파에 응용했다. 여러 개의 긴 나무 막대기를 끼워 맞춰 소파 틀을 만들었다. 한국적인 제작 방식을 택한 것이다. 디자인 바이러스의 '타래(Ta-rae) 조명'은 실타래를 조명 갓으로 사용했다. 여러 개의 조명을 천장에 매달면 마치 색색깔의 실타래가 걸려 있는 모양이 연출된다. NJ 라이팅은 도자기로 만든 조명 시리즈를 선보인다. 화학 성분을 전혀 함유하지 않은 백자토를 원료로 만들어 변색과 변형이 없는 친환경 조명이다. 이 작품은 주최 측에서 아시아 대표작품으로 선정해 사전 행사 홍보에 활용하고 있다.
 

▲ 전통 한옥 짓듯 못질 한번 안하고 만든 소파 - 수와 크래프트의 소파 작품‘칸’. 못질을 하지 않고 짜맞춰 짓는 한옥의 건축 방식을 응용해 나무 막대기를 끼워 맞춰 소파 틀을 만들었다. /KIDP 제공

◆지구를 향하는 디자인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글로벌 세대답게 관심을 한국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환경·빈곤퇴치 등 전 지구적인 문제를 디자인으로 승화한 작품이 관람객을 찾아간다.

테이블 '아이스버그 브레이크 오프'는 하지훈(39)씨가 지구 온난화를 주제로 삼아 만든 작품이다. 인공위성에서 북극의 빙하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포착한 장면을 코리안(인조대리석) 소재의 탁자에 이미지로 반영했다. 방금 떨어져 나온 빙하가 검은 바다 위를 부유하는 모습이다. 하씨는 "탁자는 주로 집 안의 중심인 거실에 놓이기 때문에 시선이 많이 머무는 가구"라며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상에서 항상 느낄 수 있도록 탁자에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박지원(26)씨의 '1/2 프로젝트'는 기부를 디자인으로 표현한 작품. 부채꼴 모양의 저금통 두 개를 붙여 반원 형태로 만든 '1/2 저금통'은 절반은 '자신을 위한 저금'을, 나머지 절반은 '타인을 위한 나눔'을 상징한다. 두 개의 저금통이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시소처럼 한쪽으로 기울도록 디자인했기 때문에 저금통을 똑바로 세우기 위해선 나를 위해 저금하는 만큼 똑같은 금액을 기부 저금통에 넣어야 한다. 에이치 콤마와 김기현(32)씨가 공동 작업한 '유니컵'은 버려진 사물이 자원 재활용을 통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개성 있는 디자인 제품으로 환생한 과정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대량 생산 과정에서 결함이 생겨 판매할 수 없게 된 머그컵의 손잡이 부분만 재활용해 유리컵과 결합시켰다.
 

▲ 실타래 조명(왼쪽) - 실타래를 조명 갓으로 활용한 디자인 바이러스의‘타래 조명’. 의자, 사슴 뿔 달다? - 끝이 사슴 뿔처럼 생긴 나무 막대기를 꽂은 이민호의‘사슴 뿔 스툴’. 옷걸이로도 쓸 수 있다.

◆자연을 담다

이민호(36)씨가 만든 '사슴 뿔 스툴(Antler Stool)'은 전시회의 대표 이미지 중 하나로 선정돼 벌써 화제다. 작은 간이 의자 형태의 이씨 작품엔 긴 나무 막대기가 좌판 위에 꽂혀 있다. 도자기로 만든 막대기 끝은 사슴 뿔처럼 가지가 난 모양이어서 옷걸이로도 쓰일 수 있다. "현대인의 안식처 역할을 하는 자연을 가구에 담았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권재민(35)씨의 조명 '크랙 볼 펜던트 램프'는 나무가 갈라진 걸 자연스럽게 뒀다. 변형 때문에 조명에 잘 쓰지 않는 나무를 오히려 세월의 흔적, 자연스러움을 보여주는 소재로 역이용한 것이다. 전시를 기획한 한국디자인진흥원 맹은주 국제협력팀장은 "최근 몇 년 사이 국제무대에서 한국 젊은 디자이너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면서 개막 전부터 이번에 참여하는 한국 디자이너들에 대한 문의가 오고 있다"며 "디자인 한류가 그저 허황한 꿈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 100% 디자인 런던

매년 9월에 열리는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 기간 중 펼쳐지는 주요 행사 중 하나. 인테리어 가구, 조명, 디자인 소품 등이 전시되는 디자인 박람회이다. 1995년 시작돼 올해로 17회를 맞았다.매년 40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2만여명의 디자인 관계자와 관람객이 찾는다. 디자인 페스티벌의 다른 전시가 주로 실험적 디자인에 초점을 둔 반면 ‘100% 디자인’전은 생산되고 있거나 생산 가능성이 있는 실용적인 디자인 작품 전시에 초점을 두고 있다.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9.21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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