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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할머니 집 같은 편안함, 덴마크 디자인의 힘

세계 최대 생활디자인 박람회 ‘메종앤오브제 파리’에서 주목

가구 디자이너 리켄 하겐의 벽걸이 램프 ‘올라(Orla)’. 목수였던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10년간 써온 램프에서 영감을 얻었다. ‘올라’는 할아버지의 이름이다.

투박한 듯하지만 선(線)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온기를 담은 나무에 대한 애정, 찻잔·램프 등 생활 소품에 장인정신을 담아내는 실용주의 전통은 그대로다. 달라진 것도 있다. 더 친근하고 익숙한 것을 디자인 모티프로 삼았다.

 9~13일 열린 세계 최대 생활디자인 박람회 ‘2011 메종앤오브제(Maison & Objet) 파리’에 선보인 덴마크 디자인 컬렉션이다. 올해 행사에선 현대 덴마크 디자인을 대표하는 26명의 디자이너들이 주목을 받았다. 추억의 창고를 뒤진 듯 과거에서 받은 영감을 활용해 참신한 것을 만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미국 디자인 전문지 패스트코디자인(www.fastcodesign.com)은 “과거에 덴마크에는 한스 베그너·핀 율·아르네 야콥센 등 위대한 장인이 있었지만 그 전통을 누가 잇고 있는지 불확실했다. 이번 메종앤오브제에서 덴마크는 공예의 전통이 살아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① 요나스 클라인의 스툴 ‘할머니’. ② 모트렌 에밀 엥겔의 ‘바우 와우 스툴’. ③ 요나스 클라인의 램프 ‘Four’. ④ 피아 룬트 한센이 빚은 그릇. 크리스탈 유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덴마크는 디자인 강국으로 유명하다. 오디오 명품 ‘뱅앤올룹슨’을 비롯, 아르네 야콥슨(가구), 로열 코펜하겐(도자기) 등 세계적인 브랜드를 자랑하고 있다. 지역·문화를 넘나드는 보편적 감성으로 21세기 디자인을 이끌고 있다.

 사실 현대 디자인에서 과거에 대한 향수(nostalgia)가 화두로 떠오른 지는 제법 됐다. 디지털의 차가운 세계에 대한 반발이자, 인간 감성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시도다.

 올해 덴마크 디자이너들은 작은 물건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더욱 파고들었다. 지극히 사적(私的)인 추억, 소소한 이야기가 담긴 물건에서 착안해 제품을 만들었다. 불확실성의 시대, 아날로그의 포근함에 대한 그리움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영감의 원천은 어린 시절=요즘 덴마크에서 기대주자로 꼽히는 가구 디자이너 요나스 클라인(37)이 만든 스툴은 할머니 집 대한 추억을 담았다. 제목도 ‘할머니(Granny)’다. 클라인은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디자이너로 상품 모두 직접 손으로 제작했다.

 리케 하겐(41)의 벽걸이 램프는 목수인 할아버지가 썼던 것에서 영감을 얻었다. 이번 컬렉션의 큐레이팅을 맡은 니나 톨스트럽(디자이너)은 본지와 e-메일 인터뷰에서 “덴마크의 디자인 전통은 단순함(Simplicity)과 기능성(Functionality), 그리고 퀄리티(Quality)다. 컬렉션은 매우 현대적인 외관이지만 테크닉 등에서 덴마크 디자인 전통과 뚜렷하게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나무의 온기를 담다=자연을 작품에 깊이 끌어들인 것도 특징이다. 자연적인 것을 재료로 쓰거나 모티프로 담아낸 것이다. 빅토리아 라데포게트(36)는 덴마크의 장인 전통과 놀이 감성의 결합을 시도했다. 오래된 장난감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나무 동물들’이 대표적이다. 거리의 차단막에 쓰이던 폐품 나무를 재활용한 것이다.

 나무 재료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다. 모르텐 에밀 엥겔(32)은 오크 나무를 이용해 개성이 넘치는 스툴을 만들었다.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시대를 타지 않고, 튼튼하고, 지속 가능한 작품을 추구하는 덴마크 디자인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장인정신으로 승부=덴마크공예디자인진흥원(danishcrafts.org)은 자국을 대표하는 디자인 컬렉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런던에서 활약하고 있는 디자이너 니나 톨스트럽에게 큐레이팅을 맡겼다. 세계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겠다는 뜻이다.

 톨스트럽은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보면 더 잘 보일 수도 있다. 런던에 있으니까 덴마크 디자인의 특성이 더 뚜렷하게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세상에 디자인 상품은 넘쳐난다. 관건은 10년, 20년이 지나도 살아남을 수 있느냐다. 사려 깊은 디자인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오래 살아남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메종앤오브제(Maison & Objet)=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생활디자인 무역 박람회. 매년 1월, 9월 두 차례에 걸쳐 열리며 이번이 16회째다. 전세계에서 10만 여명의 제조업, 유통업 관계자들이 몰려든다. 각국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자리이며, 판권 계약도 이뤄진다. ‘메종’과 ‘오브제’는 각각 프랑스어로 집과 물건을 뜻한다.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9.16 00:40 / 수정 2011.09.16 0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