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esign Trend/사람들

이노디자인 김영세 “눈이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진정한 디자인”

김영세 이노디자인 대표의 사무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의 집무공간은 어떠한 모습일까를 상상하던 기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창가에는 책상이 놓여있고 사무실 중앙에는 꽤 넓은 원형의 탁자가 위치했다. 그리고 조금은 딱딱하지만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의자들이 탁자를 빙 둘러싸고 있어 자유로운 회의가 가능하도록 돼 있었다.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연상시키는 조명과 각종 소품들, 그리고 사무실 한 켠을 차지한 책장이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전달하는 그곳에서 밝은 색 셔츠를 입고 안경너머로 강렬한 눈빛을 내뿜는 김 대표를 만났다. 그는 다음달 5, 6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헤럴드디자인포럼 2011’에 제 2세션 좌장 및 특별세션 인터뷰이로 참가한다.

▶마켓셰어(Market share)를 넘어 마인드셰어(Mind share)로 나아가라=“한국 대표 기업들의 디자인 수준은 제품만 보면 글로벌 경쟁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단한 발전입니다. 다만, 한 단계 더 도약하려면 전세계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주요 기업들의 디자인 수준을 평가해 달라는 첫 질문에 김 대표는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삼성전자, 현대ㆍ기아차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의 제품이 해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며 “대단히 성공적인 진입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국내 대표 기업들이 명실상부한 최고가 되려면 갈 길이 여전히 멀다고 했다. 브랜드 이미지와 고객 로열티 등을 기준으로 하면 노력할 부분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오래 전부터 ‘마인드셰어’라는 개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시장점유율을 의미하는 마켓셰어가 단순히 판매량을 끌어올리는 단계인 반면, 마인드셰어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특정 브랜드를 동경하도록 브랜드 자체의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김 대표가 언급한 마인드셰어는 제품이 지금 얼마나 팔리고 있느냐가 아니라 미래 고객의 마음에 어느 정도 브랜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뜻하는 말이다. ‘볼륨’보다 ‘밸류’를 중시하는 개념으로, 사람들이 제품을 사용하고 마케팅을 통해 직ㆍ간접적으로 접촉하는 과정에서 소비자들이 마음 속에서 특정 브랜드를 얼마나 동경하고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김 대표는 “장기적으로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마인드셰어를 높이려면 제품 디자인을 초월한 사용자 중심의, 제품과 사용자 접점에 대한 창의적인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면서 “시장이 아니라 고객 마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브랜드 정체성, 제품 디자인, 서비스 디자인 등 범위를 넓힌 모든 디자인이 글로벌화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애플이 성공한 것은 제품디자인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비즈니스모델까지 적절하게 디자인한 덕택”이라면서 “세계 최고 기업이 되려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단계까지 디자인의 범위를 넓혀서 이를 달성하려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용이 아니라 투자의 관점에서 디자인을 바라보라=우리나라 기업들은 최근까지만 해도 디자인을 단순히 제품을 포장하는 비용 차원에서 접근했다.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룬 산업화 시대의 분위기 탓이었다.

산업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을 오늘날 모습으로 이끈 가교역할을 한 산업화 시대에는 생산기지를 일구고 밤낮 없이 열심히 일해 양적인 성장을 꾀하는 것이 최고의 가치였다. 그리고 양적인 성장을 위해선 가격경쟁력이 절실했다. 알맹이가 아니라 껍데기인 디자인에 돈을 쏟는 것은 경영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알맹이도 물론 충실해야 하지만 알맹이를 소비자들이 편리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큰 경쟁력이 됐다.

“지금 세계에서 잘 팔리는 상품인 IT제품이나 자동차 등을 보면 핵심 경쟁요소는 창의성과 차별화입니다. 따라서 국내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산업화 시대의 경험을 살리는 것도 필요하지만 창의성을 발휘해 제품을 차별화할 수 있는 전략도 갖춰야 합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러한 디자인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여전히 디자인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다. 중소기업들이 디자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나서는 능력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경쟁력있는 제품을 만들면서도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김 대표는 한국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가 디자인이라고 믿는다. 기업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디자인을 통해 브랜드를 글로벌 시장에 충분히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디자인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합니다. 기업들은 디자인을 비용으로 생각하지만 제대로만 하면 오히려 이익이 됩니다. 디자인은 기업이 큰 이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수단이라는 점을 꼭 인식해야 합니다.”

▶디자인 산업의 전문성 제대로 인정하라=김 대표가 국내에서 유명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2000년 초 MBC가 방영한 ‘성공시대’ 출연이었다. 이전까지 그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산업디자이너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었지만, 국내에선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방송 이후 반응을 놀라웠습니다. 하루에 수천개 메일이 들어와 일일이 확인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죠.” 방송 직후 그는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목걸이 모양의 MP3플레이어인 아이리버 N10과 세계 최초 슬라이딩형 컴팩트인 라네즈 슬라이딩 팩트 등의 디자인을 주도하면서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요즘 그의 마음은 무겁다. 당시 기세라면 디자인은 이미 국내 주요 산업분야 중 하나로 자리를 잡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에는 금방 디자인산업이 국내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흐른 지금도 디자인 분야는 여전히 메인이 아니라 부수적인 산업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해 안타깝습니다.”

인터뷰 도중 김 대표는 국내 기업들이 전문 디자인 업체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전문 디자인 업체를 하나의 제품을 완성하기 위해 공동으로 작업하는 동등한 파트너로 대우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단순한 작업을 맡은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 기업들이 디자인의 전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는 더 있다. 생산업체가 특정 제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을 공모할 때 전문 디자인 업체로 하여금 시안을 첨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디자인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때문에 디자인 산업을 제대로 키워야 합니다. 디자인 산업이 제자리를 잡아야 디자이너들이 더욱 실력을 발휘하고, 이는 좋은 대우로 이어져 더 좋은 디자이너가 배출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기업과 국가의 이익에 기여하게 될 것입니다.”

다소 어려운 한국 내에서 디자인 산업을 선순환 구조로 만드는 것이 자신의 목표 중 하나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눈이 더욱 빛났다.

이충희 기자/hamlet@heraldm.com

이노디자인 김영세.
정희조 기자/checho@heraldm.com 110830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m.com

2011-09-20 07:56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