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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헤럴드 디자인포럼 2011>“위대한 디자인은 What 보다‘Why’를 추구한다”

‘ 헤럴드 디자인포럼’ 토론자…세계3대 자동차 디자이너 크리스 뱅글 인터뷰

특정제품 디자인
‘왜’에 대한 공유 없으면
노력 물거품 가능성 커
네모난 동그라미 그리듯
불가능한 것 고민할때
가장 행복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예술 전문가의 합작품
‘Art of Car Design’
‘디자인 독단’ 주제로
즐겁고 열띤토론 기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가 누구인가를 얘기할 때 꼭 포함되는 사람이 있다. 크리스 뱅글.

말 그대로 그는 세계 자동차 디자이너의 전설이다.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서 일을 하거나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이들이 가장 많이 꼽는 벤치마킹 대상이다. BMW 7시리즈 디자인으로 대표되는 그가 전세계 자동차 업계에 끼친 영향력은 그만큼 대단하다.

그가 10월 초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리는 ‘2011 헤럴드 디자인포럼’에 토론자이자 국내 디자인 전공 대학(원)생을 위한 특별세션 인터뷰이로 참가한다. 뱅글은 “특정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무엇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보다 지금 이슈를 ‘왜’ 디자인하는지를 우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행사에 앞서 e-메일을 통해 그를 만났다.

-당신은 한국에서 BMW 총괄 디자이너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올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로부터 동시에 영입제의를 받아 다시 이슈가 됐다. 삼성전자를 파트너로 정한 이유는?

▶난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자동차 업계를 떠나 디자인 컨설팅 업체인 크리스 뱅글 어소시이츠 SRL을 세웠다. 이 회사는 고객의 요구와 관련된 한계나 선입견이 없다. 나는 고객 요구의 다양성과 함께 일할 다방면 인재들의 재능을 환영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우리가 수행해야 할 주제의 복잡성 외에도 우리가 함께할 사람들은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도전적이어서 선택을 했다.

-당신은 자동차 외에 전자제품이나 보석 디자인에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제품을 디자인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가?

▶자동차에 국한되지 않고 제품 전체를 이야기하겠다. 제품 디자인 자체는 요즘 많은 잡지들이 이야기하는 ‘특정 기능을 갖춘 예술적 표현을 창조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어떻게 무엇을 디자인하느냐에 앞서 ‘왜’가 중요하다. 주어진 디자인을 우선 이해해야 한다. 왜 특정 제품을 디자인해야 하는지가 논의되고 공유되지 않으면 잘못된 판단을 따른 탓에 좋은 기회들이 사라지고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무엇이 당신을 디자이너가 되게 만들었는가?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가장 행복하다고 느꼈을 때는?

▶어릴 적부터 호기심이 많고 진실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성향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나는 또 그림을 그리고 작동하는 원리를 알기 위해 물건을 분해하는 것을 좋아했다. 비록 지능과 마찬가지로 창의성도 타고나는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 선천적으로 창의적이었다고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라기보다는 감성적인 쪽에 더 가까웠다. 무엇보다 내 주위에는 항상 나를 격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내 특성을 감안했을 때 내 열정을 표출하기에 디자이너가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가장 행복한 때는 네모난 동그라미를 그리듯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들의 해결방법을 고민할 때다.

-당신은 존경받는 디자이너이다. 위대한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떤 자질이나 성격이 꼭 필요한지.

▶‘위대한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라는 말은 예술과 건축 등을 다루는 여성잡지가 알아주고 칭찬해주는 디자이너를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만약 그렇게 정의한다면, 잡지가 대단치 않으면 디자이너는 대단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우리는 대부분 위대해지려면 비평가나 언론으로부터 인정이나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렇다면 디자이너가 위대해지는 것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의미가 좁다. 따라서 위대한 디자인이 탄생하려면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엄청난 고객을 만나면 대단한 디자인을 할 기회가 생긴다. 또 뛰어난 엔지니어를 만나거나 탁월한 마케팅 또는 홍보가 수반될 경우에도 대단한 디자인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러한 행운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마 디자인을 하기도 전에 굶어죽을 수도 있다.

위대한 디자인은 디자이너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머릿속에 위대한 디자인이 있다면 절반은 성공이다. 만약 그 디자인이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면 위대한 디자인이 될 가능성은 더 높다. 나는 위대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척박한 환경에서 이전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탁월한 디자인을 기적처럼 해낸 많은 위대한 디자이너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프로젝트를 함께 수행한 사람들을 외면하고 자신이 혼자 해낸 것처럼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들은 위대한 디자이너가 아니라 사실은 그 반대다.

‘2011 헤럴드 디자인포럼’에 토론자로 참가하는 크리스 뱅글은 “특정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있어 지금 이 이슈를 왜 디자인하는지를 우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헤럴드DB]

-지금껏 당신의 수많은 디자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

▶26년 동안 잘 유지돼온 결혼을 디자인한 것이라고 해도 되나. 절반은 내가 디자인한 것이니까.(웃음) 독일 뮌헨 피나코텍 현대미술관에 있는 ‘Art of Car Design’이 생각난다. 이것은 ‘왜, 어떻게, 무엇을’ 등의 모든 부분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유일한 작품이다. 만약 ‘누가’라는 부분마저 더해진다면 더욱 그렇다. 나를 포함한 디자이너들은 50일이 넘는 날들을 오로지 자동차 디자인에 대한 존경이라는 주제에 맞춰 밤낮 없이 26t이 넘는 대리석에 석고를 바르고 자동차 부품을 붙여 12m×14m 크기의 거대한 석상을 만들어냈다. 직접 가서 봐달라. 아니, 만져봐 달라. 그 석상은 피나코텍 현대미술관에 있는 작품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만질 수 있는 것이니 말이다. 다른 많은 위대한 디자인과 마찬가지로 그 작품도 함께 일한 수많은 뛰어난 디자이너와 기술자, 조각가, 예술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 대한 당신의 인상은? 한국적인 디자인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한국인들이 하고 있는 것이 바로 한국적인 것이다. 이는 디자인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예술 모두에 적용되는 철학이다. 결국 한국 디자이너들이 하는 것이 한국 디자인인 셈이다. 한국 디자이너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그들은 그들이 속한 조직과 하는 일이 너무 잘 동화돼 그들이 정확하게 어떠한 부분에 기여를 했는지 밝혀내기는 어렵다. 한국적인 디자인을 특정 제품에서 찾아보는 것이 어려운 이유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학생들의 작품은 특정 국가 디자인의 핵심을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재료가 된다. 가끔 한국에서 온 디자이너를 보면 비유에 가까우면서도 직설적으로 시각적인 어법을 표현하기를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나는 한국인, 나아가 아시아인들이 서양의 기하학적인 표현보다는 좀 더 복잡하고 서술적인 시각적 언어를 잘 수용했으면 한다.

-올해 열리는 헤럴드 디자인포럼이 좀 더 의미있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조언을 해달라.

▶전문가들이 참석자들과 청중들로 하여금 디자인의 독단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도록 과감하게 치고나가 줄 것을 요구했으면 좋겠다. 한 발 더 나아간다면 전문가에게 현재 디자인계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전제들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요구해 열띤 토론을 벌이게 하는 것도 생각했으면 한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즐거움을 모든 이들이 맛볼 수 있게 해달라.

<정리=이충희 기자 @hamlet1007> hamlet@heraldm.com 
2011-08-30 11:16 | 헤럴드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