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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시대에 맞는 디자인? 이젠 나누는 것

로저 피티오트 교수 인터뷰 (2011-08-11)
시대에 맞는 디자인? 이젠 나누는 것, Roger Pitiot 

무엇을 디자인하느냐 하는 장르도 중요하지만 어떤 시대에 디자인하느냐는 더 중요한 문제다. 디자이너라면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 속해있는 시대에 맞는 디자인을 펼쳐야한다는 말이다. 사람들의 취향은 사회의 흐름에 의해 형성되고 그러한 변화는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인터넷과 디지털 미디어의 존재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갖추지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그것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현대인의 패턴이 그것을 증명한다.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디자인 개념으로 ‘오픈소스’를 꼽는 로저 피티오트 교수. 그가 말하는 이 시대와 어울리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조현신 교수와의 대담을 통해 들어본다.

대담 | 조현신 국민대학교 디자인 연구소 d_페다고지 소장
진행 | 김소연 d_페다고지 연구원
에디터 | 최유진(yjchoi@jungle.co.kr)

오픈소스라는 개념의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으신데요. 구체적으로 오픈소스란 무엇이며 어떤 활동을 하시는지요?
오픈소스, 오픈디자인은 말 그대로 디자인을 오픈하는 것으로 현재 모든 곳에서 퍼지고 있습니다. 유저들이 웹사이트에서 디자인을 다운로드 받는 것이죠. 아이디어를 오픈하는 이러한 개념은 점차적으로 매우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저는 제 디자인을 무료로 주고,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것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는 것이죠. 제 사이트에 시계 디자인을 올려 둔 것이 있습니다. 디자인을 다운로드 받으면 9000원 정도에 직접 시계를 만들어 사용할 수도 있어요. 원하는 사람은 디자인된, 다 만들어진 시계 구입도 가능하고요. 이는 문화적 집중, 집합(convergence)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디자인과 기술의 집합 혹은 문화와 기술의 만남 정도로 말할 수 있겠죠. 이러한 컨셉을 발전시키면서 오픈소스와 관련된 사이트를 만들었고, 최근에는 open form에 대한 사이트도 오픈했습니다.

인터넷 상에서 오픈, 공유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cc)의 개념입니까?
그렇습니다. 저작권을 내가 갖는 것이 아니라 저작권의 부분을 합법적으로 공유하는 것입니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저작권, 카피라이트를 갖는다는 것은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발상이에요. 우리는 변화하고 있고, 또 변화되어야만 하니까요. 저작권이 존재해도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원래대로 하면 사진 한 장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러나 인터넷상에서 저작권은 적절히 적용되고 있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이는 누가 저작권을 붙인다 해도 보호받을 수 없다는 말이죠.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매우 아날로그적이며 디지털 세상에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세상은 바뀌었고, 우린 이런 사실을 받아들여야합니다. 매우 좋은 디자이너가 된다면 저작권을 보호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 디자인을 알기 때문이죠. 하지만 저작권을 보호하고자 자신의 디자인을 혼자서만 간직한다면, 그 디자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집니다. 스스로 유명해지는 것은 자신의 디자인을 널리 알리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오픈하는 것입니다. 산업시대 디자인은 기업의 후원을 받아 기업의 힘으로만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서는 개인 디자이너가 얼마든지 대중과 접촉하면서 디자인 컨셉과 디자인 생산 시스템을 공유하며 자신의 물건을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을 공유하고, 생산은 정보를 통해 각자의 장소에서 적절하게 진행하고. 재미있지 않은가요? 이런 의미에서 저는 공예가, 디지털 공예가입니다. 공예에서 디자인으로, 그 다음은 디지털 공예의 시댑니다.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디자인하고, 디지털 기술로 그것을 배포하는 것이죠. 거대 생산체제에 기대어 디자인과 생산이 고착되어 있는 관계는 이제 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창의성(creativity)를 구입하지 않아요. 단지 서비스를 구입할 뿐이지요. 오픈디자인에 의해 디자이너와 유저간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음악을 다운 받아서 무료로 듣지만, 매우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콘서트 또한 즐기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이와 같지요.  

패러다임의 변화와 컨셉, 모두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이러한 개념이 디자인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보십니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는 모든 것이 다릅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완전히 변했어요. 일하는 방식의 변화보다 마인드 세팅 자체가 중요합니다. 공룡이 사라진 것처럼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지 않습니까(웃음). 저는 무료 오픈, 거기에 중점을 둡니다. 디자인 코딩에 의한 재배치, 바로 형태를 만드는 것 대신에 코드를 대입시키는 것입니다. 디지털은 이러한 오픈 코드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해 탄생된 기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를 앞으로 코드 메이커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마 미래엔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컨셉이 닫혀 있는 개념이고 완결된 개념이라면, 코드는 해독자가 이미 디코딩, 즉 해석할 수 있는 체제를 갖고 있을 때 작동되는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오픈 즉 개방되지 않으면 무효한 개념이지요. 그런 면에서 코드는 오픈과 연결되어 있고, 디지털 제작, 생산과 연관되어 있으며 디지털은 실제(real)로 가는 길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발생적 디자인(generative design)이 완전히 끝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제작 및 제조는 디지털에서 기계로 옮겨져서 생산됩니다. 미래엔 아마 물건을 살 필요 없이 필요한 것이 있으면 다운로드 받아 프린트 하고, 그러면 가정에서 물건을 제작하거나 가까운 곳에서 만들고. 그렇게 사용이 가능할 것입니다. 3D 프린트만 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죠. 디자인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가 저작권을 갖는 것은 이미 끝났어요. 지금은 내가 디자인했다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이제 곧 사람들은 함께 협업(collaboration)할 것이고 나의 것(my stuff)이 아니라 우리의 것((our stuff)이 될 것입니다. 
 

로저 선생의 오픈 디자인 개념은 당신의 웹 사이트에서 자세히 알 수 있고 공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대와 홍익대에서는 이미 이 프로그램으로 수업을 많이 진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선생님의 개념을 좀 더 자세히 알고 공유하길 바랍니다. 이제 한국과의 인연, 한국의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해 보지요. 한국에는 어떤 계기로 오게 되었습니까?
KIDP와 연관이 있던 파리의 한 교수가 한국 디자인 기업과의 프로모션과 관련이 있었고, 많은 외국인 디자이너들을 초대하면서 저를 초대했습니다. 처음에 한국에 온 것은 그러한 계기에서였죠. 1994년 처음으로 한국에 왔고, 한국은 5회 가량 방문했었습니다. 그때 한국의 디자인 기업과 함께 일을 하게 됐죠.

한국에 와서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그 과정에 대해서 한국의 기업과 일한 경험, 결과에 대한 만족도 등을 설명해 주시지요.
2, 3주 정도 한국의 회사에 머물면서 한국의 디자이너들을 트레이닝하는 일을 했습니다. 유럽피안 디자인과 아메리칸 디자인에 대해 알려주는 것이었는데요. 결과는 실패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기업을 이해하지 못했고, 모티브를 얻지 못했습니다. 또한 한국의 기업은 짧은 시간에 많은 결과를 원했고, 우리들에게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젝트. 즉 당장 현실적으로 결과가 나타나는 프로젝트를 원했지요. 하지만 디자인은 그렇게 하나하나 금방 진행되는 것이 아닌 인식에서 출발하여 결과로 가는 복합적인 과정이고, 기업의 디자인은 더욱 그렇지요. 고려할 것이 많으니까요. 우리는 서로가 추구하는 목표 자체가 달랐던 셈입니다. 그들은 저렴한 가격에 유럽의, 미국의 디자이너를 데리고 왔다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2, 3주안에 결과를 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한 개념, 글로벌 디자인 등의 이야기를 하며 이러한 상황에 대해 여러 번 설명했지만, 소통은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의 잘못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1999년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후 1999년에 다시 한국에 와서 IDAS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고요. IDAS에 오게 된 것도 사실 우연이었습니다. 1년가량 베트남에 머물다 프랑스로 돌아가려고 했던 찰나에 IDAS에 있는 한 친구로부터 초대를 받아 한국에 오게 됐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IDAS를 방문했고, 때마침 진행되던 워크샵에 참여해달라는 부탁을 받아 잘 마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IDAS로부터 교수로 와줄 수 있냐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1994년이면 벌써 17년 전의 일인데요. 그때 처음 보았던 한국은 어땠나요? 약 20년 전에 제가 파리에 처음 갔을 때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로져 교수님도 그 당시 한국에 도착에서 많은 점에서 충격을 받으셨을텐데요.
그 때의 느낌은 한국은 전혀 다른 또 하나의 행성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해외에서 이미지로도 볼 수 없는 나라였기 때문에 아마 더 했을 것 같아요. 조 교수님이 파리에서 느꼈던 충격보다 더했을 것입니다. 1994년뿐 아니라 1999년에도 거리에서 외제차를 볼 수 없었죠. 세계 어느 도시를 여행해도 본국과 연관 지을 수 있는 그 무언가가 있는데요. 당시 한국엔 그러한 것이 전혀 없었습니다. 프랑스 차 뿐 아니라 독일 차도 없었고, 무언가 친근한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1994년에 4주간 한국에 머물면서 외국인을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같이 느껴졌죠.

그 당시 한국의 도시, 특히 서울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혼돈(chaotic) 상태였습니다. 명동엔 빌딩들도 많고 국제적인 도시로 보이지만 다른 곳에 가면 전혀 다른 모습이었으니까요.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여기와 저기가 너무나 다른, 그러나 그러한 장면이 모든 곳에서 느껴지는 그런 느낌. 빌딩과 길, 사인 등이 모두 비슷했어요. 인도가 없던 것도 신기했고요. 국제적인 장소를 제외하곤 거의 대부분의 길에 인도가 없었습니다. 특히 차가 거의 다니지 못하면서도 많은 집이 모여 있었던 달동네는 매우 재미있고 활력이 넘치는 리좀 같은 구조여서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차별화된 부분에 대해 어떤 식의 문화적 접근을 하면서 그 지역 주민들의 삶과 자부심을 높이느냐를 연구하는 것이 디자인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달동네는 외국인에게는 특별한 경험을 주지만 우리에게는 가난의 상징이고, 그래서 개발의 일 순위입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좋은 장소입니다. 저는 달동네가 서울의 영혼이라 생각해요. 흥미로운 부분이 있죠. 이런 정취를 잘 살리는 디자인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서울 공공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현재 서울은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요.
‘공공’은 지역사회에 속해있는 것이며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입니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장소와 공공서비스에 대해 매우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것’이면서 동시에 ‘나의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죠. 그러나 한국에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한국의 공공장소와 공공디자인은 정치인들의 PR을 위한 것으로 보이거든요. 디자인, 특히 공공디자인은 사람들을 위한 것인지 위신이나 특권(prestige)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서울의 공공디자인이 모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서울에 행해진 대부분의 것들이 그러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광화문에 대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콘크리트를 없애고 푸른 공간을 만들거나, 좀 더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현재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별로 없어 보여요. 아니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죠. 공공 디자인은 도시에 사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 말이죠. 도시는 시민들의 것이자 그들의 권리니까요.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디자이너들이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는 것처럼 정치인들도 자신이 한 것에 대한 업적을 남기고 싶을 거에요. 문화적인 것과도 연관되어 있고요. 무언가, 결과를 보여주어야만 한다는 것 말이죠.

부분적으로 동의를 합니다. 하지만 정치가 디자인을 이용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떤 정치적 권력이 자신의 과제를 디자인으로 삼았다면 그것을 잘 활용하면 막강한 힘이 되니 말입니다. 막강한 힘과 디자인의 결합, 혹은 디자이너의 결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업은 디자인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디자이너들은 위신이나 기업을 위한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해야 합니다. 즉 어쩌면 그 막강한 힘이 쓰여지는 경로와 목적에 대해서 민감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제가 대안적 디자인(alternative design)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시스템은 저보다 크고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의 옆에 있는 자율적인 어떤 것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해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에요. 한 대학에서 했던 그린디자인에 대한 강의가 떠오르는데요. 저는 그린디자인은 더 이상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린디자인인 존재한다면, 존재해야 한다면 디자인은 이미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죠. 도발적이긴 말이긴 하지만 이것이 제 방식입니다. 우리 모두는 자발적으로 각자의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본 한국의 현대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 주십시오. 한국의 현대 디자인, 어떻게 보십니까?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역사적인 이유인 것 같아요. 일본에는 아이덴티티가 있어요. 무엇이 일본 디자인인지 구분할 수 있고 묘사할 수 있죠. 한국의 현대 디자인에서 한국성을 못 느끼는 것은 미국문화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의 디자인은 스타일과 마케팅의 연장이기 때문에 시장이 원하는 것만 디자인합니다. 또한 디자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문제도 작용해요. 유럽인들에게 디자인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유럽에서 디자인은 특정한 느낌과 목적, 철학을 가지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디자인은 크리에이션 즉, 무언가를 창조하는 것으로만 대부분 해석되지만 제가 느끼는 유럽디자인과 한국 디자인의 가장 큰 차이는 철학이죠. 한국의 디자인에선 철학을 찾기 어렵습니다.

한국의 디자인에 철학이 없다고 해서 그냥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찾고 만들어야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저도 매일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동시에 미래의 디자이너인 학생들에게도 강조해요. 이러한 시스템에서 탈출해야합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불가능하니까요. 만일 미국인 디자이너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다른 답이 나올 것입니다. 한국과 미국 간의 공통점도 느낄 것이고. 한국 디자인의 목표는 미국 디자인처럼 ‘이익’이에요. 모든 디자인은 돈과 연결되죠. 그러나 디자이너의 마케팅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저는 좋은 디자인이란 timeless design이라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위해 디자인한 디터 람스를 예로 들 수 있겠죠. 한국의 소비에 대한 욕구도 디자인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배경은 소비를 자극하는 디자인이 각광받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는 디자이너의 잘못이기도 하고요. 그러한 개념을 퍼트리는 사람이 바로 디자이너이기 때문이죠. 즉 브랜딩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 디자인에서 브랜딩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특히나 앞으로의 물건을 명품 아니면 중국산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을 정도인데요.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는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라고 봅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브랜드의 개념을 이야기해 주시지요.
흔히 브랜드를 만들려면 스토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래된 브랜드에는 스토리가 아닌 히스토리, 역사가 있습니다. 브랜드는 진실해야 합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경쟁이 이루어지기 때문이죠. 제가 말하는 브랜드가 명품 브랜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의사를 찾아갈 때 정보를 찾고 믿음을 갖고 가는 것처럼 브랜드도 마찬가지에요. 진실하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하죠.

한국과 프랑스의 디자인 공정을 경험하면서 느낀 차이점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한국 회사를 위해 일들을 하면서 프랑스에서 일할 때와 매우 큰 차이점들을 느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디자이너를 대하는 인식의 차이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파서 의사를 찾아갈 땐 완전한 믿음을 갖고 가죠. 마찬가지로 디자이너에게 디자인을 맡길 땐 완전히 디자이너를 믿어야 합니다. 디자이너는 전문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업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설명해요. 한번은 디자인 결과에 대해 ‘내 와이프에게 묻고 답해주겠다’고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디자이너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은 의사의 말을 듣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의뢰하는 입장에서 해결책을 다 알고 그것을 조언해줄 정도이면 디자이너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면 되요. 마찬가지로 ‘컨셉’에 대한 개념도 다른데, 컨셉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direction)입니다. 스터디와 리서치를 하고 컨셉을 만드는 거에요. 그러나 한국에서는 컨셉을 마지막 결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프랑스에서 일을 할 땐 여러 가지를 디자인했지만 여러 컨셉을 제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오직 한 가지의 컨셉을 제안했을 뿐이죠. 문화적인 차이죠. 한국은 전체적인 그림이 아니라 제품 디자인의 디테일에 집중하니까요.

한국의 교육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너무 아카데믹하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요.
유럽의 디자인도 아카데믹합니다. 그러나 방법에 차이가 있어요. 디자인은 ‘하는 것’이죠. 무언가를 배울 땐 책을 보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습니다. 무엇을 보고, 듣고, 반드시 해보는 것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직접 경험 말입니다. 심지어 요리를 배울 때도 요리책을 보고 직접 해보아야 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항상 조리법만 물어요. 조리법을 배웠으면 직접 해봐야 하고, 그대로만 할 것이 아니라 거기에 무언가 새로운 시도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직접 해보지 않고, 즉 스스로의 실험을 거치지 않고 어디서 본 듯한 것들을 그럴듯하게 만드는 과정이 너무 일반적입니다. 한국의 학생들이 창의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 역시 문화 탓이죠.

저는 그것을 참고 문화(reference culture)라 말하는데요. 우리만의 텍스트북은 없고 외국의 것을 따르는 경향이죠. 한국 디자인의 태생적 비극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이러한 경향도 현재 30대 중반이하의 작가들 사이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한국적인 특성을 찾아가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고 있습니다.
아카데믹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책으로 배우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배울 수 있는 길은 직접 해보는 길 뿐입니다. 디자인 매니지먼트는 많은 책을 보아야하지만 디자인을 배울 때 책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최근 한국이 프랑스의 모델이 되기도 합니다. 교육적인 면, 경제적인 면에서 프랑스의 많은 사람들은 한국을 모델로 삼습니다. 많은 부분에서 한국은 성공적이죠. 그러나 그것은 숫자에 관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교육에 있어서 숫자와 관련되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학위 같은 것이 프랑스에선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다르죠. 제가 가르친 학생 중에는 박사학위를 3개나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학위를 특정한 곳에 쓰진 않는 것 같지만요. 교육에 있어서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얼마나 배웠느냐는거죠. 
 

디자인을 공부하는 우리나라 학생들의 특징이 있다면?
제자 중 매우 유능하고 똑똑한 인재가 있었는데 그 학생이 S 기업에 들어갔어요. 물론 그 기업은 연봉도 높고 여러 사람들이 들어가고자 곳이기도 하지만 전 개인적으로 양복입고 넥타이 착용하는 사람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유능한 학생이었는데 재능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한국의 대기업, 특히 S 기업은 제게 공장 같은 느낌을 줍니다. 한국의 대부분의 도큐먼트는 그 기업에 관한 것입니다. 중국의 공장을 연상시키기도 하고요. 저는 디자이너로서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그러한 기업에 가는 것을 권하고 싶지 않지만 많은 한국의 학생들은 그것을 꿈으로 삼고 있는 듯 하네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다고 생각하시나요?
매우 큰 시스템 같습니다. 그러한 대기업에서는 갖고 있는 재능을 모두 발휘하기 어렵죠. 좋은 연봉은 아파트를 사고, 자동차를 살 수 있게 해주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직업을 지속해야만 합니다. 제가 말하는 시스템은 이러한 의미입니다. 저는 아파트를 사고 차를 사는 것보다 인생을 즐기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자유를 간직하는 방식이자 이유이기도 합니다.

한국 디자인 교육이 어떠한 점을 갖춰야할까요?
배우기 위해선 무언가를 지워야만 합니다. 머리를 씻어내는 것, brain wash가 필요합니다. 적당히 비워낼 줄 알아야 해요. 이는 명확한 비전(clear vision)을 갖기 위해 꼭 필요한 사항이입니다.
또 한 가지는 배우고자 하는 것에 대한 열정입니다. 저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학생들의 열정 부족입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대해 끝이 없습니다. 오히려 정해진 수업이 끝나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죠. 하지만 학생들은 수업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즐길 수 있는 것은 제가 제 일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은 점수를 따기 위한 경쟁이 아니에요. 학위나 점수가 프랑스에서 중요하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죠. 프랑스에서는 정부로부터 승인받은 학위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제 삶 전체에서 저는 결코 제 학위를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유일하게 필요했던 곳이 한국이었죠. IDAS에 올 때요. 프랑스에서는 포토폴리오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당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거에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디자인, work이기 때문에 학위 증명서인 종이를 보고자 하지도 않습니다. 필립 스탁도 정규 교육을 모두 마치지 않았지만 그는 훌륭한 디자이너가 됐어요. 디자인은 열정 없이 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를 100% 디자인에 포함시켜야만 작용합니다. 저는 모토바이크를 즐기는데 운전을 할 때도 여전히 일을 합니다. 한 순간도 멈춘 적이 없습니다.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낀 점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이야기해 줄 수 있습니까? 일반적인 특성이 있다면.
재미있는 부분이 많아요. 신선하지만 동시에 너무 순진(naive)하지요. 그 순진함이 때론 부족함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순진함은 한국의 거대 시스템이 만들어 낸 부정적 특성이죠.
하지만 저는 한국에 대해 희망을 갖고 있어요. 일부 학생들은 매우 이해를 잘합니다. 이들이 바로 미래를 위한 씨앗이고, 저는 그 씨앗을 키우고 있습니다. 12년 동안 한국에 있으면서 많은 변화가 있었고, 많은 것을 보고 느꼈습니다. 한국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입니다. 빠른 것은 좋기도 하지만, 무언가를 항상 먼저 하고 생각은 나중에 하기 때문에 복구를 하기 힘든 일들이 먼저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프랑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고 행동이 너무 늦어요. 무언가를 결정하기가 매우 힘들죠. 그런 면에서 한국은 또한 매우 강한 강점을 가진 나라입니다.

미래의 디자이너이자 미래의 씨앗인 한국 학생들에게 해줄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아까도 말한 것처럼 시스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색을 드러내야 하는데 물론 이것이 매우 어렵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에 저항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한국이 배워야 할 점이기도 하고요. 한국사회에서 습관화되어 있는 부분은 너무 순진한 것,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디자인은 이러한 경향 속에서 진정한 창조와 사고의 힘을 발휘하는 분야이니까요.

로저 피티오트 교수는 1994년 KIDP의 프로젝트 ‘아시아의 모험’을 통해 한국과 첫 인연을 맺고 1999년 홍익대학교 IDAS의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살로몬 스키 부츠 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고전이 된 그는 VULLI, CARNAC, PUMA, TELSON 등의 디자인을 선보였다. 디자인 컨설턴트, 연구원, 교수 등으로 활동하며 프랑스의 Janus de l’industrie, 일본의 MITI Design prize 등 다수의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30년의 경력을 바탕으로 오픈디자인을 통해 디자인의 새로운 개념을 알리고 있으며 미래의 한국을 이끌 디자이너를 위한 교육과 함께 대안적 디자인에 대한 연구를 펼치고 있다. 그의 오픈 소스 디자인 작업과 세미나에 대해서는 다음의 사이트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www.roger.pitio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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