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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정호진의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에서] <14> 예술가와 비평가

‘타고난’ 비평가에 ‘만들어진’ 예술가… ‘무기력한’ 대중

“비평가는 타고납니다. 예술가는 만들어지죠. 그리고 대중은 설 자리를 잃은 지 오래입니다.” 이탈리아 미술역사가이자 비평가였던 로베르토 롱기(1890∼1970)의 표현을 인용하며 역시 이탈리아 비평가인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72)가 한 말이다. 비토리오 스가르비는 1991년 롱기에 관한 글에서 “오래된 그림은 시간에서 떨어져 나와 현재까지 보존되어온 과거의 한 조각과 같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우리의 시각과 취향에 맞춰 그것을 왜곡하고 변형하는 것이지만, 롱기는 그림 앞에 나서서 그림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하도록 해주었다. (…) 미술사는 이미 존재하는 것을 위한 게 아니라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위한 연구라고 볼 수 있는데, 롱기는 미지의 땅을 탐험해 새로운 작품을 발굴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같은 작품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찾아주었다”라고 썼다.

▲‘Frigidaire’에 실린 나체의 비평가,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 2011년 보니토 올리바는 그가 창시한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1981년과 1989년에 동일 잡지에 나체 사진을 실을 바 있다. 2011년에는 세 번째의 나체 사진으로 70세를 넘긴 것을 자축하고 트랜스 아방가르드가 성공적으로 30년을 채운 것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찍었다고 밝혔다.

롱기가 어떤 맥락에서 ‘비평가와 예술가의 차이’를 위와 같이 표현한지는 알 수 없지만 이를 인용한 보니토 올리바에게는 비평가의 역할을 최대로 부각시킬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1970년대 말 트랜스 아방가르드라는 용어를 만들어 이 경향에 속한 예술가를 전폭적으로 후원해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준 보니토 올리바는 스스로를 트랜스 아방가르드 ‘발명가’라고 지칭했다.

◀‘지중해식 사냥’(엔조 쿠키 작, 1979년).

“70년대부터는 비평가의 역할이 예술활동의 중심에 오게 된 거죠. 제가 카탈로그에 쓰이는 이름뿐이었던 비평가라는 허울에 육체를 선물했다고 볼 수 있어요. 제 활동을 통해서 전통적으로 주변역할을 맡아오던 연극의 엑스트라격인 비평가가 무대 중심으로 나오게 된 거예요.”

보니토 올리바는 자기 이름의 첫 글자를 딴 ABO라는 닉네임으로 스스로를 새로운 아이콘으로 브랜드화했고, 잡지 표지(1981년과 1989년)에 자신의 나체 사진을 내는 등 상당히 나르시스적인 행보를 보였다. 그는 30년이 지난 올해 3월 다시 같은 잡지의 표지를 위해 옷을 벗고 포즈를 취했다. 조르조 나폴리타노 이탈리아 공화국 대통령으로부터 문화훈장을 수훈한 지 몇 달이 채 되지 않아서이다.

이번에 게재된 사진은 앉아서 다리를 꼬고 있는 사진(표지)과 보르게제 미술관에 있는 카노바의 파올라 보나파르트 조각과 비슷한 포즈로 벌거벗은 채 소파에 길게 누워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써놓았다. “왕이나 독재자의 나체는 권력의 위선을 벗기기에 음란하지만 일반 사람의 나체는 그렇지 않다.”

하지만 보니토 올리바의 나체는 권위를 가진 비평가의 벗은 몸을 보고 누군가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라고 외치라고 재촉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말대로 현대미술에서는 작품의 권위와 대중의 인기는 예술가가 가질지 몰라도 권력은 비평가가 쥐고 있다.
 

▶엔조 쿠키,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등과 함께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을 이끌었던 작가 산드로 기아의 1978년 작 ‘화가’. 트랜스 아방가르드는 아르테 포베라로 대표되던 이탈리아 개념미술에 밀려 힘을 잃었던 구상회화를 다시 부흥시키려고 시도했던 운동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그림과 설치물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현대미술계에서 출판물과 TV 프로그램, 다큐멘터리, 강좌 등을 통해 예술가와 대중 사이를 이어주는 것도 비평가이다. 예술가의 성장 배경이나 오랜 세월에 걸친 연구과정을 알지 못하고는 작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관람자는 비평가가 내놓는 해석에 전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보나미가 보기에는 “트랜스 아방가르드는 경기 불황으로 가는 시기에 테크닉이 부족한 화가 몇 명을 그러모아 발족한 억지 운동일 뿐이며 (…) 미술사에 재채기 한 번 정도로 기록될 만큼 반짝하고 지나가는 정도의 미미한 경향”이었다. 2007년에 출판한 저서에서 보나미는 “트랜스 아방가르드 운동이 전성기에 달했을 때 아킬레 보니토 올리바는 성급하게 나체 사진을 찍어 월간지 표지로 올리며 성공을 자축했다. 그의 시도는 트랜스 아방가르드적이었을지 몰라도 초라한 나체처럼 더 이상 보여줄 것도 없는 이 운동의 미래를 내다보진 못했던 듯하다”고 깎아내렸다.

보나미는 이탈리아의 여느 비평가들처럼 미술 역사를 전공하지는 않았다. 대신 미술대학에서 수학한 후 화가로 출발해 미술전문 잡지 ‘플래시 아트’에 글을 쓰게 된 걸 계기로 전시 비평을 시작했다. 자연스레 이어진 전시기획을 통해 경력을 쌓아 미국 시카고 현대미술관의 시니어 큐레이터와 이탈리아 산드레토 레 레바우덴고 재단의 예술감독을 겸임하는 현재의 위치에 이르렀다. 이런 보나미를 염두에 둔 듯 보니토 올리바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비평가에게 있어 큐레이터는 미술계의 필리핀 도우미 같은 존재”라며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섞인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비평가들이 작품활동의 보조적인 위치에서 주도적인 위치로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본 작가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섬세하고 관조적인 정물화로 유명한 조르조 모란디는 생전에 자신의 절친한 친구이자 후원자였던 컬렉터 마티올리를 만날 때마다 불평 섞인 하소연을 해댔다. “도대체 비평가들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내가 그림을 그릴 때 생각해 본 적도 없는 것들을 제 의도였던 양 자신만만하게 제멋대로 글을 써댑니다.”

◀조르조 모란디의 1956년 작 ‘정물’. 평생을 이탈리아 볼로냐를 떠나지 않고 미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보냈던 작가. 그는 1936년부터 지속적으로 비슷한 소재의 정물을 분석하고 연구하였다. 다른 화가들과 달리 전시활동을 즐겨 하지 않았던 그는 당시 가장 권위 있던 비평가였던 로베르토 롱기, 카를로 아르강, 체사레 브란디의 지지를 받아 작품 제작을 계속할 수 있었다.

샤갈 역시 초현실주의를 지지하고 이끌었던 이론가들의 러브콜에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앙드레 브레통은 샤갈의 작품을 ‘은유의 예술’이라고 했고, 그에 앞서 아폴리네르는 샤갈의 그림을 꿈으로 가는 길의 입구와 같다고 찬사를 늘어놓았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이 그의 화풍에 환호하며 그를 운동에 끌어들이려 애썼지만 정작 샤갈 자신은 자신의 그림을 초현실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평가와 미술 역사가, 이론가들이 제각각 자신의 이론을 뒷받침할 만한 작품을 나열해 자신의 ‘스토리텔링(이야기하기)’을 하는 동안, 현실과 동떨어지고 현학적이기만 한 싸움에 지쳐 무기력해진 대중에 작가들이 미디어를 이용해 직접 소통하기를 시도하기도 했다. 영국에서 1969년 ‘노래하는 조각’ ‘살아 있는 조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길버트와 조지가 그 좋은 예이다. 그들은 이론 중심으로 미술을 설명하려는 엘리트주의에 반대해 예술가의 창작과정을 고스란히 담은 생활 자체를 예술이라고 생각했고, 자신들의 신체를 예술작품화했고 엽서나 포스터로 대량생산해 쉽게 확산시켰다.

비평가의 보호 아래 들어가기 위해 그들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작가들이 있는가 하면 그들의 혹독한 비평은 아랑곳하지 않고 작품활동을 계속하는 이들이 있다. 그중 소수는 상업성을 무기로 대중의 인기를 발판으로 경제적인 힘을 모으고, 대형 갤러리와 손을 잡아 새로운 미술계 권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데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이다.

보나미는 최근에 ‘자신이 피카소라고 생각하나―진짜 현대 미술작가를 가짜 작가에서 구분하는 방법’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책을 출간해 현대미술의 주역 스타들을 가리지 않고 혹독하게 비평했다. 하지만 정작 현재 유명 갤러리의 보호를 받는 고가의 작가 몇 명은 의도적으로 피해 갔다는 의심 섞인 비평을 받았다. 그의 주장이 들을 가치가 있는지는 ‘힘없는 대중’인 독자들이 평가해 주리라 믿는다.

조각·미술설치가(밀라노) hojin00@gmail.com
 
입력 2011.06.12 (일)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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