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라인, 수작업 셀 애니메이션의 진수

5년마다 열리는 우주 최고의 레이싱 경기 ‘레드 라인’의 막이 오른다. 겉으로는 불량해 보이지만 뜨거운 순정을 간직한 남자 JP(기무라 다쿠야 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레이싱 경기에서의 승리만을 꿈꾸는 청순한 소녀 소노시(아오이 유우 분), JP의 죽마고우이자 마피아와 결탁해 승부 조작을 주도하는 프리스비(아사노 다다노부 분)가 레이서로 나선다.
 
JP는 경기를 지속하면서 어린 시절 첫눈에 반했던 소노시를 향한 사랑과 점점 악에 물들어가는 친구에 대한 의리 사이에서 갈등한다. 중화기로 무장한 경쟁자들과 ‘레드 라인’ 개최를 막으려는 독재 국가 로보월드의 방해 공작이 쉴 새 없이 끼어들며 경기는 점점 예측 불허로 흘러간다.

일본 부동의 톱스타 기무라 다쿠야, 청순한 매력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폭넓은 팬층을 보유한 아오이 유우, 근사하고 독특한 스타일로 일본 영화계의 조니 뎁으로 군림해 온 아사노 다다노부.

메인 스트림과 독립 영화계를 아우르는 세 명의 스타를 한자리에 모았다는 것만으로도 ‘레드 라인’의 파워는 충분하다. 이에 더해 7년 동안 모두 손으로 그려낸 10만 장의 작화를 통해 드물게도 2D 셀 애니메이션의 정수를 보여준다. 만일 ‘레드 라인’이 최근의 추세에 따른 3D CG 애니메이션이었다면 선명한 깊이감과 현기증 나는 비주얼을 곁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2D 애니메이션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감을 성공적으로 묘사한 것과 함께 레이싱 속도를 높일수록 점점 더 기압과 풍력으로 근육이 일그러지고 눈의 실핏줄이 터지는 등 외모에 생기는 점진적 변화들은 수작업을 통해 더욱 생생한 상상력으로 되살아난다. 또한 미국 그래픽 노블을 연상시키는 선 굵고 화려한 그림체와 성적인 매력을 물씬 암시하는 스타일 역시 오랜만의 성인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제몫을 다한다.

‘레드 라인’의 모든 요소들은 오로지 레이싱 경기에서의 짜릿한 스릴과 통쾌한 승리라는 목표를 향해서만 질주한다. ‘카트라이더’의 성인 버전 102분짜리 레이싱 게임을 거대 스크린으로 즐긴 것 같다는 만족감 이상의 것을 원한다면 ‘레드 라인’을 다소 유치하게 느낄 수도 있다. 성인 애니메이션 특유의 마니악한 감성, 혹은 자동차와 스피드에 보통 이상의 흥미를 갖고 있다면 더없이 만족스러운 선택일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가 각본을 쓴 SF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애니매트릭스’ 중 ‘월드 레코드’ 에피소드를 맡아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고이케 다케시가 연출을 맡았고, ‘시간을 달리는 소녀’, ‘파프리카’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제작사 매드하우스가 심혈을 기울여 완성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알 수 있는 화제작.

김용언 씨네21 기자 eun@cine21.com 
입력일시 : 2011-05-16 17:30 한국경제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