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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환경

"LA공항 디자인, 무조건 인천공항처럼" LA시장이 부탁

'세계 공항의 교과서' 인천공항 설계자 펜트레스 국내 언론 첫 인터뷰
그동안 설계한 공항 다 합치면 넓이 50억㎡ ·총 14조원 규모…
인천공항이 한국적이지 않다고? 한옥의 부드러운 처마線 보고 '저거다' 싶어 만들었다.

인천국제공항이 문을 연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6년 연속 국제공항협의회(ACI)로부터 '세계 최우수 공항'에 선정되는 등 '명품 공항'으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의 위치에 오르는 데에는 세계 최고의 서비스라는 소프트웨어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그 전에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하드웨어가 없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영예다.

인천공항의 설계자인 미국 건축가 커티스 펜트레스(Fentress·64)씨를 2일 한국 언론 가운데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그는 홍익대 특별강연과 업무차 전날 밤 한국을 찾았다.

▲ 인천공항 설계자 펜트레스씨는 "인천공항은 '100+α점'"이라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펜트레스씨는 미국의 덴버 국제공항, 새너제이 국제공항, LA 신(新)국제공항(건설 중) 등을 설계한 공항 설계 전문가다. 지난해 미국건축가협회(AIA)로부터 공공건축 분야에서 가장 영예로운 상인 토머스 제퍼슨 상을 받기도 했다. 지금까지 그가 설계한 공항을 다 합치면 넓이 50억㎡, 총 비용 130억달러(약 14조원)에 이른다.

―인천공항이 세계적 공항이 됐다. 감회가 어떤가.

"2년 전 LA 국제공항이 '최악의 공항'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급해진 안토니오 빌라라이고사 LA 시장이 나를 부르더니 '한국에 다녀왔는데 인천공항이 전 세계 공항 중에 제일 좋더라. 누가 만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무조건 인천공항처럼 만들어달라'고 하더라. 내가 인천공항을 만든 사람인지 몰랐던 거였다. 새너제이 국제공항, 시애틀 국제공항을 디자인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제 인천공항은 세계 공항 디자인의 교과서가 됐다. 내가 점수를 매긴다면 100점 만점에 100+α점이라도 주고 싶다."(웃음)
 

▲ 지붕에서 바라본 인천공항 터미널 전경. 터미널 지붕도 완만한 곡선이고 지붕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되는 버스정류장 캐노피(덮개)도 잔잔한 물결 모양이다. 펜트레스씨는“전체적으로 물이 흘러가는 듯한 느낌으로 인천공항을 디자인했다”고 했다. /펜트레스 아키텍츠 제공

―디자인적 관점에서 인천공항의 가장 큰 장점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는 게 미덕이다. 매우 큰 건물인데 그렇게 스케일이 크다는 인상을 안 준다. 유리 천장을 통해 외부 빛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탑승 대기 공간은 마치 노천카페의 캐노피(천막 덮개) 아래처럼 만들어 편안한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먼 여행을 떠나는 여행객들이 보호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반면 홍콩이나 베이징 공항은 너무 커서 부담스럽고 두바이 공항은 너무 번쩍거려서 불편하다."

―인천공항 디자인이 한국적이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사실 내 관점에선 지극히 한국적인 건물이다. 설계를 하기 전에 2주 정도 서울의 고궁과 박물관을 둘러보고 한국 음식도 많이 먹었다. 한 박물관에서 마침 초가집·기와집 등 한국 가옥의 발전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를 하더라. 두 지점을 고정하고 새끼줄을 느슨하게 연결해 한옥의 부드러운 처마 선을 만드는 걸 보고 저거다 싶었다. 인천공항 지붕 위쪽을 보면 하얀 기둥 구조물이 있는데 그 원리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한국의 선(線)'에 중점을 뒀다."

―다른 한국적 요소들도 있나.

"사찰을 갔는데 온돌방의 매끈한 방바닥과 부드러운 기둥이 인상적이었다. 이를 반영해 공항 바닥을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만들었고 여기저기 높다란 기둥을 많이 썼다. 공항 1층 로비의 소나무는 한국 정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일본 정원은 멀리서 감상하는 용도지만 한국 정원은 거닐 수 있는 개방된 공간이라는 점이 공항과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 덴버 공항 모습. 뒤로 보이는 로키 산맥의 능선 형태를 딴 천막 지붕으로 만들었다. 인디언이 살던 천막집‘티피’같기도 하다. /펜트레스 아키텍츠 제공

―버스 정류장 위의 곡선 지붕이 이색적이라는 평이 많다.

"물의 유연한 흐름을 생각했다. 공항 지붕도 완곡한 곡선이고 주차장 위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디자인했다. 마치 물이 흘러들어가듯 자연스럽게 비행기 탑승구까지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줬다. 또 버스가 많아 답답할 수 있어 버스 승·하차장과 공항 건물 사이에 틈을 주고 나무를 심어 공기가 잘 드나들도록 했다."

―다른 공항들과 차별을 둔 부분은.

"인천공항은 참 '똑똑한' 공항이다. 대부분 공항은 항공사 이용료와 공항세 등으로 수익을 얻지만 인천공항은 처음부터 상업 공간의 임대 수익에 초점을 맞췄다. 수익이 훨씬 큰 거다. 발상의 전환이었다. 드웰 타임(dwell time·공항에서의 체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항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 하나가 쇼핑하기 좋은 공항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면세점의 브랜드 간판이 한눈에 잘 보이게 한다든지 쇼핑 공간 안쪽까지 훤하게 보이게 설계하는 식이었다. 인천공항 이후 많은 공항이 이를 벤치마킹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있긴 하지만 일급비밀이다. 만약 운 좋으면 새로 지어질 제2여객터미널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다(그는 현재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설계 공모에 참여하고 있다)." 강연 문의 (02)3407-1245


▲ 일 오전 덕수궁 옆길에서 공항 건축가 커티스 펜트레스가 자신의 건축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김미리 기자 miri@chosun.com
기사입력 : 2011.05.0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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