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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컬처프론티어] 6월 개막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예술감독 윤재갑

亞미술분야 독보적 인물… "그가 찍은 작가는 반드시 성공"

글ㆍ사진=조상인기자 ccsi@sed.co.kr

한국미술 알기위해 中·印서 공부
현지 스타 작가들과 친분 쌓기도

정연두·이형구·권오상등 발굴
신진들 개인전 열어 성공시켜

"국내시장 여전히 서양 작품 위주
미술관·컬렉터 한국작가에 관심을"

지난해 8월,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한국관 전시의 예술감독인 커미셔너를 뽑는 선정위원단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모였다. 브라질 상파울루, 미국 휘트니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로 손꼽히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행사이자 각축장인 만큼 한국관은 한국 미술의 현재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막중한 책임감을 가진 심의위원들에겐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 "이제껏 우리가 너무 서구만 바라봤다. 작가는 서구 기반이고 커미셔너는 하나같이 미국 유학파였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는 아시아로 눈을 돌려 균형감을 찾아야 할 때다. " 이 같은 동의 아래 선정된 이가 윤재갑(43ㆍ사진) 큐레이터다. 그는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중국근현대미술사, 인도 타고르대학에서 인도미술사를 공부한 아시아 미술의 독보적인 인물이다. 오는 6월4일 개막하는 베니스비엔날레 전시 준비를 비롯한 다양한 업무로 유럽과 일본, 중국을 바삐 오가는 '미술계의 노마드'를 만났다.

◇한국을 알려면 중국, 인도 알아야=당초 미대에 가고 싶었던 윤 큐레이터는 재수시절 마음을 돌려 홍익대 예술학과에 입학했다. "1988년에 입학해 '재미있게' 학교를 다녔는데 한국미술을 알려면 중국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1995년 졸업식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중국에 갔습니다. 우선 베이징 제2외국어대학에 등록해 중국어부터 배웠고요.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베이징 외곽 송주앙에 '통다오(通道)'라는 카페 겸 술집을 열었어요. 길이 통한다는 뜻의 '통도'는 문(門)이라는 의미도 있는데 이곳이 제 삶의 새 문이 됐습니다. 쩡판즈, 왕강이, 팡리쥔, 웨민준, 쩡하오, 양샤오빈, 리우웨이. 나중에 합류한 장샤오강까지. 문화혁명 이후 세대로 지금 중국 현대미술의 핵심이 된 이들이 매일 찾아와 예술을 고민했어요. 이들은 가난한 화가였고 그나마 나는 사장이었으니 공짜 맥주를 주곤 했죠. "

송주앙 예술지구는 천안문사태 이후 원명원에서 작업하던 작가들이 대거 이주해 모여 살던 곳이다. 초라하던 그 화가들이 지금은 경매에서 수십억원에 작품이 낙찰되는 대스타가 됐다. 윤 큐레이터는 "작품이 워낙 힘이 있고 좋아서 잘 될 거라고 했었는데 기대 이상"이라며 기뻐했다.

하지만 가난한 반체제 중국 작가들이 자주 드나드니까 공안의 압박이 심해졌다.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97년에 인도로 떠났다.

"중국에서 공부해 보니 불교ㆍ수학ㆍ철학ㆍ무술 등 모든 문화의 근거가 인도에서 왔더군요. 중국을 알고 보니 이제 인도를 알아야겠다 싶어 떠났죠. 그런데 그 문화적 폭과 깊이, 규모와 파괴력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

중국에서 쌓은 인맥 덕분에 인도의 사회운동가, 철학자, 예술대학 교수, 언론인 등 또래 지식인들을 만나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그저 유학생이었으면 만나지도 못했을 현지 작가를 소개받았죠. '인도의 데미안 허스트'가 된 수보드 굽타와 그 부인 레나 사이니 칼랏을 비롯해 지티시 칼랏, 바라티 커 같은 작가를 만났습니다. 탈식민주의적 관점을 가진 평론가 기타 카푸르(Geera Kapur)를 만난 것도 큰 수확이었지요.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는 스타에, 부자가 됐지만 여전히 막역한 사이죠."

2000년 6월 귀국한 뒤 윤 큐레이터가 몸담았던 아트싸이드가 중국현대미술에, 아라리오갤러리가 인도 현대미술에 발군의 실력을 보이게 된 데는 이 같은 그의 경험이 작용했다.

◇그가 '된다'는 작가는 반드시 성공=윤재갑의 전성기는 2002~2007년 '대안공간 루프'의 디렉터 시절이다. 서진석 대표와 둘이서 상업적 갤러리와 차별화를 표방하며 저력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했다. 그의 눈에 띄어 첫 개인전을 연 작가들은 모조리 성공했다. 뉴욕 MoMA가 작품을 사 간 것으로 유명한 미디어아티스트 정연두,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대표작가인 조각가 이형구, 영국 그룹 킨(Kean)이 앨범 재킷을 의뢰한 '사진조각'의 작가 권오상을 비롯해 정수진, 함경아, 함양아, 김기라 등 이름만으로 힘을 갖는 작가들이다. 물론 올해 베니스의 한국관 대표작가인 이용백도 이 때 눈여겨 본 인물이다.

"작가의 그림을 보면 기가 느껴져요. 그림이 자석이라면 내가 쇠처럼, 자기장에 들러붙는 그런 기운이 느껴지는데 그런 작가가 말 그대로 '됩니다'. 좋은 작가는 수도승과 비슷해 끊임없이 자기반성과 비워내는 과정을 갖습니다. 그 과정에 자기 파괴와 엉뚱한 행동이 있지만 그런 작가적 소신이 좋은 작품을 낳죠. 한국작가들은 성실성과 재능이 탁월합니다. "

◇중국미술 거품 없고 인도미술 저력 있다=중국 미술시장에 정통한 윤 큐레이터는 "중국 현대미술의 거품론이 이제는 제거됐다. 안심해도 된다"고 말한다. 그는 "2007년 미술시장 광풍 때는 근대화가 제백석, 오창석보다 현대화가 장샤오강이 더 비싼 역삼각형의 시장구조였는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서양 컬렉터들이 빠져나가면서 중국인 스스로 가치를 재평가했고 이제는 안정된 삼각형을 이뤘다"며 "현대미술이 20% 미만이고 80%이상이 골동ㆍ고미술ㆍ근대가 차지하고 있는 만큼 중국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드러난다"고 분석했다.

인도미술은 중국 이상의 힘이 있다. 이머징 마켓으로 경제성장을 이룬 인도의 미술시장은 최근 10년 사이 30배나 커졌다. "장구한 역사를 가진 인도작가 역시 중국만큼이나 기(氣)가 셉니다. 게다가 인문학이 워낙 탄탄하니 세계 미술계의 기반이 되는 철학적 개념도 인도가 제공하는 분위기입니다. 서구에서는 무섭게 성장하는 중국의 대항마 격으로 같은 영어권인 인도 미술을 키워 중국을 견제하는 만큼 인도미술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미술에 애정 가져야=아시아미술의 강세에 한국이 뒤지지 않도록 윤씨는 우리미술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당부했다. "미술품 경매시장은 중국이 세계 1위에 올랐지만 전체 미술시장 규모나 영향력은 여전히 미국이 앞섭니다. 200년 남짓한 역사의 미국은 유럽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이 있었죠. 하지만 MoMA나 메트로폴리탄이 유럽작품만 수집할 때 과감히 미국 현대작가만을 수집한 '휘트니미술관'에 힘입어 오늘날 전후 서양미술의 핵심이 됐습니다. 한국미술도 이 같은 역할을 할 미술관과 컬렉터가 있어야 뛰어난 우리 작가를 키울 수 있습니다. "

또한 윤 큐레이터는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하는 한국 미술시장의 현실도 지적했다. 서양 미술품 중심이 문제라는 얘기다. "드러난 한국미술시장의 규모가 5,000억원 정도라는데 대부분 유럽과 미국의 작품을 사는 비용입니다. 결국 외국으로 나가는 돈이니 한국 미술계에 들어오는 돈은 그 중 1,000억원 정도나 될까요? 즉 한국은 서구미술시장에 포함된 것이지 독자적인 미술시장을 이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미술관과 컬렉터 개인들이 한국작가 컬렉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문화가 국력에 비례하진 않지만 국력이 더 성장하는 데는 문화가 필수니까요. 백남준 선생부터 젊은 화가들까지 우리가 아껴야 작가도, 작품도 지킬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1/04/27 18:53:17 수정시간 : 2011/04/27 18:5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