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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기타

[데스크 칼럼] 디자인? 디자이너!

우현석 생활산업부장 hnskwoo@sed.co.kr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좋은 상품이라면 일단 눈길을 끌어야 한다. 그것이 떡이건 자동차건 아니면 의복이건 예외는 없다. 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다. 우리가 가난하고 못 먹던 시절 디자인은 사치였다. '그저 물건만 좋으면 됐지. 디자인은 무슨…'이라는 정서가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먹고살 만해지면서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었다. '같은 값이면 보기에 좋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더니 '이제는 어쨌든 모양이 예뻐야 한다'는 생각이 대중 정서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 같은 정서의 확산은 멘탈리티 진전과 궤를 같이 한다.

예뻐야 더 잘 팔리는 시대

아울러 모든 일에는 절차와 단계가 있다. 물건을 판매하고 싶으면 일단 소비자의 눈길을 끌고 봐야 한다. 눈길도 끌지 못하면서 구매 욕구를 자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나아가는 기업들은 상품의 디자인에 사활을 건다.

그렇다면 기업에서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들의 위상은 과연 높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그들의 위치는 아직도 불안하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기업의 오너나 최고경영자(CEO)들의 디자인에 대한 인식은 개선됐지만 기업이라는 도시 안에서 디자이너들은 아직도 2등 시민이다.

오래된 일이지만 실제로 한 휴대폰 제조업체의 CEO는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신제품을 디자이너 앞에서 집어 던져 버리거나 꺾어 버리기도 했다. 한때 주인이 없었던 자동차업체에서는 신형차 디자인의 결제를 올리면 임원들 마다 한군데씩 고쳐서 생판 다른 차가 돼서 나오더니 결국 망해버렸다. 또 다른 완성차업체에서는 오너가 손을 댄 디자인 때문에 바이어가 인수를 거부한 적도 있었다. 웃지 못할 이런 일들은 결국 디자이너를 우습게 아는 기업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업의 높은 분들 중에는 자신이 전공을 하지는 않았지만 디자인에 안목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디자인에 손 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제품 디자인에 참견을 하고 디자인을 과감히 고쳐주며 훈수를 두기도 한다.

'무식한 자, 겁 없다'는 말은 그래서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프로들은 자기 일에 관한 한 소심한 법이다. 자기가 하는 일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자기가 내리는 결정에 파급효과를 예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은 여러 번 생각하고 고민하게 마련이다.

신문사의 한 부서를 맡고 지면을 책임지다 보니 한 주에도 몇 차례씩 지면 레이아웃에 대해 디자인팀 기자들과 의논할 일이 생긴다. 그때마다 기자는 디자이너들의 신중함과 진지함에 주목한다. 반짝했던 기자의 레이아웃 아이디어를 디자이너들은 두 번 세 번 곱씹고 이 각도에서 저 각도로 뒤틀고 다시 그려 본다. 디자이너들은 수많은 시도 중 오직 하나를 택한다. 그때마다 기자는 스스로의 부박(浮薄)함이 민망해 고개를 들 수가 없다.

CEO들 디자인 안목 더 키워야

우리나라 제조업체들이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 승리하려면 이제는 디자이너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위상 역시 높아져야 함은 물론이다. 이제 의복이건 전자제품이건 아니면 자동차건 간에 국산제품 품질은 세계 정상권에 근접했다. 아마도 승부는 디자인과 같은 소프트 파워에서 결정이 날 것이다. 디자이너들의 진지함과 소심함을 존중하는 오너와 CEO가 많아지는 날을 기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1/04/25 18:1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