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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아 눈부신 자개 한복 그림이여

'아 눈부신 자개 한복 그림이여, 이래도 쫓겨날까?'
김덕용 <시간을 담다>전, 갤러리현대 강남, 4.20-5.15

자개로 지은 한복이 그림의 형태로 눈부신 자태를 드러냈다. 그 자개한복 그림(<자운영2>, 바로 위 작품)은 김덕용 작가에 의해 발명되었다. 소녀가 입은 자주고름 옥색치마가 옷감이 아닌 영롱하게 빛나는 자개로 표현된 것이다. 이 자개로 표현된, 동그랗게 펼쳐진 옥색치마는 그 중심에 푸른빛이 감돌면서 웅숭깊은 바다를 연상케 하고, 가장자리로 나오면서 투명한 듯 엷은 빛깔은 물 속 모래알이 비치는 해변 같다. 원으로 된 치마는 춤을 추듯이 율동감이 느껴진다. 연못의 소가 소용돌이 치듯 물맴의 격렬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동심원이 퍼져나가듯 은은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격렬함의 물맴은 식물성의 보릿대가 얼키고 설키며 춤추는듯하여 더욱 생동감이 넘치는 것이다. 소용돌이 속에 다소곳이 손을 포개고 있는 소녀의 자태는 수중발레 무용수의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움 이상이다. 또한 드가의 작품 <프리마돈나(무대 위의 무희)>에 등장하는 무희의 아름다움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독특한 멋을 풍긴다. 서양 무희 발레복의 묘미가 화사함에 있다면, 우리 한복은 웅숭깊다. 서양 무희의 몸동작이 관능적이라면 우리 소녀의 자태는 단아하다.


이토록 아름다운 자태의 한복이 홀대받는 현실이 안타깝다. 얼마전 한국의 한 유명호텔에서 한복차림의 여성이 한복을 입고 뷔페식당에 입장했다는 이유로 쫓겨났다. 쫓겨난 이 여성은 공교롭게도 유명한 한복디자이너였다. 당사자의 문제제기로 여론이 들끓자, 이 호텔 대표가 당사자를 찾아가 사과를 했다. 이 호텔은 사건발생 나흘째인 17일 해명 보도자료를 내고, 한복을 착용하면 여러 불편이 초래될 가능성이 있는 뷔페식당에서만 고객에게 주의를 환기시켰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호텔 내 다른 시설에서는 한복에 대한 제한이 전혀 없는데 호텔의 정책으로 모든 시설에서 한복 착용이 금지되어 있는 것처럼 왜곡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그러면서 이런 문제에 대해 고객의 안전을 위해 안내를 한다는 것이 설명이 미숙해 사건을 키웠다며, 임직원 교육 미흡에 책임을 통감하며 반성, 자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객을 상대로 가장 세심한 배려가 요구되는 서비스업 분야에서 여론의 뭇매를 맞고서야 그 심각성을 알아차리는 불감증은 어떤 조직문화에서 비롯된 것인지 궁금할 뿐이다. 카프카의 <법 앞에서>에 나오는 문지기가 떠오른다. 시골 사림이 소송을 하려고 법원을 찾아갔다가 법원 앞 문지기에게 막혀 소송도 해보지 못하고 한평생 늙어버렸다는.

김덕용 작가는 된장이나 간장처럼 곰삭은 맛, 때묻고 묵은 맛의 멋을 추구한다. 그는 이 멋을 자개에서 찾았고, 나무의 결에서 찾았다. 그의 작업은 나무결이 주는 운동성과 시간성을 충분히 살렸다. 즉 '조용한 움직임'인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구름에 달 가듯이' '달항하리에 구름이 흐르듯이' 느낌이 나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결- 달이 흐르다>연작 6점은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하현달, 그믐달의 운치를 볼 수 있다. 작가는 군대간 아들을 그리며 이 작품을 그렸다. 이 작품은 또한 백남준 작가의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를 연상시킨다. 백남준의 이 작품은 세계 12개 지점의 달을 동시에 영상에 담아, 공간은 다르지만 동시성을 느낄 수 있다. 백남준의 작품에서는 '다양성 속 조화'를 느낄 수 있다면, 김덕용의 작품에서는 달이 차고 이우는 것을 한 곳에서 느껴봄으로써, '시간의 조용한 흐름'을 감지할 수 있다. 달 항아리를 다룬 <결-달을 품다><달항아리>연작은 물레에 올려진 달 항아리가 눈 앞에서 돌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그 결이 주는 은은한 멋에 취하게 된다.

나무의 결은 김덕용의 작품에서 계속 확장된다. 매미 날개 아래 배치된 나무의 결은 투명하고 날렵한 매미 날개를 작품 가장자리는 물론 그 바깥까지 퍼져가게 하는 듯하다. 헤엄치는 오리 그림은 나무의 결이 물결의 파장으로 살아나 속도감이 느껴진다. 김덕용과 소재가 만나면 모든 작품에 전통적인 정취가 묻어난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달팽이의 움직임을 살펴보는 개, 참새와 친구삼자고 할 듯 정겹게 쳐다보는 개, 누군가를 그리워하듯 먼산을 응시하는 개. 개가 사람같다. 나무결이 흐르는 반가사유(생각하는 부처)상에는 천년의 미소가 흐른다. 대밭 무성한 기와집 풍경과 시골집 뒤안의 나무숲 풍경은 그림이지만, 그 앞에 서면 대밭의 소쇄함과 뒤안의 서늘함이 고스란히 전달된다.

김덕용의 작품에는 여성이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의 이미지로, 한복입은 고아한 자태의 여인은 작가가 어렸을 적 색깔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어머니를 떠올리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가야금을 타는 자태 고운 처녀, 문 기둥에서 기대어 서서 님을 기다리는 듯한 봄처녀, 창가의 꽃밭에서 노니는 참새를 응시하는 어린 소녀. 한국의 남성들이 보고 싶어하는 전통적 미인의 형상을 창조해냈다. 아 그 차분한 시선과 곱게 다문 입. 그 입은 다물고 있지만 하고픈 말을 다 담고 있다. 부처의 눈이 감긴 듯하지만 모든 것을 보고 있듯이.

갤러리현대 강남에서 열리는 김덕용의 <시간을 담다>전에는 신작 50여점이 선보인다.

전시기간:4.20-5.15
전시문의:갤러리현대 강남(02-519-0800)

great@cbs.co.kr
2011-04-16 09:13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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