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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사람들

[돈 노먼] 디자인 사고: 유용한 신화

[Don Norman] Design Thinking: A Useful Myth
[돈 노먼] 디자인 사고: 유용한 신화
 

글. 돈 노먼(Don Norman)


하나의 위력적인 신화가 지상에서 솟아나, 경제와 학계, 정부 부처에까지 스며들고 있다. 그만큼 파급력이 크며 설득력도 높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해롭지 않다고는 해도, 그것은 거짓된 신화이다. 그 신화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디자이너들이 뭔가 신비하고 창조적인 사고 과정을 가지고 있으며, 창의적이고 획기적인 사고에 있어 디자이너들은 그 어떤 이들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러한 신화는 허튼소리에 가깝지만,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증거가 없는 데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우리가 이처럼 터무니없고 잘못된 생각을 계속 붙잡는 이유는 무엇일까? 디자이너들의 작업이 단지 예쁜 물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는 데 있어, 이것이 매우 쓸모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사실보다는 유용성을 우선시하는 셈이다.      

디자인 사고란 무엇일까? 그것은 당장의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보다 넓은 시각을 갖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디자인 사고는 체계적 사고를 요한다. 즉 어느 문제나 더 큰 전체의 일부분이며, 해법이란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를 요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또한 디자인 사고는 관찰이나 분석을 통해 해당 주제에 깊이 파고들 것을 요구한다. 더불어 그 과정에는 테스트와 빈번한 수정 작업이 수반되기도 한다. 때로는 그룹으로 이러한 작업을 수행하면서, 여러 분야의 팀들이 다양한 형태의 전문적 지식이나 기술을 문제 해결에 동원하기도 한다. 아마도 디자인 사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 기술에서 벗어나 새롭고 폭넓은 접근 태도를 취하는 것일 것이다. 이쯤 되면 디자인 사고란 말은 정말 특별해 보일 정도다.  
 
하지만 디자이너들이 무대에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역사상에는 획기적 아이디어와 창의적 사고가 이미 존재해 왔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자세히 검토해 보면, 현재 ‘디자인 사고’라는 딱지가 붙여진 것들은 모든 분야의 창의적인 사람들이 늘 해온 것들이다. 과학과 공학, 문학과 예술, 음악과 역사, 법률과 의학 등 어느 분야에서나 획기적인 약진은, 신선한 통찰과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 이를 증식시켜 나갈 때 일어나는 법이다. 이 세상에는 일반의 통념에 도전하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지닌 사람들, 창의적인 사람들이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러한 사람들은 특별한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것도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할 일을 한다. 즉 법칙을 파괴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새롭게 사고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이 창의적인 존재일 수는 있겠지만, 중요한 점은 그들이 독보적인 존재는 전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디자인 컨설팅업체들은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능수능란할까? 이들은 클라이언트 기업의 사람들보다 더 위대한 창의력을 부여 받은 신비로운 존재들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도움이 될만한 장점이 하나 있다. 바로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룹 내부의 사람은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탈피하기가 어렵다. 통상적으로 그들에게 기존의 패러다임은 의문 제기의 대상이 아니라 기정 사실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공기나 중력처럼 너무나 오랫동안 항상 곁에 있어 왔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질 뿐 결코 고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매사에 의문을 제기하는 외부인이라면, 다른 이들은 당연시하는 것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질문을 던질 것이다. 전통이나 기존의 기업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곳, 표준화된 작업 방식에서의 탈피가 허용되는 곳, 승진이나 보너스에 문제가 없는 곳이라면 이러한 외부인의 존재가 도움이 된다.    

디자인 사고는 창의적 사고라는 오래된 좋은 표현을 대신하는 홍보 용어이며, 비단 디자이너에게만 국한된 것도 아니다. 훌륭한 예술가, 훌륭한 엔지니어, 훌륭한 과학자들은 모두 정해진 한계를 탈피한다. 훌륭한 디자이너 역시 다르지 않다. 이처럼 잘못된 믿음인데도 디자인 사고의 신화를 영속시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디자인의 역할에 대한 혼란이 여전히 존재한다. 대중의 머릿속에서 디자인이란 ‘물건을 예쁘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기업 임원진이나 마케팅 책임자, 프로그래머, 엔지니어들 역시 여전히 이러한 시각을 갖고 있다.    

디자인계가 디자인 사고의 신화를 영속화하는 이유는 디자인 컨설팅 사업의 흥행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를 고용하시라. 그러면 디자인 회사의 마법을 동원해, 낮은 생산성으로 다 죽어가는 귀사에 기적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셈이다. 강력한 비밀 무기가 있다고 주장하는 데, 디자인 사고 신화의 가치가 있다.   

그러나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를 끌어안는 데는 이보다 더 중요하고 더 정당한 제2의 이유가 있다.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는 디자인을 독보적인 위치에 놓음으로써, 기업들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디자인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즉 ‘사고’에 대한 강조를 통해, 디자인이 예쁜 겉모양 이상의 것이며 디자인에도 내용성과 구조가 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디자인의 방법론은 조직 구조나 공장의 작업 현장, 공급망 관리, 비즈니스 모델, 고객과의 쌍방향 소통 등 어느 문제에나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디자인 사고는 디자인 회사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위력적인 홍보 용어이다. 디자인 사고는 많은 디자인 회사들이 즐겨 하는 불가사의하고 비경제적인 이상한 작업 방식에 신비한 아우라를 불어넣는다. “우린 당신들과는 다르게 일을 한답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작업이 정말 효과적이고 독보적인 이유죠.” 디자이너들의 오랜 관습이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하나라도 있을까? 물론 없다. 하지만 그 사실을 누구에게도 발설해선 안 된다.  

그러니 ‘디자인 사고’라는 말이여, 부디 만수무강하기를. 그리하면 디자인이 형태와 스타일의 세계에서 기능과 구조의 세계로 변모하는 데 도움될 것이다. 또한 의료나 공해, 비즈니스 전략이나 기업 구조 등 거의 모든 문제에 디자이너들이 가치를 보탤 수 있다는 얘기를 널리 퍼뜨리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비로소 ‘디자인 사고’라는 용어는 제명을 다하고 사라질 수 있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는, 신화를 이용하라. 실제 믿는 것처럼 행동하라. 단, 실제로 그렇게 믿지는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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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노먼 애플 부사장, HP 창립멤버 겸 대표를 역임한 사업가이자, 학자로 활동하고 있다. 닐슨 노먼(Nielsen Norman Group)의 공동설립자이며 현재 이 곳에서 이사 직을 맡고 있다. <일상용품의 디자인 The Design of Everyday Things>, <감성 디자인 Emotional Design>, <복잡한 삶 Living with Complexity> 등 여러 저서의 저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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