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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rend/산업

친환경차 디자인의 관건은 ‘바람’… 문 손잡이까지 공기저항 테스트

제네바서 만난 자동차 디자인 4인의 거장 … 미래를 말하다
 
벤츠의 고든 바그너, 아우디의 슈테판 질라프, BMW의 아드리안 판 호이동크, 재규어의 이언 칼럼. 세계 자동차업계의 디자인 트렌드를 이끄는 거장들이다. 1일 개막한 ‘2011 제네바모터쇼’에서 국내 언론으론 처음으로 이들을 연속 인터뷰했다. 이들은 “정보 홍수시대에 사는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능보다 감성을 앞세운 디자인에 의해 구매를 결정한다. 앞으로 디자인 역량에 따라 자동차 업체의 흥망이 결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네바=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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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동차 업계의 화두는 친환경차다. 친환경 디자인의 특징은.

 ▶칼럼(재규어)=친환경차 디자인은 윈드 터널(강한 바람이 나오는 실험실)을 이용한 공기역학(에어로 다이내믹)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자동차 디자이너들은 1960년대 이후부터 공기역학을 적극 반영했다. 당시엔 바람의 저항을 연구했다고 하면 지금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작은 도어 손잡이까지 공기역학을 시험한다. 어떤 디자이너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호이동크(BMW)=공기역학은 BMW 디자인의 기본이다. 뉴 5시리즈를 보라. 둥근 선과 면에 이런 공기역학이 곳곳에 들어가 있다. (타이어) 휠 하나하나도 마찬가지다. 이번 모터쇼에 전시한 ‘비전 커넥티드드라이브’ 컨셉트카는 공기역학을 이용해 선과 면의 멋을 살리면서도 바람저항은 최소화했다.

 ▶바그너(벤츠)=공기역학은 단순히 연비를 좋게 하는 것뿐 아니라 소형차에서 중형차급 실내공간을 확보하는 데도 이용한다. 실내를 크게 하기 위해 천장이 높지만 공기역학을 고려한 선을 통해 마찰을 줄여 연비를 좋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친환경이 디자인에 제약은 없는지.

 ▶질라프(아우디)=뉴A8은 더욱 조각처럼 변했다. 경량소재인 알루미늄 보디 덕분에 선과 면의 아름다움을 곳곳에 살리면서도 연비도 기존 모델보다 20% 이상 좋게 했다. 하지만 A1 같은 소형차는 A8 같은 대형차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제약이 있다. 저렴하게 생산할 수 있는 적절한 재료를 생각하면서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야 한다.

 ▶칼럼=예전처럼 멋을 부리기 어렵지만 소재가 좋아져 조각 같은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됐다. 강철보다 150㎏ 이상 가벼운 뉴 XJ의 알루미늄 보디가 대표적이다. 소재와 부품의 소형·경량화가 진행돼 디자인 자유도는 더 높아졌다.

 ▶호이동크=이미 10년 전부터 친환경 디자인을 적극 반영했다. 뉴 5시리즈는 기존 모델보다 차는 더 커졌지만 무게는 적게 나가 연비가 좋아졌다.

 ▶바그너=벤츠는 친환경보다 ‘안전’이라는 요소가 디자인에서 1순위다. 안전이라는 부분을 통과하지 못하면 디자인을 할 수 없다. 새 날개처럼 멋지게 문이 열리는 SLS AMG의 디자인도 안전을 먼저 고려한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대중차와 달리 멀리서 봐도 어떤 차인지 알 수 있는 통일된 디자인이 공통점인데.

 ▶질라프=멀리서도 라디에이터 그릴만 보고 어떤 차인지 알 수 있는 것은 고급차의 기본이다. 아우디 디자인은 우아함·진보성·스포티함, 세 가지가 주축이다.

 ▶호이동크=사람 신장 모양을 닮은 키드니 그릴과 ‘천사의 눈(앤젤 아이)’으로 불리는 2개의 원형 헤드라이트, 이런 고유한 디자인 요소 때문에 지나가는 아이들도 BMW라는 것을 다 안다.

 ▶바그너=날개 형상을 한 리무진 라디에이터 그릴이 특징이다. 후륜 구동을 상징하는 앞뒤의 밸런스 역시 중요한 벤츠만의 디자인 요소다.

 ▶칼럼=영국 특유의 유머와 레이싱 전통의 스포티함이 디자인 아이덴티티다. 뉴 XJ를 보고 ‘재규어가 아니다’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60년대 내 아버지 친구도 당시 XJ를 보고 ‘재규어가 아니다’고 했다. 하지만 그 차를 샀고 누구보다도 진짜 재규어라며 좋아했다. 

-요즘 모터쇼에 올 때마다 ‘한국차 디자인이 좋아졌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어떻게 달라졌나.

 ▶칼럼=어제 기아차 피터 슈라이어 디자인총괄과 점심을 했다. 그는 대학원(RCA) 1년 후배다. 기아차에는 슈라이어의 디자인 감각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모두 그의 역량이라기보다는 한국 디자이너 수준이 세계 수준에 올라섰다고 본다. 한 사람의 디자인총괄이 모든 디자인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호이동크=요즘 기아차 디자인은 나무랄 데 없다. 나도 벤치마킹을 한다. 슈라이어를 영입해 기아차 디자인이 좋아졌지만 그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준 경영진 역할이 더 크다고 본다. 디자이너와 경영진의 신뢰가 기아차가 세계적인 디자인으로 올라선 가장 큰 이유다.

 ▶질라프=요즘 현대차는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찾은 것 같다. ‘다이내믹 코리아’를 연상시키는 스포티라고 할까. 예전 한국차에서 볼 수 없던 점이다. 디자이너는 경영진에게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을 제시하고 추천하는 게 임무다. 그런 점에서 한국 디자이너 전체 수준이 높아졌다고 본다. RCA에서 공부할 때 한국인 디자이너의 열정과 노력에 놀랐다. 동기인 김태완 한국GM 디자인 총괄도 그렇지 않은가.

 ▶바그너=한국차 디자인은 요즘 전성기다. 이는 한국 디자이너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됐다는 얘기다. 벤츠에도 이일환 미국 디자인센터 본부장 등 여러 명의 한국인이 활약하고 있다. 단 100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통일된 한국차만의 디자인 요소를 찾는 점에선 아직 개선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디자인총괄이 되고 싶은 학생들이 한국에 많다. 조언을 해준다면.

 ▶칼럼=무조건 많이 그려야 한다. 일류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라면서 드로잉을 못하는 경우도 여럿 봤다. 일류가 되려면 10%의 재능은 꼭 필요하지만 많이 그리고 창조적인 생각을 하는 노력이 90%라고 본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많이 그려라. 다음은 자신의 작품에 비판적일 수 있어야 한다. 절대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다음 신차 디자인이 더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최고의 디자인은 없다. 항상 다음이 최고다.”

 ▶질라프=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저녁에 가장 늦게 퇴근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일에 대한 진지함·성실함이 기본이다. 또 리더로 사람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야 한다. 특히 예술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을 잘 다뤄야 한다. 물론 자신 역시 많은 창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팀원들에게 가이드라인을 줄 수 있는 축적된 경험이 중요하다.

 ▶바그너=차에 대한 열정, 아니 사랑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카 가이(Car Guy)’가 우선이라고 할까. 어릴 때부터 차를 사랑하는 사람이 훌륭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또 한 가지 ‘내가 제일 잘 그린다’며 혼자 잘난 체하면 어렵다. 팀워크를 잘 유지하고 관리하는 사람이 일류가 된다.

 ▶호이동크=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 디자인총괄은 경영진을 설득시켜야 하고 엔지니어와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하다. 스케치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김태진 기자 [tjkim@joongang.co.kr]

[스페셜 리포트] 친환경차 디자인의 관건은 ‘바람’… 문 손잡이까지 공기저항 테스트
[중앙일보] 입력 2011.03.07 00:15 / 수정 2011.03.07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