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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행사

和 … 일본 디자인을 관통하는 정신

한국국제교류재단 161점 전시

① 야나기 소리의 ‘나비의자’(1954). 나비를 모티브로 한 유연한 곡선이 특징이다. ② 전통적인 포장에 현대적인 그래픽을 결합한 기타가와 잇세의 술통(1993). ③ 젊은 디자이너 그룹 MILE이 옻칠로 마감한 스피커 ‘섬싱 투 터치’(2003). ④ 후쿠사와 나오토의 ‘가습기버전 3’(2004·2007). 폴리카보네이트라는 재료를 썼지만 매끄러운 표면은 여러 겁의 덧칠로 마감된 칠기와 닮았다.

‘앙증맞다’ ‘귀엽다’ ‘군더더기가 없다’ ‘정교하다’….

일본 디자인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도시락 포장에서부터 그릇·의자·손수건은 물론 로봇·캐릭터 인형에까지 스며있는 ‘일본적인 것’에는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일본적인 디자인의 핵심은 무엇일까.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이 12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서울 순화동 재단문화센터에서 여는 ‘일본 현대 디자인과 조화의 정신’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아볼 수 있는 자리다. 일본 디자인 전문가들이 가려 뽑은 161점의 작품을 만난다.

이들은 일본 현대 디자인의 특징으로 ‘화(和)’를 꼽았다. 조화의 정신이란 뜻이다. 전통과 현대, 자연과 인공, 일본과 세계, 유희와 실용, 감성과 이성 등 서로 다른 요소를 결합해 새것을 만들어내려는 노력이 일본 디자인의 전통이라는 것이다.

거창한 화두를 내세운 것이지만 전시장은 일상생활과 친근한 것들로 채워졌다. 식기·복식·가전 등 12개의 범주로 나눠져 있다. 식기 부분에선 1961년 시판된 이래 지금까지도 꾸준히 팔리고 있는 깃코만 식탁용 간장병을 비롯해 종이카드를 접은 형태의 젓가락 받침대, 젓가락 봉투, 무쇠주전자 ‘마루’ 등을 볼 수 있다.

가전제품 전시장은 백화점의 한 코너를 연상시킨다. 접거나 말아서 갖고 다닐 수 있는 핸드롤 피아노, 굴뚝 모양의 초음파 가습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오토바이로 꼽히는 혼다 ‘수퍼 커브 50’이 눈길을 끈다. 전시는 일본 디자인의 성격을 ‘귀여운’ ‘공예적인’ ‘결이 고운’ ‘감촉이 있는’ ‘미니멀한’ ‘사려 깊은’ 등 6개의 키워드로 소개했다.


하이라이트는 ‘화’를 대표하는 제품 12가지를 따로 모아놓은 부분이다. 일본에서 민예운동을 일으킨 사상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60A6>)의 아들 야나기 소리(柳宗理)가 디자인한 ‘나비의자’(1954)가 눈에 확 들어온다. 반세기가 넘은 작품인데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나무라는 딱딱한 재질을 군더더기 없는 유려한 곡선으로 빚어냈다. 일본 디자인의 대표선수 격인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의 의자와 가습기는 극도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준다.

무사시노 미대의 가시와기 히로시 교수, 가와사키 시민박물관 큐레이터 후카가와 마사후미, 디자인 감독 하기와라 슈, 디자인 전문공간 21-21 Design Sight 부관장 가와카미 노리코 4명이 공동 큐레이터를 맡았다. 10일 전시장에서 만난 가와카미 노리코씨는 “상반된 요소를 조화시키는 게 일본 디자이너의 강점이다. 이번 전시에서 일본 젊은 디자이너들의 역동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람료 무료. 02-2151-6520.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중앙일보] 입력 2011.02.11 00:04 / 수정 2011.02.11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