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는 과학을 입는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시골 소도시에서 저널리스트의 꿈을 꾸며 대도시에 올라온 사회초년생이 화려한 패션업계에서 좌충우돌하며 나름대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화다.
패션을 소재로 한 영화답게 화려한 패션쇼와 멋진 명품의상들이 등장하며 화려한 패션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 놓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 속에는 디자이너의 뛰어난 창의성과 감성만 존재할 뿐 어디에도 과학의 역할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패션 디자이너에게 창의성과 감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오늘날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할 수 있게 된 것은 어떤 소재와 색상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과학기술이 뒷받침됐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과거에 우리가 사용한 천연섬유에는 마, 모, 면, 실크 등이 있었다. 이중 비단은 부드럽고 감촉이 좋으며 면보다 신축성이 뛰어난 최고의 옷감이었다. 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싸 이를 대체 할 섬유가 필요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인조 비단으로 불리는 최초의 인조섬유인 레이온(Rayon)이다.
나일론 또한 원래는 비단의 대체품으로 개발됐지만 비단보다 강하고 면보다 가벼운 특성을 갖는다. 그래서 나일론 스타킹은 실크제품보다고가임에도 불구하고 출시 1시간 만에 400만 개라는 경이로운 판매고를 올리기도 했다.
몰려드는 군중 탓에 경찰이 동원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오늘날 나일론이 저가 섬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은 과학 기술의 발달로 대량생산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와중에도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프라다가 지난 1990 년대에 나일론 소재의 핸드백과 레인 코트를 출시, 패션계에 새바람을 일으킨 바 있다. 소재에 더해 옷감의 색상이 다양해 진 것 또한 과학자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과거에는 황제의 상징이었던 자주색 옷을 로마의 보통시민이 입을 경우 재산을 몰수하거나 사형을 시킬 만큼 엄격한 통제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따라서 서민들의 옷은 단조로운 색상밖에 없었다.
표백조차 몇 달의 시간이 걸렸기에 대부분 칙칙한 색의 옷을 입어야 했다. 이랬던 서민들이 순백의 하얀 옷을 입을 수 있게 된 것은 프랑스의 화학자 베르톨레가 염소(Cl)의 표백 작용을 알아내고 난 후에 가능했다.
또한 비싼 염료 가격 때문에 무채색의 옷밖에 입을 수 없었던 서민들에게 자주색 옷을 입을 수 있도록 길을 연 것은 영국 화학자 윌리엄 퍼킨이 최초의 합성 염료 '모브(Mauve)'를 합성한 덕분이다. 이후 여러 가지 합성 염료가 등장하면서 오늘처럼 다양한 색상의 옷감이 저렴하게 공급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그파, 바이엘, 바스프 등의 거대 다국적 기업들도 초기에 이러한 합성 염료 제조를 시작으로 지금과 같은 거대한 회사로 성장했을 만큼 염료의 수요는 대단했다. 이는 곧 사람들의 색에 대한 욕망이 그만큼 컸다고 할 수 있다.
생명을 지켜주는 옷
아이언맨의 슈트는 슈트를 입은 사람을 보호하는 중요한 기능을 갖고 있다. 마치 로봇처럼 보이기에 의류로 보기 어렵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중세 기사들이 입었던 갑옷의 연장선에서 생각하면 그렇지 않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슈트가 섬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금속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반 의류와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 슈트와는 조금 다르지만 이미 각국의 연구소에서는 무적의 '슈퍼 솔저'를 탄생시키기 위한 첨단 슈트 연구가 진행 중이다.
미래에 등장할 슈퍼 솔저는 총알이나 파편을 튕겨내는 방호 기능에 더해 다양한 기능을 갖춘 전투복을 입게 될 것이다. 일례로 전투용 전자섬유(e-Textile)로 제작된 미래형 전투복은 전장에 나간 병사들에게 밀리터리 게임과 같이 다양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또한 섬유에 나 노발수코팅을 해 군복이 쉽게 젖지 않으며 우의도 가볍다. 특히 이 전투복에는 생화학 무기 탐지센서와 항균기능이 적용돼 있어 생화학 무기를 검출하고 인체에 유해한 세균은 침투하 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군 복내부에 약제를 내장, 병사가 부상을 당하면 자동으로 나노 크기의 기공을 통해 상처를 치료하고 후송 여부를 신속히 판단할 수 있도록 군의관에게 연락하는 기능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능은 비단 군인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유비 쿼터스가 패션과 결합하면 건강을 지켜주는 스마트 의류를 만들 수 있다. 사실 미래형 군 복도 일종의 스마트의류며 군사적 목적과 함께 가장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것도 의료용 스마트의류다. 의료용 스마트 의류를 입게 되면 24시간 건강을 지켜주고 관리해주는 주치의를 두는 것과 같다.
이 옷에는 미래형 군복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센서가 부착돼 있어 체온, 심전도, 맥박, 혈압, 혈당치 등 생체 신호를 모니터링하게 된다. 감기 등 바이러스 감염에서부터 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강지표를 실시간으로 의사에게 알려 조기 진단과 치료가 가능케 되는 것이다.
또한 자외선에 대해 민감한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햇빛의 자외선의 강도를 수치로 알려주며 호흡기가 약 한 사람들에게는 공기 중의 미세 먼지 농도나 세균 및 바이러스에 대한 경고도 해준다. 그리고 의료용 스마트 의류 역시 옷을 통해 직접 약물 투여가 가능하다.
스마트 의류에 부착된 방출제어 시스템이 환자의 상태와 투여 시간을 고려해 적시에 정량을 정확히 투여하는 것. 이를 통해 환자는 약의 투입에 따른 불편함과 위험성을 많이 줄일 수 있게 된다.
또 약물이 일정한 활성 상태를 유지할 수 있어 치료효과도 극대화된다. 언젠가는 약의 투여뿐 아니라 약이 체내의 정확한 부위에 도달하도록 컨트롤하는 옷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과학은 종종 패션에 새로운 영역을 형성, 혁신을 주도한다.
글= 최원석 과학칼럼니스트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입력시간 : 2010/12/31 15:4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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